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치인, 관료, 그리고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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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입력 2020-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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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정치인과 관료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 중 하나. 자신들이 국민보다 많이 알고, 국민들은 계몽 대상이라는 오만함이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국민들은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앞선다. 그런데도 알량한 권력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들다 암초를 만나곤 한다. 자신들이 던지면 덮어놓고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민주정부를 만든 주역은 민주시민이다. 시민을 우습게 아는 관료 정치는 한국사회가 지닌 한계다.

최근 두 가지 정책에서 이런 경박함을 확인한다. 정부는 만 13세 이상 국민에게 2만원씩 통신비를 지원하고, 추석 연휴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한다.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이겠지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국민을 얕잡아본 건 아닌가 싶다. 먼저 통신비 지원이다. 여당과 정부 논리는 이렇다. 통신비를 지원하면 그만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은 성의이자 위로”라고 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그런 돈이라면 보다 긴급한 곳에 사용하라며 냉랭하다. 민주당 안대로라면 4640만명에게 9300억원이 필요하다. 이 돈은 전액 빚을 내야 한다. 국민들은 반문한다. 경기 부양 효과마저 의문시되는데 1조원 가까운 빚을 내 통신비를 지원하는 게 정상이냐고. 정부와 민주당의 선의를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통신비 지원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왜그 더 독(wag the dog)’이다.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통신비 지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58.2%는 통신비 지원은 '잘못한 일'이라고 했다. 부정적 답변은 모든 지역에서 높았다. 더 놀라운 것은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60·70대다. 60대(60.7%), 70세 이상(65.4%)에서도 부정은 압도적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이들조차 잘못됐다고 답한 것이다. 통신비 지원은 과잉 정치가 정책을 왜곡시킨 결과물이다.

차라리 추석 연휴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통행료는 징수하기로 했다. 내놓은 이유가 궁색하다. 통행료를 받지 않으면 귀성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통행료로 고향 방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통행료 몇 만원이 부모형제를 찾는 데 결정하는 판단 기준이 될까. 통행료가 아니라도 이동을 자제할 사람은 자제하고, 꼭 필요한 사람은 고향을 찾을 것이다. 통행료 징수로 이동 제한을 생각했다면 국민들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숙하다. 코로나19 집단 발병 당시 대구·경북에서 약탈은커녕 사재기도 없었다. 동일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땠는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지 알 수 있다. 수도권 시민들이 보여준 인내와 동참도 놀랍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속에서 경제적 고통과 불편함을 2주 동안 묵묵히 감내했다. 결국 언젠가 코로나19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극복될 것이다. 이런 시민들을 통행료 몇 만원으로 움직이겠다면 단견이다. 필요하다면 통신비 지원보다 통행료 면제가 합리적이다.

역사에서 보듯 시민의식은 우리사회를 지탱해온 원동력이다.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촛불 시위는 놀라운 성취다. 국민들 스스로 우리가 이렇게 기품 있는 시민이었던가 놀랐다. 당시 광화문 광장에는 200만명 넘는 시민이 모였다. 그런데도 약탈과 무질서는 고사하고 쓰레기까지 치우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세계 언론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독일 에버트재단은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촛불시민을 선정했다.

5·18광주시민혁명 때도 그랬다. 군사정권은 ‘폭도’라는 용어로 광주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시민들은 질서정연한 가운데 연대하고 서로를 보듬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공동체를 지켜냈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수록 연대하고 공감한다. 그런 DNA가 우리 속에 있다. 통신비 지원에 대한 거부감,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를 대하는 시선에는 시민이 빠져 있다. 시민들 편에서 생각하기보다 계몽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 결과다.

그러니 더는 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는 잠시 권한을 위임 받았을 뿐이다. 공동체를 움직이는 도저한 흐름은 시민이 만들어낸다. 민주주의는 이제 더 이상 피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을 믿고 존중할 때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과 관료들은 가끔 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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