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여행업계 위기 돌파구 '가상 출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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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0-10-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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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호캉스(호텔+바캉스)'가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때, '잠이라면 집에서 자도 충분한데 왜 집을 놔두고 굳이 하룻밤에 몇십만원씩 지불하고 호텔에서 머물기만 하다 돌아올까' 하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무릇 여행이란 많은 것을 보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렸던 듯하다. 

많은 이가 의아해하고 낯설어하던 호캉스지만, 반응은 예상을 깼다. 많은 이가 호텔 안에서 즐길거리를 찾고, 호캉스를 통해 삶을 재충전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호텔에는 우리 일상의 근심이 없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일상사가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안긴다"라고.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호캉스는 힘든 일상의 돌파구가 됐고, 호캉스를 통해 심신을 회복했다. 호캉스가 여행 트렌드를 선도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자, 호텔업계는 저마다 호캉스 패키지를 출시하며 고객몰이에 주력했다. 

이렇게 호캉스에 익숙해져 갈 때쯤 우리는 여행 트렌드가 시대와 역사의 가치에 맞게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을 경험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뚝 끊긴 해외 여행길을 열어주는 기상천외한 여행상품을 통해서다. 

최근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떠다니다 다시 공항에 착륙하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행 수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몇십만원을 내고 이 상품을 구매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반응은 역시나 예상을 뒤집었다. 

최근 대만관광객 120명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한국관광공사 타이베이지사와 대만의 한 여행사가 기획한 '가상여행 상품'을 통해서다. 대만에서 출발해 착륙하지 않고 제주도 상공을 떠다니다 회항하는 '이색' 항공체험 상품이었다.

자국민의 해외여행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코로나19 여파에 어려움을 겪는 업계 회복 차원에서 기획한 이 상품은 판매 시작 4분 만에 매진되며 큰 화제를 낳았다.

열기가 식기 전에 하나투어도 내국인을 대상으로 가상 해외여행상품을 출시했다. 이름하여 '스카이라인 여행'이었다.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를 타고 강릉과 포항, 김해, 제주 상공을 떠다니다 오후 1시 2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이 상품도 역시나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냥 비행기 안에 앉아 하늘을 떠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 여행상품은 총 320석 중 응급환자용 좌석을 제외한 284석 모두 판매 당일 완판을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다. 비즈니스 좌석과 숙박을 합한 상품은 1분 만에 마감됐고, 예약 가능한 인원의 4배가 대기예약을 할 정도로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가상 여행상품은 호캉스 트렌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더 낯선 느낌이었다. 여행지에 발을 내딛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토록 뜨겁게 반응하냐고 묻는다면 여행이 주는 설렘과 가치가 환경에 맞게 진화한 것이라 전하고 싶다. 

일상의 근심이 없는 호텔이라는 공간에 설렜던 것처럼, 이 상품을 통해 공항이 주는 설렘,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긴장감, 그리고 기내식까지··· 여행의 설렘과 가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이에겐 낯선 이 여행이 어떤 이에겐 코로나 블루(우울증)에서 해방될 최고의 여행이 아니겠는가.

낯설든, 반갑든 가상 여행체험 상품의 등장은 업계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여행업계는 고사 직전에 내몰렸다. 대형 여행사들도 지속되는 경영난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면세점과 호텔 사업 등을 접으며 위기 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점점 버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항공사 역시 해외 노선이 대부분 중단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해외여행에 매달렸던 다수 여행사가 국내여행에 눈을 돌렸지만, 단순히 국내 여행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외여행에 목마른 고객들을 위한 가상 방한여행 상품이나 스카이라인 여행 같은 이색 아이디어 상품이 필요한 이유다. 

여행의 형태는 역사적·시대적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우리는 점점 여행에 목말라한다. 잠재한 여행수요를 겨냥한 이색 여행상품은 분명 여행사와 항공, 호텔 등 여행업종이 함께 코로나19 위기를 버텨낼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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