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속에 숨은 우리들 미래의 초상

최준석 과학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 2020-09-01 18:55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이민 떠나야겠다’라는 글을 오늘도 보았다. 어느 한국인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SNS에 휘갈겼다. 나라가 잘 되고 있다, 못 되고 있다 하는 천인의 얘기가 골목과 사이버 공간에 흐른다. 흐르다 못해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으로 넘친다. 한국을 떠나다니? 어디로 가겠는가? 갈 데는 없다. 공연히 하는 얘기다. 힘들어서 못살겠다니, 그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자기 마음을 다친 것이다. 한국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라면 그건 ‘나라 사랑’을 아니함만 못하다.

한국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약의 디딤대에 올라 서 있다. 구성원 모두가 그걸 다 알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사람도 있고, 곧 선진국이 된다고 하는 약간의 다른 시선이 있을 뿐이다. 도약을 하려면 개발도상국 시대에 입고 있던 낡은 옷은 벗어야 한다. 앞선 나라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입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 세계관은 시공간적으로 시야를 넓히는 게 핵심이다. 전에는 보지 않던 걸 봐야 한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라고 질문할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과학이 필요한 순간‘을 21세기 초 한국인은 맞고 있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미래를 위한 지도, 그건 과학책에 나와 있다. 책 몇 권을 갖고 그 얘기를 해 본다.

먼저, 과거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는 책 한 권이 있다. 일본과의 종군 위안부 관련 역사 갈등에 새로운 시선을 준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역사>. 이 책은 핵심 메시지는 따로 있으나, 나는 한·일간의 역사 갈등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준다는 점에서 이 두툼한 벽돌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한국은 피해자이고 일본은 가해자다. 스티븐 핑커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미묘하게 다른 심리를 잘 보여주는 문장들이 책에 있다. 몇 개를 보자.

“피해자는 너무 많이 기억하는 반면에, 가해자는 너무 적게 기억한다.”
"피해자는 근면한 역사가이자 기억의 보유자이다. 가해자는 실용주의자이고 현재에 굳게 뿌리 내린다.“
"많은 지도자는 국가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자국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불공평했던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약간의 번영쯤은 기꺼이 희생한다(약간이 아닐 때도 많다.) 국민도 그런 지도자를 따르곤 한다. 심지어 민주 국가에서도.“ 뜨끔하다, 이 대목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은 무고하고 오래 고통을 겪은 피해자로 여기고, 상대는 악랄하고 배은망덕하고 가학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양측은 자신의 진심 어린 믿음에 부합하는 역사적 서사와 사실들을 수집한다.”

일본과 한국인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보는 시선이 상반된다. 핑커에 따르면, 한국은 “너무 많이 기억하는 반면”, 가해자 일본은 “너무 적게 기억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법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핑커가 전하는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해법이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모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을 위한 생각을 풀어놓았고, 그건 한·일 간의 갈등 해법에 준용할 수 있다.
“비극은 두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적인 해결책이 있고, 안톤 체호프식의 해결책이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저 높은 곳 어딘가에는 정의가 어른거른다. 반면에 체호프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이 환멸을 느끼고, 씁쓸해지고, 상심하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 있다.” 피를 흘리고 죽을 것인가? 씁쓸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해결책을 추구할 것인가? 아모스 오즈는 “나는 셰익스피어식이 아니라 체호프식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비극이 해결되길 바란다”라고 한다. 나 역시 한·일 간의 갈등에 한쪽이 완승을 하는 경우의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양측이 완벽한 정의를 추구할 때는, 그들 자신은 물론 후손에까지도 분란을 선고하는 셈”이라고 한다.

두 번째 과학 책은 <대멸종>이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고(古)척추생물학자가 고생대를 끝내고 중생대를 열었던 지구생명 멸절 사건을 기술한다. 개인적으로 학교 다닐 때는 지질시대 표를 무조건 외우기에 바빴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그리고 고생대 안에는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하는 순서로 되어 있는 연대표를 그냥 외웠다. 성인이 되어 차분히 ‘생명의 역사’ 관련 책을 보니, 지질 시대들의 ‘사이’가 보였다. 왜 지질시대가 바뀌었는지를 학교에서 가르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근래 들어 이 부분 연구에 큰 진척이 있었다. 그걸 잘 드러내는 게 마이클 벤턴의 책 <대멸종>이다.

