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케이퍼 무비의 정석 '도굴', 뒤통수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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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11-0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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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굴'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영화에 관심 많은 관객은 알겠지만 배급사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 영화의 흐름이나, 분위기, 장르 등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보통은 그러했다. 저마다 결이나 색깔이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었다.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은 뒤통수를 친 작품이었다. 시사회 당일까지도 '도굴'이 쇼박스 투자 배급 영화인줄로만 알았다. 우리끼리는 '귀신 씌였다'고 농담하는 경우인데 그렇게 수십 번을 라인업 기사며 기획 기사까지 써놓고 어느 투자 배급사 작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시사회 당일 현장에서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과 마주하면서도 '경쟁사 영화를 보러 왔나 보다!' 속 편한 소리를 했었다.

개인적으로 CJ엔터테인먼트 영화들은 다양성을 지향하면서도 그 안에 '대중성'을 갖춘 상업영화를 선호한다고 생각해왔다. 코미디 영화부터 스릴러·범죄 무비·공포 등 다양한 장르 영화를 선보였으나 그 핵심에는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는 가족 혹은 친구들의 우정 등이 중심축을 잡아 왔기 때문이다. 영화 '국제시장' '담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극한직업' '탐정' 등이 그랬다. 대표적인 CJ엔터테인먼트의 냄새가 난다.

쇼박스의 경우는 장르적인 재미를 더욱 우선시한다. 영화 '도둑들' '뺑반' '마약왕' '곤지암' '남산의 부장들' 등이 대표적이 작품인데 CJ엔터테인먼트가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추구한다면 쇼박스는 'N차 관람'이 유행하는 '팬덤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 '도굴'은 CJ엔터테인먼트보다 쇼박스의 냄새가 나는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인 데다가 배우 라인업,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캐릭터 간 관계성 등이 '팬덤'을 겨냥한 영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도굴'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흙 맛만 봐도 보물의 유무를 알아내는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 분)가 '큰 판'을 벌이기 위해 유명 도굴꾼들을 모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내용을 담았다.

강동구는 유명한 도굴꾼이다. 전국을 돌며 유명 문화재들만 골라 훔치곤 한다. 도둑은 무릇 제 존재를 숨겨야 하거늘. 강동구는 이상하리만치 제 존재를 과시하려고 한다. 마치 '루팡 3세'처럼 물건을 훔치고 나면 시그니처를 남기곤 하는 것이다.

고미술 엘리트 큐레이터이자 대기업 회장이 지저분한 방식으로 거둔 문화재를 관리하는 윤실장(신혜선 분)은 강동구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큰 판'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강동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분벽화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분)와 삽질 달인 삽다리(임원희 분) 등을 끌어들인다.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선릉을 타깃으로 '전설의 검'을 찾으려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영화가 맞았다. 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조금 더 대중적으로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천재' 리더가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한탕을 노리는 이야기는 익숙하면서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구성. 대개 케이퍼 무비는 유명한 보물을 훔치기 위해 팀을 꾸리는 과정과 복잡한 플롯 속 시원한 결말을 그려내는데 '도굴'은  안정적이면서도 쉽게 관객에게 풀이하려 한다. 거기에 국내서 소개되지 않은 도굴과 문화재의 세계까지 다루며 흥미를 높인다. 

도굴이라는 소재가 국내서 처음 다뤄지는 데다가 리얼리티와 영화적 재미 사이의 줄다리기가 중요해 박정배 감독과 제작진 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고증에 치중하면 오락적 재미가 떨어지고, 오락적 재미에 치중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 있어서였다. 박 감독과 제작진은 '문화재'라는 요소를 앞세우며 유명 유물과 대표적 포인트를 살려 그 안에서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했다.

제작진은 첫 도굴이 시작되는 황영사부터 장안평 골동품 상가, 중국 지린성 지안시, 강남 한복판 선릉까지 다양한 로케이션을 선보이며 지상과 지하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도굴 루트를 선보였다.

영화 특성상 '가짜' 태가 나면 몰입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술에 엄청난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고구려 고분이 있는 중국 지안시의 경우는 실제 중국 현장을 방문해 실제 고분을 구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촬영, 새만금 간척지에 고분 세트를 완성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선릉은 실제 선릉 규모와 유사한 세트장을 구현해 지상부터 지하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믿을 수밖에 없는 비주얼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취재진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영화 '도굴'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또 '도굴'이 흥미로웠던 건 시리즈로서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오션스' '인디아나 존스' '007' 등 외국 영화들은 다양한 시리즈로 사랑받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바. 국내 영화는 시리즈로 영화를 이어나가기 힘든 환경인 데다가 맥을 이어나갈 만한 작품이 적어 관객들 사이에서도 아쉽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그러나 '도굴'은 여러 군데 시리즈 확장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캐릭터나 여러 나라에 산재한 문화재 등을 언급해 다양한 변주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만든 건 매력적인 캐릭터들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강동구는 '천재' 타입의 캐릭터로 이야기의 주축이면서 멤버들로 하여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멤버들 간 관계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중심축인 셈. 거기에 '존스 박사' '삽다리' 등도 많은 부분 생략되었으나 배우들이 그 맛을 살려내며 확장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했다.

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디테일은 부족하다. 큰 산을 보느라 가까운 나무들은 놓치고 있는 격이다. 군데군데 성기고 빈틈이 발견되곤 하는데 배우들에게 많은 걸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 주인공 강동구의 서사도 풀어내기에 빠듯해 보이고 여러 이야기를 엮고 복잡한 플롯을 풀어나가는 과정도 벅차다. 배우들에게 많은 걸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재를 훔치는 과정도 큰 굴곡이 없고 인물들이 겪는 시련도 예상치 못하게 가볍게 풀어지기도 한다. 이는 가볍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즐길 수는 있어도 깊은 몰입까지는 방해한다.

요즘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이들이 깊은 우울감을 호소하곤 한다. 개봉작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유쾌한 코미디와 힐링 메시지는 요즘 극장가의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영화 '도굴'도 위 작품들과 같다. 군데군데 부족하더라도 실컷 웃고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이며 러닝타임은 114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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