[강효백의 新경세유표-38] 문화재청 국보 지정 '허점 투성이'<1>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입력 : 2021-01-12 07:00
왜 서울 남대문은 국보인데, 서울 동대문은 보물인가? 2020년 국보로 승격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기사계첩> 문제 수두룩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국보급의 문화재가 그 분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보물급에 속하는 문화재는 그와 유사한 문화재로서 대한민국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문화재는 미래의 먹거리다. 각박해진 상황에서 먹거리와 놀거리는 이제 문화유산뿐이다. - 정재숙 문화재청장(매일경제 2019.10.9.)

◆조선총독부에서 거리가 가까운 번호 순, 대한민국 국보와 보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한국의 문화재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다고 선정한 것에 일련번호를 붙여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을 지정하고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보물 1호는 경성 남대문(숭례문), 2호는 동대문(흥인지문) 식으로 번호를 붙였다. 이는 총독부에서 거리가 가까운 순으로 번호를 붙인 것으로 경성,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와 같은 순으로 부여하였다.

이같은 번호는 해방 후에도 그대로 계승된 채 1955년 일괄적으로 국보로 지정했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국보와 보물을 구분해 재지정하면서 지정된 일련번호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서울 중구), 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서울 종로구), 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서울 용산구) 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경기도), 5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충북) 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충북) 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충남)....

*보물 1호 흥인지문(서울 동대문구), 2호 옛 보신각종(서울 용산구), 3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서울 종로구) 4호 안양중초사지 당간지주(경기도 안양시) 6호 여주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경기 여주군....

◆왜 서울 남쪽 대문은 국보인데 서울 동쪽 대문은 보물인가?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다. 아직도 국보와 보물을 조선총독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거리에서 가까운 거리로 번호를 붙인 일련번호가 유지된다는 것은 치욕적이다. 국보와 보물의 기준도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국가문화유산 설명을 보자. 

국보 :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한다. 보물 :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악보·악기·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구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국보급의 문화재가 그 분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보물급에 속하는 문화재는 그와 유사한 문화재로서 대한민국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1)*

이승만과 박정희 등 대한민국 초기 통치자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오히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배자들보다 모자란 것 같다. 국보제 1호와 보물 제1호 한가지 예만 들겠다.

그래도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제 땐 조선총독부 건물 가까운 거리 일련번호 원칙 하에 보물1호 남대문(숭례문) 보물2호 동대문(흥인지문)이라 정했다. 그런데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이 지정한 국보1호 숭례문(남대문)과 보물1호 흥인지문(동대문)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데 그 기준이 도대체 뭘까. 서울의 남쪽 문 숭례문은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반면, 서울의 동쪽문 흥인지문은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가치가 적고 유례가 많은가?

◆2020년 국보로 승격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기사계첩> 문제 수두룩

(왼쪽)대구경상감영측우대 국보330호(2020년 2월 27일 지정). (오른쪽)기사계첩 (耆社契帖) 및 함 국보334호(2020년 12월 26일 지정, 홍완구 개인 소장본). [사진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재청은 해마다 문화재를 검토하고 보존 가치가 높은 것을 새롭게 국보로 등록하고 있다.

2020년 12월 22일, 문화재청은 개인소장 숙종시대 기사계첩 및 함을 국보 제334호로 지정하면서 같은 날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한국 대표 정사(正史) 『고려사』(부산시 유형문화재104호)를 보물로 지정 예고(지정이 아닌 지정예고)했다. (2020년 새로 지정된 보물은 2056호~2107호 52건).

2020년에 문화재청이 새롭게 지정한 6건의 국보는 다음과 같다.

∙329호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2020년 2월 27일 지정
∙330호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2020년 2월 27일 지정
∙331호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2020년 2월 27일 지정
∙332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2020년 6월 25일 지정
∙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2020년 10월 21일 지정
∙334호 기사계첩 및 함 2020년 12월 22일 지정

이중 국보 제330호와 제334호 두 건만 들겠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자료다

<국보 제330호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大邱慶尙監營測雨臺)>

이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46cm의 장방형 석재로, 원래 대구감영에 설치돼 있었다. 전면에 '측우기(測雨器)', 후면에 '측우대, 건륭 경인년 5월에 만듦(測雨臺, 乾隆庚寅五月造)'이라고 새겨진 명문을 통해 1770년(영조 46)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기상학자였던 와다 유지[和田雄治]의 기록을 따르면, 이 측우대는 경상감영 선화당(宣化堂)의 뜰에 있다가 조선총독부관측소로 옮겨졌다고 하며, 지금은 기상청이 소장하고 있다.

