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23) 폐하, 이제 그만 양위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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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조선대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회장
입력 2020-10-1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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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조선대교수] 



세계사에 유일무이한 기막힌 운명 속에 살다간 비운의 여왕이 베트남의 역사에 있다. 바로 베트남의 리(Lý:李)씨 왕조 마지막 9대 여왕의 이야기다. 공주로 태어나 7살에 여왕이 되었다가 왕비로, 다시 폐비가 되었다가 타의에 의해 전 남편의 명으로 재가하여 장군의 부인으로 살다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친언니에 빼앗기고 폐비가 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베트남 리(Lý)왕조의 왕자가 12세기와 13세기에 각각 고려 시대에 한반도로 망명을 해왔다. 4대 인종의 아들, 리즈엉꼰(李陽焜) 왕자가 망명을 와서 정선이씨의 시조가 되었고, 6대 영종의 아들 리롱뜨엉(李龍祥) 왕자가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하여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베트남의 리(Lý)씨 왕조는 리꽁우언(Lý Công Uẩn-李公蘊: 974~1028)에 의해 1009년에 건국되어, 1010년에 닌빈성, 호아르에서 다이라(Đại La) 성(城)으로 천도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탕롱(昇龍)으로 바꾸었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뜻이다. 탕롱은 1831년 민망 왕이 행정구역을 하노이성(省)으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금년에 하노이는 수도가 된지 1010년이 되었다.

리(Lý)씨 왕조의 두 왕자는 모두 국내 정치 상황이 변동하면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리(Lý) 왕조는 216년이나 존속했던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였으나, 쩐(Trần:陳) 왕조(1225~1400)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우 특이하다.

리(Lý)왕조 말엽 6대 임금 영종(1138~175)이 겨우 3살에 즉위하였고, 그 뒤를 이은 7대 고종(1176~1210) 역시 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왕이 나이가 어렸지만 다행히도 충신 또히엔타인(Tô Hiến Thành:1102~1179)이 있어서 조정을 잘 이끌고 왕을 잘 보필하여 정치가 안정되어 갔다. 그러나 또히엔타인(蘇憲誠)이 사망하자 간신들이 득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간신들은 감언이설로 왕을 현혹시켜 궁궐을 새로 짓고, 궁중에서 연회를 일삼아 재정은 파탄되었고, 관리는 부패하여 농민 수탈은 극에 달하였다. 결국 지방에서 민란이 발생하였고, 왕은 몽진(蒙塵)을 가고, 태자는 지방 세력가인 쩐리(陳李) 집에 의탁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태자는 쩐리의 계획에 따라 쩐리의 딸과 결혼하고, 고기잡이와 소금장사로 부를 축적한 쩐리는 사병을 동원하여 민란을 진압하였다. 환궁 후 오래지 않아 부왕이 병사하자, 16세의 태자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바로 8대 혜종(1211~1224)이다.

혜종은 병약했고, 나중에는 정신까지 이상해져, 즉위 14년 만에 출가하지 않은 7세의 둘째 딸 펏낌(佛金)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불문에 들어가 혜광선사가 되었다가 3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펏낌이 마지막 9대 왕 찌에우호앙(Chiêu Hoàng-昭皇:1218~1278)으로 베트남 봉건 군주국가 최초의 여왕이다. 당시 실권자는 쩐리(陳李) 동생의 아들인 쩐투도(陳守度)였다. 쩐투도는 기울어져가는 나약한 조정에서 군권을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는 왕권을 빼앗기 위하여, 여왕을 쩐리(陳李)의 손자인 8세의 쩐까인(陳煚)과 결혼시키고 나서 얼마 후 1225년 12월 11일, 왕위를 남편인 쩐까인에게 넘기는 조서를 내리게 하였다. 쩐투도는 어린 여왕에게, “폐하, 이제 그만 양위 하시옵소서!”라고 예의를 가장한 협박을 한 것이다. 여왕은 보호해줄 세력이 없었고, 조정의 대신들은 쩐투도의 위세에 눌려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여왕은 어쩔 수 없이 왕위를 남편에게 양위함으로써 리(Lý)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고, 쩐(陳) 왕조(1225~1400)가 시작되었다. 베트남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혈 역성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6대 영종의 아들인 리롱뜨엉(李龍祥) 왕자, 즉 “찌에우호앙”의 종조부는 나라가 망하자 1226년에 조상의 제기(祭器)를 배에 싣고 조국을 버리고 망명길에 올라 도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이었다. 이들은 힘을 합쳐 옹진군 지역에 침략해 오는 몽골의 군사를 막아내었고, 고려 고종은 리롱뜨엉 왕자에게 화산군(花山君)이라는 칭호와 함께 30리의 토지와 2천명의 백성을 하사하여 정착하게 하고 조상을 모시며 살게 하였다. 리롱뜨엉(李龍祥) 왕자가 바로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이다.

