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36] ‘법관 양심에 따라 심판’ 헌법 제103조 혁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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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20-12-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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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사람들은 헌법을 신성불가침한 모세의 계약의 궤인 양 여긴다. 헌법은 인간사고의 발달과 항상 보조를 맞춰나가야 한다.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은 타인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받을 경우 이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 -T. 제퍼슨 미국 제3대 대통령

∙양심은 비겁과 같다. 양심은 회사의 브랜드일 뿐이다. - F.O.W. 와일드

∙행동하는 자는 항상 양심이 없다. 관찰하는 자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양심이 없다. -J.W.괴테


필자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개가 갸우뚱거리면 소름 돋도록 귀엽다.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필자의 학문연구 제1 좌우명도 갸우뚱거리는 개를 관찰하다가 떠오른 정언이다. 학자는 관찰하는 자다. 학자라면 기득권과 기존지식에 주로 '갸우뚱'해야 하고, 공직자라면 국민의 뜻에 '끄덕'여야 하거늘, 왜 이 땅의 학자와 공직자들은 정반대인가?

현행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국내 다수 헌법학자들은 헌법 제103조의 ‘양심’은 선악에 대한 윤리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법리적 확신과 법조적 양심을 의미하는데 윤리적 양심과 법조적 양심이 충돌할 경우엔 후자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1)* 

그렇다면 법조적 양심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법관의 양심에 털이 났는지 안 났는지 어떻게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민주공화국 주권자 국민의 운명을 비선출직 사법관료 개인의 '양심'에 의존하는 현 사법체계는 정당한가?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77조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로 규정 ‘법관 양심 따라’ 자구가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5·16쿠테타 군사정권 시절 1962년 5차개헌 헌법 제103조 ‘법관양심 따라 심판’이라는 악마의 조항을 삽입했다.

이는 일본헌법 제76조 3항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良心に従ひ) 독립적으로 그 직권을 행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2)*의 표절에 가까운 모방이다.

‘법관 양심 따라 심판’ 같은 법관의 자의적 재판을 헌법상으로 보장한 세계 헌법례는 대륙법계, 영미법계, 이슬람법계, 구소련법계, 중화법계, 힌두법계 등 세계 6대법계와 유엔회원국 193개국 헌법중 한국헌법과 일본헌법 단 둘뿐이다. 그야말로 유이무삼(有二無三)한 ‘법관양심 따라 심판’이다.

현행 독일 헌법(기본법)은 “법관은 독립이며 법에만 따른다(독일 기본법 제97조 제1항).”(3)*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나치 독일시대 헌법 ‘법관은 건전한 국민감정에 따라 재판한다’라는 독소조항을 혁파한 것이다.

한국처럼 일제 식민지의 뼈아픈 역사를 겪어 일본식 법제의 잔재가 많이 남은 대만(중화민국)헌법 제80조 “ 법관은 반드시 당파를 초월하여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법률에 근거하여 독립적으로 심판한다.”(4)*라고 규정, ‘법관양심 따라 심판’ 없다.

법관은 양심을 빌미로 헌법과 법률에 이탈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재판은 양심이 아니라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 법관의 양심(?)이 대한민국 법원(法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6일 발의한 개헌안 제103조 조차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현행 헌법 그대로다. 조금 실망스럽다.

아직도 일본이 배워야 할 글로벌스탠더드 법제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는 국내 각계 지도층 인사가 적지 않은데 이는 대단한 착각이거나 잔상(殘像)이다. 사실상 국민이 천황의 신민(臣民)인 제정일치 군주국 일본의 헌법과 법제는 국민 모두가 주권자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군국주의 시절의 변태적이고 시대착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대목이 무척 많다.

국민 배심원들이 상식이라는 판단력과 정의감에 의해 재판을 주도하는 민주적 사법제도의 미-영 연합국이 비민주적 사법 관료가 ‘양심에 따라’ 독단 재판하는 구독일-일본 동맹국에 승리했다. 낡고 썩은 구 일본식 사법제도를 혁파해야만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통찰한다.

“법관의 양심에 따라”식 재판은 “이현령비현령”식 재판을 낳는다. 재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현령비현령)면 그건 이미 재판이 아니다. 재판이라는 신비화된 이름으로 지배집단이 피지배 집단에게 가하는 폭력일 뿐이다.

이에 필자는 내년 초 국회 또는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21세기 글로벌스탠다드에도 부합한 제헌 헌법 제7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를 원상회복(‘법관 양심에 따라’ 반드시 삭제)하는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길 제안한다. (5)*


◆◇◆◇◆◇각주

(1)* 박경철 (2008). 법관의 재판에서의 독립. 강원법학, 27, 173-174쪽.

(2)*すべて裁判官は、その良心に従ひ独立してその職権を行ひ、この憲法及び法律にのみ拘束される。

(3)* Die Richter sind unabhängig und nur dem Gesetze unterworfen.

(4)*(法官依法獨立審判) 法官須超出黨派以外,依據法律獨立審判,不受任何干涉。法官須超出黨派以外,依據法律獨立審判,不受任何干涉。

(5)*헌법 제128조 ①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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