<국보334호 기사계첩 (耆社契帖) >
홍완구(개인) 소장본
<기사계첩>은 숙종 45년(1719)에 있었던 소속이 같은 문인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풍류를 즐겼던 모임인 계회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만든 화첩으로, 크기는 가로 53㎝, 세로 37.5㎝이다. 70세 이상 대신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왕의 시문, 전체 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자 명단, 행사장면의 그림 등 50면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사계첩은, 보물 638호와 거의 비슷하지만, 김창집을 비롯한 계회참석자 10인의 초상화에서 평소 집무복인 단령의 모양이나 색채가 다르며, 조선 후기 문신인 홍만조의 축시제목이 없는 점 등으로 두 기사계첩을 대조하여 연구해 볼 수 있다. 임금의 초상을 그렸던 박동보·장득만·허숙 등의 화원들이 초상화를 그린 이 기사계첩은 보물 제638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과 거의 같으나, 보물 제638호가 1974년 2면을 1면으로 붙인데 반해 이 화첩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으로 10여 명의 초상화와 자필로 쓴 축시, 화원 명단이 들어 있어 당시 화풍과 서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난해 2월 27일 문화재청이 국보 제330호로 지정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이미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에 대구 선화당 측우대라는 문화재 이름으로 보물 제842호로 지정됐던 것이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보물로 지정된 최초의 측우대 표지석이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한국 전역에 세워졌던 수많은 측우대 표지석 중 특히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뜰의 측우대 표지석을 각별히 애지중지하였다. 그 측우대에는 크고 분명하게 각인된 청 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36~1796년 재위)의 연호 ‘건륭(乾隆)’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연호를 쓰며 중국에 조공이나 바치던 조선을 대일본제국이 독립시켜 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제는 측우대를 조선총독부관측소로 옮겨 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문화재청이 <고려사>를 겨우 보물로 지정 예고한 바로 그 날 지정된 국보 제334호는 국보 제330호 ‘대구 경상감영측우대’지정보다 더 문제가 큰 국보지정이라 판단한다.

조선 숙종 시절 문신들의 계모임을 그린 화첩의 하나에 지나지 않은 <기사계첩>을 보물이라면 몰라도 인류문화의 견지에 가치가 큰 최고 문화재 국보로까지 지정한 것도 큰 잘못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잘못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사계첩’(국보 제325호, 보물 938호에서2019.3.6. 승격)과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기사계첩’(보물 638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홍완규)소장 보물 639호 ‘기사계첩’을 국보 제334호로 승격시킨 문화재청의 이해 난감한 비정상적 행태이다.

세종대왕이 총편집장격, 조선 최고 엘리트 집현전 학사들이 편집위원 격을 맡아 수십년간 피와 땀을 바쳐 편찬한 한국 대표 정사 『고려사』(1451년 문종1년) 뿐만 아니라 『고려사』가 너무 방대하고 세세하여 이듬해 요약 편찬한 『고려사절요』(1452년 문종2년, 경기도 유형문화제 245호)와 고려말 승려 이승휴가 펴낸 『제왕운기』(보물418호)등 모든 고려사 서적은 보물 이하로 처박아 둔 문화재청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제 조선총독부가 애지중지하던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를 국보 제330호로 지정하고, 나아가 기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도 개인이 소장한 <기사계첩>을 국보 제334호로 승격시킨 문화재청.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는다.

문화재청, 귀청은 도대체 조선총독부의 문화재청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문화재청인가? 답하라!

(계속······)

◆◇◆◇◆◇◆◇각주

(1)*​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지방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로 구분된다. 국가지정문화재: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중요문화재로서 국보·보물·국가무형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 및 국가민속문화재 등 7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지방재정문화재: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이하 '시·도지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시·도)의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로서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 및 민속문화재 등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문화재보호법 제2조 ; 문화재청, 『초등학교 문화재 교육 지침서』, 2003년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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