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 “세계 최초 1만5000t 골리앗 크레인, 미쳐서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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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전남)=석유선 기자
입력 2020-11-1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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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낮없이 10여년 일했지만 남은 건 30억 빚...상상인그룹 만나 ‘경영에만 전념’

  • “한국 기업 갑질이라면 지긋지긋한 사람”…하청 포기후 도전한 “100% 해외수출기업”

  • 순수 국내 기술로 골리앗 크레인 1억 달러 수주...세계 첫 고망간강 LNG탱크선 인니서 곧 공개

지난 12일 전남 광양 율촌 산업단지에서 만난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이사가 건넨 그의 명함에는 한글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앞에는 한자, 뒤에는 영어뿐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찾아 들어간 상상인선박기계 홈페이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대기업이라도 한글 홈페이지는 기본이 건만, 이 회사는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로만 홈페이지가 구성돼 있었다. 그 이유는 간명했다.

“우리 회사 비즈니스는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해외에서 일감을 따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국 기업의 갑질이라면 진짜 지긋지긋한 사람입니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이사가 아주경제와 인터뷰 직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상상인그룹 제공]



상상인선박기계는 2009년 썬텍을 모태로 설립된 중소기업이다. 조선소 증설과 개선에 관한 컨설팅과 조선소의 자동화 설비 제조, 크레인 등 각종 설비를 공급하고 있다. 동종 업체로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중국, 싱가포르, 러시아에 이어 최근 인도까지 진출했다.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강소기업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다소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최 대표는 우리나라 조선소가 처음 건립된 울산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선체설계를 수행했고, 용접로봇 생산기술업무를 통해 선박건조의 자동화 분야 기술을 개발하는 등 조선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 CEO다. 20년 넘게 경영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날밤을 새우며 설계도면을 수정하기 일쑤다. 그는 사무실보다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더 편하다.

최근에는 넓디넓은 대표이사 집무실도 마다하고 일반 회사 부장급이 쓰는 정도의 단출한 방으로 옮겼다. “방이 크니깐 설계도면과 잡다한 업무 관련 서류가 쌓이면서 어째 더 지저분해져요. 이럴 바에 작은 방이 낫겠다 싶었지. 그런데 여기도 마찬가지네. 아이고, 참 정신없이 너저분하죠. 미안하네요.”

마치 설계사무소 방을 연상케 하는 그의 책상과 회의실 탁자에는 정말 서류와 설계도면이 빼곡했다. 소위 ‘기름밥’을 먹던 사람의 묵직한 투지와 근면함이 엿보였다. 수북한 서류와 도면 사이로 이제 막 제본이 끝난 책 한 권이 보였다. <이런 나에게도>라는 표지의 책은 그가 최근 집필을 끝낸 자서전이었다. 평소 다니는 교회 지인을 통해 ‘비매품’으로 쓴 책이 이날 따끈따끈하게 출간된 것이다. 책에는 그가 처음 조선업계에 입문해 대기업 말단 대리 시절부터 지금의 상상인선박기계 대표이사를 맡기까지의 40년 역사가 특유의 투박한 말투의 글로 변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최영욱 상상인선박기계 대표이사가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상상인그룹 제공]


◆중소기업 스스로 ‘하청’을 포기하고 해외로 향하다

괄괄한 말투만 보면 최 대표는 술을 거나하게 마실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술 접대’ 없이 비즈니스는 불가능하다는데 어떻게 사업이 가능했을까 싶었다. 최 대표 역시 한때는 못 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며 술자리에서는 웃다가, 다음 날 대기업의 어이없는 횡포와 갑질에 쓰디쓴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술력만큼은 최고라 자부했지만, 처음 설립한 회사는 10년 가까이 밤낮으로 일해도 남는 것은 30억원의 은행 부채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던 그는 스스로 대기업 하청을 끊기로 결심했다. 10여년간 매출의 99%를 차지해온 한 대기업과의 거래를 정지하기 위해 ‘협력업체 등록 반납 공문’을 직접 작성, 거래처 구매부장에게 대차게 내던졌다. 속이 시원했지만, 계획보다 행동이 먼저인 최 대표도 속으론 겁이 왜 안 났을까.

호기롭게 시작한 ‘100% 해외수출 기업’을 향한 첫발은 순탄치 않았다. 중국 칭다오(청도)의 조선소 자동화 설비를 첫 타깃으로 삼았지만, 해당 회사 대표이사도 아니고 설비투자 책임자조차 만나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무려 5번이나 찾아간 끝에 설비투자 책임자를 겨우 만났다. 하지만 이후 5개월간 매주 중국을 오가며 기술력을 설명했지만, 쉽사리 계약 사인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2009년 회사를 폐업하기로 마음먹고 전 임직원들에게 통보한 날, 중국 청도조선소에서 100억원에 계약을 체결하자는 낭보를 받았다. 국내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린 지 10개월 만의 성과였다. 이후 최 대표는 특유의 ‘뚝심’으로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에서 꾸준히 수주고를 올렸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1만5000t급 ‘골리앗 크레인’ 만들다

상상인선박기계는 2018년 1월 싱가포르 주롱조선소 내 셈코프마린 발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1만5000톤(t)급 ‘골리앗 크레인’ 2기를 완성해 낸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이 골리앗 크레인은 높이 127m, 너비 181m로 세계 최대 규모로 수주 금액은 1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최 대표는 “그냥 한마디로 미쳤으니까 가능했지. 제 정신은 아니었어요. 근데 내가 그렇게 미친 걸 그 회사(셈코프마린) 회장이 더 잘 알았어요. 나한테 이걸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 바로 그였어요. 하하.”

