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유아인·유재명 '소리도 없이', 아이러니한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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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0-10-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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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봉[사진=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종종 영화를 보며 딴생각을 한다. 범죄 스릴러나 공포·멜로 등 장르는 상관없다. 불현듯 딴생각이 들면 그 궁금증은 걷잡을 수 없이 몸을 부풀린다. 곤란한 일이다.

언젠가 누아르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 누아르 영화에서 배신자 등을 처단하기 위한 장소로 폐 목욕탕 등이 등장하는데 그 장소를 인지하고 나니 '저 장소를 가장 먼저 쓴 영화는 뭘까?'부터 '저런 장소는 공용인가?' '뒤처리를 하는 직원들은 신입인가?' '그들이 진급하면 새로운 신입이 도맡는 건가?'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영화 관람은 망했다고 보면 된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는 숱한 궁금증을 낳았지만 딴생각은 일절 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막연히 '범죄 영화' '누아르' 등을 상상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여러 차례 예상을 깨고 익숙한 것들을 뒤집으며 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다가도 모를 상황 속 인물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딴생각을 품을 여유도 없었다. 영화관을 나설 때야 수북하게 쌓인 생각들을 정리했을 뿐. 마음이 무거워졌다.

태인(유아인 분)과 창복(유재명 분)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를 수습하는 이른바 청소부들이다. "성실한 땀방울, 내일의 미소" 폐 목욕탕에 쓰인 문구는 마치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두 사람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업무에 임한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단골인 범죄 조직의 실장 용석(임강성 분)의 부탁으로 11살 소녀 초희(문승아 분)를 떠맡는다. "하루만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용석은 다음 날 두 사람이 처리해야 할 시체로 나타난다. 얼떨결에 아이를 떠맡게 된 두 사람은 '유괴범'이 되고 만다. 예상 밖 일이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도 없이'[사진=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10월 개봉작 라인업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소리도 없이'를 수차례 접했다. 영화 포스터며 예고편을 보곤 '범죄 스릴러 영화겠구나' 짐작했다. 항상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르지만 이맘때 가장 많이 개봉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마음이 혼란해졌다. 큰 영역에서는 범죄 영화긴 한데.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들을 망설이게 한다. 살인과 시신 유기 등 온갖 흉악 범죄를 일삼는 인물들이 아주 일상적이고 성실하기 때문이다. 흉악 범죄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내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예를 다하며 길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 달걀 몇 알씩 건네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은 때로 선량하고 무해하게까지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며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붙여도 될지 이들의 행동은 '선'과 '악' 어디에 잣대를 두어야 할지 끊임없이 갈등했다.

일상적인 인물들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탁 트인 논밭 위 보라색 노을이 지고 공기마저 평화롭지만, 그 안에 끔찍한 범죄의 면면이 깃들어있어서다. 영화 저변에 깔린 불안감은 시도 때도 없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태인과 창복은 얼떨결에 유괴에 동참하지만 납치한 아이를 살뜰히 돌본다. 또래보다 조숙하고 영특한 아이 초희는 살기 위해 '착한 아이'의 얼굴을 한다. 이들은 여러 차례 불협화음 끝에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고 함께 지내는 데 적응해나간다. 평화롭고 즐거운 날들도 있고 초희를 위해 태인이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의 관계는 언제든 무너지게 되어있다.

홍의정 감독은 "인간은 선과 악이 모호한 환경 속에서 각자 생존을 위해 변화한다"라며 영화의 시작점을 짚었다.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기준으로 성실한 삶을 살고 그 안에서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태인과 창복은 직접적인 범죄에 가담하지 않고 시신 유기를 '일'이라고 주장한다. 방관자적인 우리의 태도를 지적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실제 범죄에 가담하게 되며 공포에 질린 이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면서 애잔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SF 단편 '서식지'를 통해 남다른 연출력을 보여준 홍의정 감독은 이번 작품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득 채워 넣었다. 알차고 단단하다.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일상적으로 표현하고 유니크한 미장센과 사랑스러운 색감으로 채워 '일상'과 '비극'의 아이러니를 끊임없이 오간다.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양계장과 닭, 토끼 가면을 쓴 아이, 태인이 탐냈던 양복 등 상징적 의미들도 풍성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영화적인 언어들에 오래도록 의미들을 곱씹어보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다. 모든 서사를 지우고 입까지 닫은 청년 태인을 연기한 유아인은 온몸으로 언어를 쏟아냈다. '좋지 아니한가' '완득이' '깡철이' 등 소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었던 유아인이 '베테랑' '사도'로 완전히 다른 면면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소리도 없이' 역시 지금까지의 유아인과는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한다. 창복 역을 맡은 유재명은 많은 부분 지워진 두 사람의 서사를 채우는 인물이다. '연기'로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역 배우 초희를 연기한 문승아도 놀랍다. 그가 느낀 숱한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그의 선택도 나서는 길, 여러 질문을 할 수 있게끔 했다.

함께한 유재명은 그의 선량함과 무해함을 배가하고 영화의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훌륭하다. 아역배우 초희를 연기한 문승아의 연기도 놀랍다. 그가 느끼는 숱한 감정들 그리고 그의 선택들이 '소리도 없이' 관객들을 아프게 한다.

15일 개봉이고 러닝타임은 99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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