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해운산업, 新청사진]② “선박은행으로 선주·화주 윈윈”...해운재건 좌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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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0-10-1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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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컨테이너사 집중...벌크선 등 중소형 선사 자금난 여전

  • 해진공 지원으론 한계, 선박은행 절실...민간투자로 선박 조달 경쟁력 키워야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 위기에도 국내 해운업계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항로 개척 등을 통해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아주경제신문은 모처럼 재도약의 기회를 맞은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희망찬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부활하는 해운산업, 新청사진’을 주제로 특별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정부와 업계, 학계 등의 목소리를 모아 한국 해운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코로나19 위기에도 해운산업은 모처럼 호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해운 지원책만큼은 다시금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특정 기업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여론도 많다.
 

[아주경제 그래픽팀]


◆정부 지원에서 외면당한 부정기선사

2017년 2월 한진해운의 법원 파산선고 이후 정부는 ‘해운강국’의 명예를 되찾겠다면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착수했다. 한때 국내 해운업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5% 넘었지만, 한진해운 파산 직후 2위인 현대상선(현 HMM)의 시장 점유율은 1.6%로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인 선복량도 105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에서 39만TEU로 62%나 급감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 화주는 해외 선사를 이용하게 됐고, 그에 따른 운임 부담이 가중됐다. 이는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 전반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정부는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저비용·고효율 선박 확충을 통한 해운경쟁력 복원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말까지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포함한 선박 158척을 신조 발주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컨테이너선(정기선) 중심의 특정 기업에 신조 발주가 집중된 점이다. 올해 출항한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이 모두 만선 행진을 기록하면서 지난 7월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상위 10위에 우리나라 해운사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 기존 벌크선(부정기선)을 주로 운영해온 해운사와 신조 발주 여력은커녕 부채로 허덕이는 중소형 선사들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형국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조성된 기안기금도 특정 기업에 쏠림 현상이 있었을 뿐이다. 중소형 해운선사들은 정부의 정책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정부에서든 시장에서든 자금을 끌어오려 해도 다른 금융지원 방안과 겹쳐 이중 지원을 받기도 힘들고 한 번에 수십억~수백억원 수준이라 유동성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벌크선 중심의 한 해운기업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특정 기업 살리기 5개년 계획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면서 “중소 해운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금 부담에 허덕이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책은 컨테이너 중심의 대형 선사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사별로 자구책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지난 7월 장금상선 계열사 시노코페트로케미컬은 유조선(VLCC) 4척을 SK해운에 4236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대규모 유동성 확보 기회였으나 용선주의 사전 동의를 얻지 못해 갈등이 불거졌다. 폴라리스쉬핑도 신조 벌크선 일부를 에이치라인해운에 넘기려 했으나 화주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이 회사는 유럽 상장도 원했지만, 대형 사모펀드(PEF)와의 투자 유치 협상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장기적으로 막대한 운영 자금과 투자가 필요한 데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서도 금융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시중의 기준 금리는 낮아졌지만, 선박금융의 경우 대출 가산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아져 부담이 더 커졌다”고 꼬집었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선박은행 역할을 위해 출범한 한국선박해양을 2018년 흡수한 이후 윤용 중인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의 선주사업 개념도 [표=한국해양진흥공사 제공]

◆실질적 ‘선박은행’ 설립, 선주·화주 윈윈

업계 관계자들은 경기 변동에 따라 불확실성이 큰 해운업이 꾸준히 성장을 이어가려면 ‘선박은행’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박은행은 선사 소유의 선박을 시가로 인수하고 선사들에게 다시 빌려주는 역할을 통해 선주에게는 선박 확보 부담을 낮추고, 화주에게는 합리적인 운임을 제공해 윈윈 효과를 가져다준다.

지난 2017년 4월 한국선박해양㈜이 자본금 1조원 규모로 ‘선박은행(터니지뱅크·Tonnage Bank)’ 역할로 출범했지만, 특정 선사의 선박을 인수해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 그러다 2018년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 설립 이후 한국선박해양이 흡수된 이후에는 선박은행의 실질적 역할이 더 미미해졌다는 평가다. 이는 당초 한국선박해양의 자본금 출자를 정부가 주도한 영향이 크다.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 50%, 한국수출입은행 40%, 준정부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10%씩 부담하면서 사실상 정책자금 성격이 컸다.

업계에서는 해진공이 현재 운영 중인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 방식의 일부 선박은행 역할은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정책자금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투자사들도 참여할 수 있는 보다 유연한 선박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벌크선(전용선) 사업을 주로 영위하는 해운기업의 경우, 장기계약을 위한 선박 조달 능력이 중요한데 막대한 자금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박은행제도가 활성화되면 선사로서는 차입금 부담 없이도 경쟁력 있는 선박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최근 IMO(국제해사기구)의 친환경 선박 규제로 인해 요구가 커진 값비싼 암모니아·LNG 등의 선사 확보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선박은행 도입을 줄곧 강조해온 해운전문기업 관계자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본연의 취지가 국적 선사의 선단 확충과 동시에 국내 빅3 조선사의 수주난을 해소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선박은행 활성화는 더는 미뤄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과제”라면서 “이는 결국 선주와 화주, 더 나아가 조선사까지 실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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