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쓰는 官피아… 정권말 금융권 ‘낙하산 공습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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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안준호 기자
입력 2020-1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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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연말 민간 출신 협회장·기관장 대부분 임기 만료

  • 모피아들 줄줄이 대기…행시 선후배끼리 '짬짜미'도

  • 대관 업무 강점에도 대규모 금융사기 초래 책임 논란

[아주경제 미술팀 ]

금융권에서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의 기세가 강해지고 있다. 이미 주요 금융협회장과 금융·증권 유관기관 수장자리는 모피아들이 꿰차고 있지만, 이에 멈추지 않고 올 연말 임기가 끝나는 민간 출신 수장들의 자리까지도 노리는 모양새다. 차기 수장 선정을 앞둔 금융협회, 금융위 산하 유관기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후보자들은 대부분 관 출신으로 민 출신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모피아 협회장·유관기관 수장 논란은 이전부터 지속 제기돼왔으나, 이번 처럼 대규모 부대 투입이 예고된 적은 없었다. 업계는 모피아들이 대관 업무에 강한 만큼 관 출신이 협회장·기관장으로 오길 바라는 편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5곳에 달하는 수장자리를 두고 모피아들이 서로 나눠 가지는 상황까지 연출되면서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는 행정고시 선후배끼리 자리를 서로 양보해 한자리씩 꿰차는 모종의 합의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모피아 전성시대, 빈자리도 채우나?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직 금융권 협회장 및 유관기관 수장에는 모피아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금융권 5대 협회 내에서는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행시 15회),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행시 25회),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행시 26회) 총 3명의 행시 출신 모피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금융 유관기관의 경우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행시 34회),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행시 17회),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행시 32회), 윤종원 기업은행장(행시 27회), 문성유 자산관리공사 사장(행시 33회),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행시 17회)이 모피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증권 유관기관들도 대부분 전직 관료들이 수장을 맡고 있다.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행시 27회)은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정통 관료 출신이며, 연초 취임한 이명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행시 33회)은 금융위원회 주요 보직을 거쳤다. 내년 임기가 종료되는 정완규 한국증권금융 사장(행시 34회)도 모피아 출신이다.

문제는 올해 말 민간 출신 협회장 및 기관장의 임기가 대부분 끝나면서 해당 자리를 채우려 모피아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수장의 임기가 끝나는 6곳 중 5곳(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서울보증보험, 한국거래소)에 모피아 수장이 새로 내정됐거나, 하마평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손보협회는 행시 27회 출신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내정됐다. 서울보증보험 역시 행시 29회 출신인 유광열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내정된 상황이다.

은행연합회도 행시 24회 출신인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거론되고 있으며, 생명보험협회는 행시 28회 출신 진웅섭 전 금감원장과 정희수 현 보험연구원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정지원 전 이사장이 물러난 한국거래소의 경우 후보군에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행시 33회),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사(행시 28회), 민병두 전 국회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창립 40주년 만에 처음으로 내부 출신 사장을 선임했던 코스콤도 다시 관료 출신 인사를 수장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신임 사장을 뽑기 위한 1차 공모에 정지석 현 사장을 포함한 내부 인사 다수가 후보로 등록했지만 지난 11일부터 2차 공모가 진행 중이다. 명분은 ‘후보 다양화’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관료 출신 인사를 선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차기 수장 선출 작업을 진행 중인 협회, 유관기관에 하마평에 오른 모피아가 내정되면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금융협회, 유관기관 수장이 관 출신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 대관 능력 강점에 모피아 수장 선호하기도
다만 모피아 출신 수장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모피아 출신들은 국회·정부에 넓은 네트워크망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생기면 회원사 또는 기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용덕 손보협회장, 김주현 여신협회장, 박재식 중앙회장은 민 출신이었던 전임 회장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다른 민 출신 후보들을 제치고 내정되기도 했다. 모피아 출신인 이들은 기관장직 특성상 대관 업무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김용덕 손보협회장의 경우 보험사기에 따른 보험금 누수 문제에 주목해 조직개편을 단행했으며, 실손보험재편, 자동차보험료 인상과 같은 업계 숙원을 금융당국에 강력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김주현 여신협회장 역시 카드사의 숙원 사업이던 레버리지 한도 배율을 기존 6배에서 8배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마이데이터 사업 등 여전사 숙원 사업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도 M&A 규제, TV광고 규제 완화를 이끌고 예금보험료 인하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과제는 모피아 수장이 자리를 맡기 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요구사항이지만 민 출신인 전임 회장들은 해결하지 못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옛 재무부, 기재부 출신들의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은 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며 “금융협회장의 경우 리더십을 바탕으로 회원사를 대표해 숙원과제, 규제 완화 등의 목소리를 당국에 전달하고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모피아 출신 수장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책임 없이 자리 나눠 먹기만 ‘급급’
그러나 올해의 경우 모피아들이 대거 투입을 기다리면서, 관 출신들이 여전히 낙하산 통해 자리 나눠 먹기에 혈안 돼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협회장·기관장이 비슷한 시기에 교체되며 차기 수장 선거 절차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가운데 모피아들이 대거 거론되면서 한꺼번에 시장을 장악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관피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며 민간 출신이 한동안 부상했었지만, 현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모피아들이 자연스레 자리를 꿰차고 있는 셈이다.

금융협회 수장자리를 두고는 기재부 출신들이 서로 양보해주고 나눠 갖는 상황도 연출됐다.

당초 차기 손보협회장으로 진웅섭 전 금감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진웅섭 전 원장이 회추위 당일 후보직 고사의 뜻을 전달하면서, 손보협회장 자리는 자연스레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에게 돌아갔다. 진웅섭 전 원장과 정지원 내정자는 각각 행시 28회, 27회 출신으로 선후배 관계다. 선배인 정지원 내정자에게 자리를 양보한 진웅섭 전 원장은 현재 생보협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계속되는 모피아들의 낙하산 행태는 현재와 같은 금융사기 사건 반복의 원인이 돼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 전·현직 간부이기도 했던 모피아들은 지난해 발생한 DLF 사태에 이어, 올해 라임·옵티머스 사태까지 대규모 금융사기를 초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생보협회장 하마평에 오르는 진웅섭 전 원장은 사모펀드 규제가 대폭 완화됐던 시기인 2015년 금감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또한 유광열 수석부원장도 사모펀드 대규모 환매 사태로 금융당국의 감독 부실 문제가 제기된 지난해 금감원 수석부원장직으로 재직 중이었다.

일각에서는 막무가내식 모피아 낙하산 행태를 지속하기보다는 업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시장전문가들이 투입돼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모피아 출신들이 협회장, 기관장 등 주요 자리를 독식하다 보니 민 출신들은 수장 자리를 꿈꾸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며 “무조건적인 모피아 출신 내정보다는 정당한 능력, 인사 검증을 거쳐 업계, 회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내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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