당초에 컨테이너를 들고서는 크레인이 움직일 수 없는 설계였으나, 최 대표는 그게 무슨 크레인인가 싶어 2개월간 설계를 뜯어고쳐 중국 회사를 물리치고 최종 수주에 성공했다. 통상 크레인 설계는 다른 회사에 맡겼지만, 상상인 측이 설계까지 한 터라 계약부터 제작-현지운송-설치-시운전까지 24개월간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인간이 세상에서 못할 것은 없다”라는 최 대표만의 뚝심이 이뤄낸 성과였다.

 

상상인선박기계가 세계 최초로 설계 제작한 1만5000t 골리앗 크레인 [사진=상상인그룹 제공]



◆상상인그룹 만난 것은 행운...‘월급 사장’이라 행복하다

이처럼 뚝심의 최 대표를 힘들게 한 복병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국내 제조업 전반에 만연한 ‘선급금 보증서 발급’이 그것이었다. 2013년 싱가포르 주롱조선소로부터 자동화 생산설비 1억2000만 달러를 수주했지만, 선급금 보증서 발급이 이뤄지지 않아 계약을 날릴 판이었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하나도 해당하지 않았다. 1년 6개월간 피땀 흘려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자니 최 대표의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상상인(당시 텍셀네트컴)에서 투자 의향이 있음을 듣게 된다. 이미 10여년 전 투자회사로부터 호되게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던 최 대표는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수차례 투자사에서 끈질긴 연락이 왔고, 이번엔 바보같이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만난 사람이 바로 유준원 대표였다. 유 대표는 ‘이익도 많이 안 남는 제조업, 그것도 일감도 부족한 우리 같은 회사에 뭐하러 투자하려느냐?’는 최 대표의 질문에 “최 사장님 당신을 보고 투자하려 한다”라고 말했단다.

유 대표는 여러 루트를 통해 최 대표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투지의 인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수차례 만남 끝에 신뢰를 다진 두 사람은 상상인그룹에 회사(당시 한중선박기계)를 편입시켰다. 최 대표는 경영에만 전념하는 ‘월급 사장’이 됐지만 더는 보증서 발급 걱정은 하지 않고, 기술 개발과 수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2018년 3월 상호도 상상인선박기계로 변경했고, 지난해에는 경남 밀양에서 규모가 20배 더 커진 지금의 광양 율촌산단으로 본사와 공장을 모두 옮겼다.

이 과정에서 국내 1위 선박크레인 제조사인 상상인인더스트리도 경남 김해에서 같은 부지로 이전했다. 이날 최 대표와 함께 만난 김동원 상상인인더스트리 대표이사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회사를 옮기니 가족들 둔 임직원으로서는 싫어할 법도 한데, 그룹 차원에서 독립숙소(1인 1실), 전일 3식 제공, 분기별 무공해 농산물(지역 상품권) 지원 등을 해주니 다들 ‘상상人’으로서 큰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라면서 “양사가 나란히 자리해 크레인 수주-제작까지 논스톱으로 이뤄져 막강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상상인선박기계 임직원들은 조만간 인도로 향한다. 코로나19로 해외 진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은 역시 최 대표다. “코로나 발생했다고 밥 안 먹습니까. 가만히 있을 겁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요. 지금이 오히려 기회입니다. 해외 나가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다들 냉큼 비행기 편 알아보더라고요.” 이번 인도행은 지난해 말 약 190억원 규모의 250t 골리앗 크레인 수주 건으로, 현지 조선소 설치를 마무리 하기 위해 직원들을 파견하는 것이다.

최 대표의 다음 행보는 역시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로 인해 조선사들의 LNG 탱크선 상용화가 시급한 이때 상상인선박기계는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High-Mn-Steel)과 9% 니켈강으로 로봇(ROBOT) 용접 기술을 적용해 LNG 탱크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저가형 중국 제품과 품질, 가격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난제는 선주들이 바라는 실제 적용 선례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설계에 착수한 인도네시아 프로젝트에 조만간 고망간강 LNG 탱크를 탑재한 선박을 처음 공급합니다. 이후 상용화된 고망강간 LNG 연료탱크 적용 확대는 생각보다 빨라질 겁니다. 도대체 안 되는 게 어딨어요. 우린 다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인선박기계·인더스트리가 입주해 있는 전남 율촌산업단지 본사 전경. [사진=상상인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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