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2)] ​천하효자(天下孝子) 예수처럼 살고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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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11-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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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자 김흥호가 본 류영모…식색 못끊으면 인간이 아니다

[다석 류영모]

공기같은 기체(氣體)로 산 사람

편지를 쓸 때 상투적인 문구로 '선생님 기체후 일향만강(先生 氣體候一向萬康)'이란 표현을 쓴다. '선생님 기력과 신체의 상황이 오로지 모두 편안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이런 편지를 받은 류영모는 제자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 "이 말이야 말로, 하늘의 말씀입니다. 선생(先生)님은 생을 초월한 존재를 말하고, 기체후(氣體候)는 공기처럼 기체로 사는 사람의 근황을 말하는 것이고 일향만강(一向萬康)은 하느님(一)을 향한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김흥호는 류영모를 '고체(固體)'로 산 사람이 아니라, 기체로 산 사람이며, 생을 초월했을 뿐 아니라 사(死)와 호흡했던 분이라고 말한다.

류영모를 사사(師事)한 제자 중에, 김흥호는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 시리즈에서 김흥호와 관련한 내용을 한 차례 더 싣기로 한 것은 그런 비중 때문이기도 하다.

류영모는 해방 전 김교신에 대해 깊은 영적 유대감을 느꼈다. 김교신은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무교회주의자였고 성서연구를 통해 '조선적 기독교'를 추구했으며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김교신은 기독교의 혁신을 주장했지만, 교회 기독교의 이상(理想)을 벗어던지진 않았다. 류영모는 서양식 교회시스템의 교리(敎理)와 교의(敎義)가 기독사상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관점을 지녔고, 그 참을 찾아 신과 자율적으로 교통하는 길을 걸었다.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신앙사상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사제(師弟)의 예를 갖추며 아름답게 존중했다. 해방 직전에 김교신을 잃음으로써, 류영모가 맞았을 고립감(孤立感)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오산학교 교장시절에 만난 함석헌은 그 총명과 신실(信實)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류영모에겐 귀한 존재였다. 김교신을 연결해준 사람이 함석헌이기도 했다. 김교신과 함석헌은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 조선 무교회 운동에 주력했기에, 두 사람 다 류영모와는 신앙적으로 다른 입장에 있었다. 류영모는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여, "그들은 기독교 정통신앙이며 나는 비정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교신을 잃은 뒤, 해방 공간에서 소련을 피해 내려온 함석헌을 다시 만난 류영모는 이 제자에게 각별한 마음을 기울였을 수밖에 없다. 함석헌의 실덕(失德)으로 그를 제자에서 출문(黜門)시킨 류영모에겐 그의 뜻을 이을 고제(高弟, 뛰어난 제자)에 대한 갈증이 없을 수 없었다.

김흥호는 학구적이면서도 진지한 제자였다. 그는 1950년 이후에 류영모를 만났다. 스승을 만나던 시절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때는 그의 생애의 가장 원숙한 시기였다. 그때 선생님을 따르던 우리들은 무르익은 열매에 매혹되어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의 생애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사셨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는 류영모의 전기적(傳記的) 삶에 대해선 비교적 관심이 적었고, 대신 그의 왕성한 사유와 신앙적 실천과 무르익은 영성(靈性)에 감복했다.
 

[김흥호]



참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

김흥호는 류영모가 '진인무몽(眞人無夢, 참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장자(莊子)의 말이다. 진인무몽에 대한 풀이가 구구했으나, 왕필(王弼, 226~249)이 이를 정리해 말하기를 "참사람은 꿈을 꾸긴 하지만 그 꿈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했다. 꿈조차도 그를 어찌 하지 못하는, 맑고 단호하며 망상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류영모의 진인무몽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시 한 편(1975년 1월 31일작)을 소개한다.