이 책은 ‘과거에 닥쳤던 위기’를 잘 이해함으로써, 미래에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고생대 말에 지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생명 몰살 사건이 일어났다. 2억5100만년 전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의 도시 페름이라는 곳에서 대형 화산이 분출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재앙을 불러올 줄 몰랐다. 하지만 페름의 대형 화산이 분출을 멈추고, 쏟아져 나온 마그마가 굳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페름 대평원을 만들었을 때는 지구 생명의 90% 이상이 숨이 끊어져 있었다. 화산은 쉴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오늘날 시베리아 트랩이라고 불리는 용암은 60만년간 흘러내렸다. 화산 폭발로 나온 이산화탄소가 지구 전체를 온실로 만들었다.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올라갔다. 그리고 산소가 줄어들어, 초(超)무(無)산소화(superanoxia)가 진행됐다. 급격한 기후 변화에 동식물은 피난처를 찾지 못하고 끝났다. 2억5000만년 전 사건이 왠지 기시감이 있지 않은가? 이산화탄소, 지구온난화, 온실효과. 그렇다. 현재 진행 중인 6번째 멸종 사건과 대동소이하다. 많은 학자가 현재 지구는 또다른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지구에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뿜어내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런데 문제 의식이 없다. 한국인은 한국 문제에 매몰되어 있다. 빅히스토리는 보지 못한다. 긴 시간(deep time) 속에 짧은 시간을 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뭘 해야할지를 알지 못한다. 빅히스토리를 알면, 역사 시대를 뛰어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과거의 허깨비와 싸울 시간이 없다.

과학을 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은 인간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인본주의적 사고는 르네상스 이후 인간 문명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이로부터 벗어날 때가 됐다. 지구에는 인간 말고 다른 동물이 살고 있으며, 그 동물의 존재를 인간은 동반 거주자로서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난해부터 쇠고기는 먹지 않는 소극적인 채식주의를 시작했다.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스웨덴 10대 학생 툰베리의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을 읽은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안전한 지구를 생각한다면 어른들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보다 앞선 세대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을 바꿔야겠다고 생각, 일부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육식이라는 우리의 습성을 왜 버려야 하는지를 더 알게 되었다. 닭은 한국에 1억7299만 마리가 산다. 한반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동물이다. 자연에 살고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잡혀 먹기 위해 사육된다. 사육 닭에는 육계와 산란계가 있다. 육계는 치킨집에 팔리는 치킨용으로 사육되고, 산란계는 알을 얻기 위한 게 목적이다.
두 닭은 품종이 다르다. 산란계가 낳은 알이 부화하면 절반은 수컷이고, 다른 절반은 암컷이다. 암컷은 커서 알을 낳기에 가치가 있으나, 수평아리는 알을 낳지 못하니 소용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도축된다. 미국 축산산업을 보고한 한 자료는 “산란계 수평아리들은 대부분 연이어 늘어선 파이프에 전기가 흐르는 판 위로 들여보내져 폐기된다”라고 전한다. 어떤 병아리들은 거대한 플라스틱 컨테이너 속으로 던져지고 그 안에서 질식사한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의 게멜데 미술관에 갔을 때 ‘천국’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았다. 네덜란드 화가 룰란트 사베리(1576~1639)의 1626년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잘 보여줬다. 천국은 사람으로 가득 찬 장소가 아니었다. 사베리의 천국에 사람이라고는 남녀 한 쌍뿐이었다. 사람보다는 동물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지금 지구는 어떤가? 사람밖에 안 보인다. 지금 이곳이 우리가 꿈꾸는 천국인가? 아니다.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최준석 과학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iohcsj@gmail.com
글로벌 k-방역포럼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