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번역]노벨문학상 루이스 글릭의 '개밥바라기별(Vespers)'의 독특함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10-20 15:23
별에게 보내는, 어느 농부의 '귀여운 기도'
노벨문학상 루이스 글릭의 대표시 '개밥바라기별'의 천진하고 천연덕스런 매력

 

[젊은 시절의 루이스 글릭.]



루이스 글릭(Louise Glück, 1943~ )이 49세때 쓴 '개밥바라기별(Vespers)'을 읽어보면, 그녀가 기발함이 가득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Vespers는 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저녁기도'를 말하기도 한다. 일종의 중의(重意)법이다.

개밥바라기별은 금성(金星)이라 불리는 별이다. 해진 뒤에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것을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새벽하늘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른다. 글릭은, 저녁별인 개밥바라기를 향해 투덜거리는 내용을 시로 썼다. 날씨가 계속 흐리고 추워서, 재배하는 토마토가 흉작이 되고 있는 상황을 하소연한다.

네가 밤에 떠있어야 하늘이 맑을텐데, 날마다 결석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다. 그렇게 장기결석할 거라면, 나한테 '지구 사용권'을 좀 달라고 한다. 토마토 재배를 이미 망쳤음을 고백하고, 이렇게 날씨가 안 받쳐줄 거라면 내가 그걸 심으려고 할 때 말렸어야 하는 아니냐고 푸념을 한다. 밤이 추운데다 소나기까지 내렸으니, 토마토가 살 수가 있느냐고. 그래도 나는 토마토 씨를 뿌렸고, 나의 심장과도 같은 싹이 트는 것을 봤지만 얼마 안 있어 잎마름병이 덮쳐 잎들이 말라죽었을 때 심장이 부서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번엔 별에게 철학적으로 따진다. 너는 삶과 죽음의 어느 한 쪽에 대한 지향도 없고 편애도 없는 존재이니 내 토마토가 죽든지 살든지 별로 신경을 안 쓰겠지만, 여기 지구에 있는 것들은 아주 절박하다고 말한다. 오직 자기의 한 때를 피울 계절에, 미처 피우지도 못한 채 시들고 말라죽는다는 자기 예감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절망적인 것인지 모를 거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호소하고 있는가. 제목과 시 맨처음에 말한 '네가 결석하는 동안의 지구사용권'을 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왜? 내가 왜 줘야하는데? 개밥바라기별이 굳이 이렇게 묻지도 않았지만, 글릭은 애처롭고 힘없는 말투로 간절한 이유를 끝에 붙여놓는다. 난, 저 말라가는 토마토 덩쿨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네가 책임 못질 거면 날 달란 말야.

시가 이렇게 씌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독특한 시다. 읽어보면서 글릭의 언어 향연을 맛보자. (국내 우리말 번역이 없어, 필자가 직접 번역했다.)

 

[개밥바라기별(금성).]


.............

Vespers [In your extended absence, you permit me] ,1992
개밥바라기별에게 [네가 계속 안 뜰 거라면 내게 허락해줘]


In your extended absence, you permit me
use of earth, anticipating
some return on investment. I must report
failure in my assignment, principally
regarding the tomato plants.

네가 계속 안 뜰거라면 내게 허락해줘
투자에 대한 약간의 댓가를 기대하며
지구를 사용해도 된다는 걸.
주로 토마토 재배에 관해
내 몫을 제대로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네게 알려줘야겠어.

I think I should not be encouraged to grow
tomatoes. Or, if I am, you should withhold
the heavy rains, the cold nights that come
so often here, while other regions get
twelve weeks of summer.

토마토를 재배하라고
내게 부추겨서는 안되는 것이었다고 난 생각해.
아니, 만일 부추길 작정이었다면
소나기를 내리는 건 보류했어야지,
이 지역에선 추운 밤들이 너무 잦잖아
다른 지역에선 여름이 12주나 되는데 말야.

All this belongs to you: on the other hand,
I planted the seeds, I watched the first shoots
like wings tearing the soil, and it was my heart
broken by the blight, the black spot so quickly
multiplying in the rows. I doubt
you have a heart, in our understanding of
that term.

이건 다 네가 한 짓이잖아 ; 그런 와중에
나는 씨를 심었어, 흙을 찢고 나오는 날개같은
첫 싹을 봤지, 그리고 그건 내 심장이었어.
검은 반점이 그토록 빨리 이랑들로 번지는
잎마름병에 그 심장은 부서졌지.
난 네가 심장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그 심장이란 말을 우리가 같이 이해하고 있다면 말야.

You who do not discriminate
between the dead and the living, who are, in consequence,
immune to foreshadowing, you may not know
how much terror we bear, the spotted leaf,
the red leaves of the maple falling
even in August, in early darkness: I am responsible
for these vines.

죽은 것과 산 것을 차별하지 않는 너,
결과적으로 예언 따위에 떨지 않는 않는 너,
넌 알지 못할 거야
반점 투성이의 나뭇잎,
심지어 8월에 일찍 찾아오는 땅거미 속에서
떨어지는 단풍나무 붉은 잎사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지니는지.
: 난 이 토마토 덩쿨을 책임져야 한단 말야.


                      이상국 논설실장/시인(이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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