痴後犯房貪食症(치후범밤탐식증)
齋先斷房節食明(재선단방절식명)
痴貪無斷滅人類(치탐무단멸인류)
齋明有續救生靈(재명유속구생령)

            류영모의 단식유감(斷食有感) (1957.1.31)

욕정이 있으니 섹스를 하고
먹는 것을 탐하는 병이 생긴다
마음을 가다듬어 섹스를 끊고
먹는 것을 줄이면 밝아진다
욕정과 식욕을 못 끊으면
인간 되기는 다 글렀다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하기를 꾸준히
살아있는 영성을 구하라

                 류영모 '단식하면서 느낌이 있어'

그는 간헐적으로 단식을 했고, 일일일식(一日一食)은 날마다 철저히 실천했다. 그 속에서 색욕과 식욕을 단속하는 자기 경계(警戒)의 시를 썼을 것이다. 섹스는 수욕(獸慾, 짐승의 욕망)이라고도 한다. 먹고자 하는 욕망과 교접하고자 하는 욕망은, 짐승과 인간이 공히 지닌 것이다. 이것에 생의 모든 것을 기울이는 건, 짐승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류영모는 말했다. 그렇기에 이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멸인류(滅人類)'라고 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멸망하는 것과도 같다. 즉, 인간이 되지 못한 짐승이라고 했다. 류영모가 왜 뛰어난 제자 함석헌의 허물을 끝내 덮을 수 없었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신앙하는 인간이 지녀야할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효(孝) 사상은 기독교 본질과 일치

김흥호는 류영모 사상을 '동양적으로 이해한 기독교'라고 설명한다. 유교의 핵심인 효(孝) 사상을 기독교의 신앙 본질과 일치시켰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완성태가 기독교라고 했다. 물론 유교에서 말하는 뜻은 혈육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만 류영모는 이 개념이 훨씬 더 심오하고 본질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이 천부(天父)사상은 동양에도 있었다. 예수가 단순히 신을 친근하게 부르기 위해서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천명한 말이라는 얘기다. 세상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오히려 신과 인간의 근원적 관계를 인간의 지혜로 비유해 확장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의 군거(群居) 인간에게는 부자(父子)개념이 뚜렷하지 않았고, 인지(人智)가 발달함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그 관계적 의미가 만들어진 것이다.

효(孝)는 그 관계에 깊은 의미를 담은 사상이다. 어미가 새끼를 사랑하는 동물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새끼가 어미에게 바치는 깊은 사랑의 감정을 부각시킨 것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내리사랑으로 당연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인간이 신을 사랑하는 일은 깨달음과 '존재의 연결(連結)'에 대한 깊은 각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 예수야 말로 효자의 극치로 보았다. 류영모가 운명하면서 했던 말은 "아바디"였다. 이 말은 평생 그가 믿고 실천해온 길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아바디'는,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 밝음을 디딘다(아, 신의 뚜렷함을 실천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류영모는 '부자유친'에 관한 한시를 쓰기도 했다. 성령의 하느님과 예수(인자,人子)가, 아버지와 아들로서 서로 가까운 마음을 내는 것, 그것이 부자유친이라고 말하고 있다.

自信固執充忠臣 (자신고집충충신)
唯信瞻仰永學士 (유신첨앙영학사)
主心同意聖旨精 (주심동의성지정)
父子有親靈人子 (부자유친영인자)

스스로 믿음을 굳게 지킴은 충실한 하늘나라 충신이요
오직 믿음으로 쳐다보고 우러르니 영생을 배우는 학생이요
주의 마음과 오롯이 함께 하는 것이 그분의 참뜻이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를 생각함이 성령을 받은 예수다

다석 류영모의 '부자유친'

류영모는 천하지효(天下之孝, 하늘에 바치는 효)를 아버지가 계시고 그 근본을 좇는 일(부재종본, 父在從本)이라고 했다. 하늘의 아버지는 그 위치로 존재하기에 빈 곳으로 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기에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변역(變易, 만물은 변한다는 법칙)이다. 그 변역이 창조를 만들고 변화를 만들었다. 그 신의 생각을 좇으니, 아버지와 내가 같아진다. 이밖에 무슨 신앙이 있겠는가. 우리가 남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부자무타(父子無他).

