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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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0-09-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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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지난 22일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은 먼저 그 잔혹함부터 짚어야 한다. 북은 비무장 상태인 이씨에게 40∽50m거리의 해상에서 10여발의 총탄을 난사했다. 시신에 기름을 붓고 태우기까지 했다. 사살 전에는 밧줄에 묶어 바다에서 3시간을 끌고 다녔다.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김정은이 사과했지만 사과문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여권은 김정은의 사과에 고무된 모습이다. 김이 이렇게 빨리 사과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의 윤건영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묻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렇게 명확히 사과의사를 표현한 적은 없다”고 화답했다. 김정은의 사과는 그만큼 이례적(특별한)인 것이고, 이는 상대가 문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이번 사건도 두 정상 간의 이런 관계 속에 파장이 최소화되고, 또 되어야 한다는 암시다. 여기엔 사건 초기의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안도의 심정도 물론 담겼을 터.

김정은의 신속한 사과는 “외교고립 우려 등으로 이 사건을 빨리 덮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벌써 미 국무부와 국제인권단체들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총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자칫하면 제2의 웜비어(Warmbier)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엔 ‘웜비어 트라우마’가 있다. 미국 대학생(버지니아대) 웜비어는 2015년 북을 방문했다가 북의 체제선전물을 훔쳤다는 혐의로 17개월 동안 억류, 감금됐다. 2017년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나지만 억류 중 뇌조직이 손상된 탓에 곧 사망했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북한 정부에 책임을 물어 웜비어 가족에게 5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이씨의 피살사건을 두고서도 웜비어식 소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은은 빠지고 南南 갈등만

어떻든 김정은은 사과문 한 장으로 자신은 쏙 빠지고 싸움은 남한 내의 보수-진보 양 진영으로 넘겨졌다. 남북 갈등이 우리 내부의 좌우(左右) 갈등으로 전이(轉移)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정말 부끄럽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불법 처형됐는데도 당사자인 김은 손을 털고 일어서고, 남-남(南-南)끼리만 뒤엉켜 목하 혈투 중이다. 집권세력의 책임을 먼저 톺아보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김정은의 사과로는 부족했던지 보름 전에 오간 남북 정상 간 친서까지 들고 나왔을 때 다수 국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급하긴 급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정상 간 친서는 공개되지 않는 게 원칙이나 청와대는 전문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9월 8일 먼저 보낸 친서에서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사람의 목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고 했다. 이에 김정은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글줄마다 넘치는 진심 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다.…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다”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보름도 안 돼 우리 공무원 이씨가 북한군에 의해 참혹하게 사살됐다. 청와대는 친서를 보여주며 ‘의도치 않았던 참변’이었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차라리 공개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김정은에게 면죄부가 된 사과문을 보고 경쟁하듯 “이례적”이라고 긍정 평가한 중진 의원들은 또 어떻고. 이들은 김정은의 사과문에 반색했고, 피살된 이씨를 ‘월북자’로 보았다. 그러나 정작 김정은은 그를 ‘불법침입자’라고 했다. 월북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월북할 동기도 분명히 드러난 게 없다. 월북할 사람이 해상에서 경계표시용으로 쓰이는 엉성한 간이 부유물을 붙들고 있었을까. 설령 월북자라고 해도 월북자의 인권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 월북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읽힐 뿐이다.

정부의 대응에도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 군사문제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한반도평화본부장은 25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군은 북한이 실종자(공무원 이씨)를 발견해 심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후 사살한 뒤 방화해버린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북한이 (이씨 사살 때까지) 머뭇거린 5시간이 골든타임이었다”면서 “만약 군이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우리 군의 방치, 정부의 무능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중앙일보 9월25일)

‘대통령의 시간’, 신념과 고뇌 사이에서

‘대통령의 시간’ 논쟁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대통령은 해수부 공무원 이씨가 실종된 21일부터 북한을 규탄한 25일 오후까지 3일간 대통령의 행적을 분‧초 단위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건 발생 후 3일이나 지나 사건을 공개하고 입장을 발표한 것은 무엇인가 국민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 일부 의원들은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시간과 대비시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반경에 이씨가 실종됐다는 첫 보고를 받고, 다시 23일 오전 8시 반에 그가 사살됐다는 첫 대면 보고를 받았다. 이 사이, 곧 10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쟁점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이 사이에 어떤 보고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대북 규탄 입장을 발표한 것은 24일 오후 5시 15분). 하지만 23일 새벽 1시에 청와대에선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공간이다.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고 장관들끼리 회의를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청와대 측의 추가 설명이 있겠지만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연설(23일 새벽 1시 반)도 있고 해서 사건의 실체를 좀 더 확인하려는 대통령의 의사가 작용한 탓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누구라도 “설마, 그럴 리가?” 했기에, 문 대통령도 아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밖에도 더 명쾌하게 규명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여권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역시 김정은의 사과의 힘이 크다. 25일 오전만 해도 곤혹스런 표정들이 역력했으나 오후 들어 김의 사과 소식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김정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쏟아졌다. 여권의 대북담론의 좌장격인 정세현 민주평통수석부의장은 김정은이 “통 큰 측면이 있다”고 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은 “계몽군주 같다”고 했다. 이런 인식과 언행들이 여권 핵심부에서 표출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금 중요한 게 김정은의 사과인가, 아니면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우리 국민인가. 이씨의 유가족들, 특히 남은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비극의 戲畫化에 능한 이 선수들!

김정은의 사과로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이 끝난 것도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집권당이라면 마땅히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일에 온 힘을 쏟겠다고 천명하고 실천해야 한다. 김정은이 사과했다고 계몽군주라니?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일까. 북측 관계자들마저 냉소했을 것이다. 그런 계몽군주가 남한 동포들이 혈세(血稅)로 지어준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폭파해 잿더미로 만들었을까(아마 그래서 “통이 크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계몽군주로 칭송한 사람은 그 때 왜 항의다운 항의 한번 안했을까.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해졌으면 한다. 제대로 된 대북정책은 일희일비하는 경박함에서 벗어날 때 나온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관,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조언하고 질정했기에 딱히 덧붙일 것도 없다. 다만 이 정권 사람들은 대북문제를 남과 북, 다시 말해 ‘우리민족끼리’라는 좁은 프레임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마치 국내정치를 적폐와 반적폐로 보듯이 말이다. ‘평화 대 반평화’ 프레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평화(우리 편)에 반대해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야?”같은 단순논리는 정치적 구호로는 쓸모가 있겠지만 그것이 정책이 될 때에는 달라야 한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어떤 평화인가다. ‘대통령의 시간’ 논란도 평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념과 이로 인한 고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이분법적인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정권이 수없이 바뀌어도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끌어내는 데 둬야 한다. 비핵화를 외치는 것도, 대북제재 해제도, 남북관계 개선도 결국은 북한이 더 넓고,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다. 미국(한·미동맹) 핑계만 댈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보 특유의 유연함과 창의성을 발휘해 북을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하는 그 길에 진실 되고 튼튼한 돌 하나라도 반듯하게 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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