한편, “찌에우호앙”은 본인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리(李)왕조 마지막 왕으로 왕위를 남편에게 넘김으로 해서, 이제는 여왕이 아니라 쩐(陳) 왕조(1225~1400) 태종(太宗)의 왕비가 된 세계 역사에 희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찌에우호앙”은 어린 첫 아들을 잃고 나서 대를 이어갈 자식을 낳지 못하자, 쩐(陳)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였던 실권자 쩐투도는 1237년에 찌에우호앙의 친언니이자, 임신 3개월 중이었던 태종의 형수인 투언티엔(順天) 공주를 데려다가 왕비로 삼았다.

태종은 처형이자 임신 3개월의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것으로 인륜을 파괴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찌에우호앙”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자 고통이었다. 아내를 동생에게 빼앗긴 태종의 친형 쩐리에우(Trần Liễu:陳柳)는 화가 나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난은 곧바로 진압되었다. 쩐리에우(陳柳)는 반란을 일으킨 대역 죄인이었지만, 태종은 형의 죄를 묻지 않고, 현재의 꾸왕닌성(할롱만이 속한 지역)일부를 식읍으로 주고 조용히 살도록 하는 은전을 베풀어 주었다.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왕도 못되고, 사랑하던 아내마저 동생에게 빼앗긴 한(恨)이 뼈에 사무쳐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면서, 쩐리에우(陳柳)는 아들 쩐꾸옥뚜언에게 나라를 빼앗으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쩐꾸옥뚜언은 부친의 유언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으며, 몽골의 침략을 3차례나 막아내어 나라를 지켰다. 쩐꾸옥뚜언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베트남의 구국영웅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1228~1300)장군이다.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세계 유일의 나라가 베트남이고, 이는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종은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찌에우호앙”이 40살이 되던 1258년 구정에, 큰 잔치를 베풀고, 폐비가 되어 깊은 궁궐에서 혼자 살고 있던 “찌에우호앙”을 레푸쩐(Lê Phụ Trần) 장군과 결혼하도록 명을 내렸다. 레푸쩐(黎輔陳)은 몽골의 1차 침략을 막아내는데 큰 공을 세운 장군이었고, 쩐 왕조의 태종, 성종과 인종 때까지 3대 왕을 보필한 인물이다.

“찌에우호앙”의 삶은 공주로 태어나 여왕으로, 다시 쩐(陳)왕조의 태종의 왕비로, 폐비가 되었다가 레푸쩐 장군의 아내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찌에우호앙”은 남편이었던 태종의 명으로 레푸쩐 장군과 재혼하여, 두 자녀를 낳고 60세까지 살았는데, 인류 역사에 이와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한편, 박닌(Bắc Ninh)성, 딘방(Đình Bảng) 마을에 있는 리(Lý) 왕조의 종묘(宗廟)인 리밧데(Lý Bát Đế: 李八帝)에는 9대 마지막 왕 “찌에우호앙”을 제외한 8명의 왕만을 모시고 제례를 올린다. 아예 리(Lý) 왕조의 왕으로 예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후손들이 무능한 왕에 대하여 준엄한 역사적인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한민족의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말이 다르듯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다.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지만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는 엄연히 다른 속성이 있다.
 

[박닌성에 있는 리(李) 왕조 종묘] 

 

[태조(좌)와 태종(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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