能空能物全知能(능공능물전지능)
變易不易一二易(변역불역일이역)
父在從本來如是(부재종본내여시)
吾玆今心稍肖亦(오자금심초초역)

               류영모의 '무타(無他)'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지
그게 전지전능함 아닌가
변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의 변화법칙이지
아버지가 계셔서 뿌리를 좇으니
이같은 생각이 찾아오네
나의 여기 지금 마음이
서서히 또한 그를 닮아가네

               류영모의 '같다(다름 없다)'


김흥호는 류영모의 성(性,깨달음)과 교(敎, 가르침)도 놀랍지만 가장 경이를 느낀 것은 그의 도(道, 궁구함과 실천함)였다고 했다. 이 말은 중용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류영모는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를 동양사상의 프리즘을 이루는 실마리로 읽었다. 즉 깨달음을 바로 말한 성(性)은 불교이며, 그 깨달음을 궁구하여 실천하고자 하는 도(道)는 도교이며, 그 실천을 가르침으로 전파하고자 하는 교(敎)가 바로 유교라고 보았다. 이 세 가지 사상은 각기 다른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오로지 같은 것인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다. 불교는 하느님의 본질을 말하며, 도교는 하느님에게 가는 길을 말하며. 유교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윤리로 풀어낸 것이다.

쉽게 말하면 불교의 성(性)은 하느님이고 유교의 교(敎)는 인간이다. 노자가 풀어놓은 도(道)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학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흥호는 류영모의 이 점을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다. 류영모는, 서양의 기독교가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신앙'해온 2천년 역사 속에서 놓친 그 부자유친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효자효녀가 부모에 대해 지니는 간절하고 충직한 시선을 하늘로 옮겨 하느님의 인자(人子)일 수 있는 인간들이 저마다 일효(一孝)로 연결하는 신앙의 원형을 발굴해내고 실천했다. 류영모의 혁명(革命, 하느님의 뜻을 깨우쳐 찾아냄)은 여기에 있다.

예수는 살신성인의 표본

김흥호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도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일좌식(一坐食) 일언인(一言仁)이다. 일좌(一坐)라는 것은 언제나 무릎을 굽히고 앉는 것이다. 그것을 위좌(危坐)라고도 하고 정좌(正坐)라고도 한다. 일식(一食)은 일일일식(一日一食)이다. 일언(一言)은 남녀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일인(一仁)은 언제나 걸어 다니는 것이다." 즉 류영모의 도(道)는 4가지를 꿰뚫는 '하나'다. 일좌, 일식, 일언, 일인이다. 일좌는 무릎꿇고 앉기다. 일식은 하루 한끼다. 일언은 단색(斷色, 색을 끊음)이다. 일인은 항보(恒步, 늘 걷는 것)다. 이 네 가지의 투철한 실천이 류영모의 삶의 정수다.

류영모는 십자가를 일식으로, 부활을 일언으로, 승천을 일좌로, 재림을 일인으로 봤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이 기독교 교리이며, 그 교리를 현실적으로 사는 것이 일식일언 일좌일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그는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무극이태극은 송나라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말이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태초에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을 설명한 말이다. 즉 십자가를, 절대세계와 상대세계의 대전환을 이루는 '없음과 있음의 경계'로 읽은 것이다.

또 예수의 죽음은 하느님 나라를 열기 위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이었다고 말한다. 류영모는 또한 예수를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표현했다. 즉 태양빛을 반사해 비추는 달과 같은 존재라고 본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성만찬은 예수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류영모에겐 일식(一食)이 성만찬을 실천하는 길이었다. 헛된 끼니를 줄이는 일은 스스로의 살과 피를 마시는 일과 같으며 하늘에 대한 예배와도 같다고 여겼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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