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고(故) 이건희 회장의 '골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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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0-10-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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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대째 이어오는 삼성家 '골프 사랑'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에 참석한 고(故) 이건희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골프 매너나 에티켓이 나쁜 사람은 생활이나 사업에서도 믿을 수 없다."

2020년 10월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골프 명언이다.

고인(故人)은 '골프광'이라 불릴 만큼 생전에 골프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그는 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추천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1953년 부산 사범 부속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일본 소학교로 유학길에 오르는 아들에게 "골프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 유학 시절 선수 생활을 했을 만큼 상당한 실력을 자랑했다. 그의 스승은 일본 프로골퍼의 원조 고바리씨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전설인 고 연덕춘(延德春·향년 88세)과 한장상(80)에게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고인의 첫 싱글은 1960년 후반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로서는 보기 드문 장타로 프로골퍼 못지않았다'고 했다.

현재 삼성가(家)는 총 6개의 골프 코스를 보유 중이다. 대표적인 코스는 고인의 홈 코스인 안양컨트리클럽(파72·6951야드)이다. 1968년 탄생한 이 코스는 1997년 코스 설계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미국)가 리노베이션했다.

고인은 1980년대 중반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지만, 이 코스에서 새벽 재활 골프로 후유증을 극복했다. 이곳에는 고인의 전용 카트가 있다. 롤스로이스와 흡사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김응룡 전 삼성라이온즈 감독(80)이 코리안시리즈 우승 이후 고인의 카트에 탑승해 유명해졌다.

나머지 5개 코스는 베네스트(가평·안성·동래)와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글렌로스 골프클럽(18홀),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27홀)이다.
 

이건희 회장(위 가운데)과 김영미 대표이사(아래 오른쪽). [사진=김영미 제공]


고인은 두 달에 한 번 골프를 즐겼다. 캐디 시절 직접 고인의 백을 멨던 김영미 전 중국 심양 용산국제골프클럽 대표이사는 아주경제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故 이건희) 회장님은 소탈하시고, 권위적이지 않으셨다"며 "한 번은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당시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회장님께서는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면 꼭 이루어진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응원해주셨다. 덕분에 캐디에서 골프장 대표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훌륭한 인품만큼 실력도 좋았다. 1996년에는 재계 총수들과의 골프 모임에서 이글을 기록했다. 코스는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일동레이크 컨트리클럽이다. 마운틴 코스 2번홀(파5) 티잉 그라운드 옆 소나무가 그의 이글 기념 식수다.

2000년 일본 출장에서 발목을 다친 뒤 골프를 거의 치지 않았다. 그의 나이 58세 때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사랑과 이념은 발목 부상 전과 후가 같았다.

고인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2002년 서울 자택에서 계열사 사장을 모아놓고, 골프를 '신경영'에 빗대어 강조했다.

"골프채를 잡고 180야드(164m)를 치기는 쉽다. 조금만 코치를 받으면 200야드(182m)도 가능하다. 좀 더 열심히 하면 230야드(210m)까지 칠 수 있다"며 "그러나 그 사람이 250야드(228m) 이상을 치려면 다 바꿔야 한다. 스탠스, 그립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바꿔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업이나 개인이 한계치를 뛰어넘으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신경영 당시 그가 외친 "마누라와 자식을 빼곤 다 바꾸라"는 지시와 일맥상통했던 부분이다.

고인은 대한민국 골프계의 든든한 '뒷배'였다. 박세리 감독(43)의 1998년 US오픈 '맨발의 투혼' 우승 뒤에는 그가 있었다. 삼성그룹은 1992년부터 골프 유망주 사업을 펼쳤다. 당시 고인은 "골프 산업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이라며 "골프 꿈나무와 전문 브랜드 육성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1996년에는 유명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미국)를 국내에 초청해 집중 강습을 실시했다. 당시 레드베터는 여자 골퍼를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7년 박세리가 레드베터의 제자가 된 것도 고인의 강력한 후원 때문이었다. 이후 삼성그룹은 고인의 지시 아래 박세리 전담팀을 꾸려 후원을 이어갔다.

고인은 아버지(故 이병철 회장)에게 받은 '골프 사랑'을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52)에게도 심어줬다. 당시 그는 아들에게 "골프는 집중력과 평상심을 키워준다"며 "주말에는 그룹 임원들과 스킨십을 위해 라운드를 하라"고 권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이재용 부회장도 '골프 사랑'이 남달랐다. 특히 KPGA 코리안투어의 '맏형' 최경주(50)와 친분이 깊었다. 함께 라운드를 즐기고 최경주가 운영하는 골프재단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고인을 닮아 골프 매너와 에티켓, 그리고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의 홈 코스는 고인과 같은 안양컨트리클럽.

3대에 걸친 삼성가(家)의 '골프 사랑'은 지난 2011년 1월 이재용 부회장의 영국왕립골프협회(R&A) 정회원 승인으로 이어졌다. 한국 정회원은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해 '한국 골프계의 대부'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향년 83세)과 그의 아들 허광수 대한골프협회·삼양인터내셔널 회장(74), 올해 회원이 된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55) 등 총 네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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