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희망과 감동의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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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입력 2020-09-2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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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21대 국회는 다르겠거니 했다. 엉망진창이 된 20대 국회를 지켜봤기에 ‘혹시나’ 했다. 헌데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나흘 동안 대정부 질문은(14~17일) ‘역시나’였다. 대정부 질문은 정부 정책을 짚고,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 인사 청문회로 전락한 채 진흙 밭, 개 싸움으로 끝났다. 국민들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는데, 그들만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한가했다. 지켜보는 내내 부아가 치밀었다는 이들이 한 둘 아니다.

나흘 동안 질의자로 나선 국회의원은 44명. 이들이 국무총리를 포함해 국무위원 15명과 주고받은 질의응답 시간은 1148분. 이 가운데 추 장관 아들 문제에 매달린 시간만 310분(27%)에 달했다. 첫날은 11명이 나서 300분 중 무려 151분을 추미애에 집중했다. 전체 질의응답 시간 가운데 절반이다. 질의는 기존 의혹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병사 한 명의 휴가 문제가 국민 삶보다 중요한 것인지, 이런 대정부 질문은 왜 하는지 짜증이 났다.

사실 추 장관 아들 사안은 단순하다. 다만 추 장관 태도가 정치적 논란을 증폭시킨 면이 없지 않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적절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야당의 집요한 정치적 공세는 납득할 수준을 넘어섰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이 다시 하락한 이유도 정도를 넘어선 공세에 국민들이 고개 돌린 결과다. 여당의 비호와 방어도 민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아예 ‘자유발언’ 형식을 빌려 질의 시간 전체를 변호하는데 할애했다.

추 장관 아들 문제는 이제 검찰에 맡기고 민생에 집중하자. 국회는 대정부 질문에 이어 국정감사(10월 7~27일)를 앞두고 있다. 국정감사는 한 해 농사를 돌아보는 중요한 자리다. 세금은 제대로 쓰였는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누수는 없었는지를 짚는다. 제대로 감사해야 방향 설정도 가능하다. 만약 국정감사마저 대정부 질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회는 무용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내각제 국가라면 의회해산까지 각오해야 한다.

국회사무처는 주 4일 동안 해왔던 감사를 주 5일로 권고했다. 국감 일정을 최대한 분산시켜 국회에서 진행되는 국감 참석 인원을 줄이려는 취지다. 지금까지는 자료 준비를 이유로 수요일은 관례적으로 감사를 쉬었다. 이에 따라 상임위마다 ‘수요일 국감’을 검토 중이다. 국감장 참석 인원도 50인 이내로 제한된다. 정부·공공기관은 참석 인원을 50인 이내로 조정해야 한다. 국감장 주변에 공무원들이 장사진을 쳤던 모습은 사라질 전망이다.

국감 기간도 조정될 여지가 있다. 우선 국감 기간은 3주지만 상임위 별로 탄력적인 운용이 예상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업무가 집중된 기관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상임위까지 비대면 회의가 가능하도록 하겠다. 여야가 국회법 개정에 합의한다면 비대면 화상회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 비대면 화상 회의가 가능하다면 국감 운영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는데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업무와 관련된 당사자다. 교육부와 대학, 광역단체, 행안부, 소방방재청, 산자부 등도 다르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는 2월 17일 첫 확진환자 발생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방역 업무에 매달려왔다. 업무 누적과 과로로 상당수 직원들은 한계에 달한 상태다. 교육부와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가와 교육 현장은 아직도 정착되지 않은 비대면 수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도 8개월 넘게 코로나19 방역에 행정력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이전 방식대로 국감을 진행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과도한 자료 요구나 피감 기관을 불러 호통 치는 국감은 재고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위기 극복에 힘쓰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국감이 바람직해 보인다.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위해서다.

정세균 총리는 취임 이후 8개월 넘도록 노란색 점퍼를 벗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청과 자치단체장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잡히지 않는다면 노란색 점퍼는 유니폼이 될 우려가 높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암울한 상황을 종식시킬 책임이 있다. 감동을 주는 국정감사는 첫 걸음이다. 언론과 카메라를 의식해 호통 치고 폭로하는 국감은 안 된다. 여야 지도부는 당장이라도 국감일정을 비롯해 형식, 내용까지 논의해야 한다.

추 장관 아들, 김홍걸, 이상직, 윤미향, 박덕흠은 검찰에 맡기자. 국정감사에서도 소모적인 정쟁만 되풀이 한다면 냉혹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기억하자. 국민들은 희망과 감동 있는 정치를 보고 싶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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