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는 의사' 전남 완도군 청산도 푸른뫼중앙의원 이강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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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박승호 기자
입력 2020-08-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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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살에 들어가 '베푸는 즐거움'에 벌써 16년째 진료

  • 고마움을 꼭 보답하는 섬주민 인정에 매료 "나도 청산도 사람"

  • 건강 안좋아져 후임 원장 나오길 기대...작년 12월에야 '궁궐'로 이사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가면 ‘베풀고 퍼주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 푸른뫼중앙의원 이강안 원장(85세)이다. 올해로 16년째 이 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청산도는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걸리고 전라남도가 ‘슬로우시티’로 정할 만큼 유유자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주민은 1206가구에 2329명.
이 원장은 섬 주민들을 정성껏 진료하고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무료다. 여기저기 돈이나 물품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내놓고 산다.
의과대학 다닐 때부터 의료봉사를 자주 갔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남을 돕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그때부터 봉사가 몸에 뱄을까, 평생 그렇게 살았다.

 

이강안 원장과 부인 진종인 여사의 모습. 이 원장은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아주경제에게 부인과 함께 사진을 찍도록 허락했다. 두 사람의 편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박승호 기자]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고를 거쳐 1962년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외과 전문의가 됐다.
서울 잠실병원, 혜민병원에서 원장을 하다가 강서구 화곡동에 개원해 10년 동안 진료했다.
잠시 쉬던 중 친구의 제안을 받고 2004년 7월 청산도에 오게 됐다.
정치인 조세형 전 국회의원이 2003년에 세운 푸른뫼의료재단의 푸른뫼중앙의원이다.
당시 조 의원 보좌관인 친구가 “이곳에서 근무하던 의사들이 1년 사이에 4명이나 바뀌었네. 이대로 가다가는 의사가 없어서 병원문을 닫을 지경이니 자네가 도와주게나”하며 간청했다.
그래서 1~2년만 머물 요량으로 승락했다가 올해로 16년째 그곳에서 살고 있다. 당시 나이가 70살. 그 사이 아내 진종인 여사도 합류해 노부부는 이제 '청산도 사람'이 다 됐다.
이 원장은 “당시에 와서 보니 하루 환자가 10여명, 많으면 20명 정도였어요. 병원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지요. 숙소는 허름한 스레트 집이었고...”
잠시 살다 갈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어서 곧바로 생각을 바꿔먹었다.
마을마다 찾아가 주민들에게 “성심껏 잘 진료하겠다”며 인사하고 알렸다. 위급한 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해 낫게 하자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주민들은 이 원장을 점차 믿게 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장학금을 내놨고 어린이날에는 마을 어린이들에게 빵을 선물했다. 진료와 봉사활동, 기부로 인심을 얻자 2009년에는 ‘청산면 면민의 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받은 금 10돈은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며 군수에게 다시 맡겼다.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매월 50만원을 지원하고 텀블링 설치비로 1000만원을 따로 기부했다.
이 원장은 “돈이 우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자 당시 보건소의 기본 진료비가 500원이고 중앙의원은 1500원으로 3배나 많은데도 환자들 발길이 이어졌다. 하루 평균 120명 정도.
이후에는 소록도에 라면과 건빵을 보냈다. 직접 가서 진료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서다. 청산도 주변에 있는 북모도, 서모도에도 달걀과 건빵, 라면을 보냈다. 이 원장은 이들 섬에 가서 환자들을 무료 진료를 하곤 했다. 마을이나 학교에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두말없이 도왔다. 경찰관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지난 40년 동안 해온 일이었다. 주민들 칭송이 자자했다.

 

청산도항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푸른뫼중앙의원 모습 [사진=박승호 기자]



“청산도 주민들은 순박하고 정이 많아요. 어려움을 해결해 주면 꼭 은혜를 갚습니다. 고맙다면서 참기름이나 김치, 채소, 생선을 갖다 줘요.” 그래서 집 냉장고에는 주민들 선물로 늘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제7회 성천상을 받았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의료복지 증진에 기여하면서 사회적인 귀감이 되는 의료인을 발굴해서 주는 상이다. 또 10월에는 ‘자랑스런 전남인상’을 받았고 해마다 보령의료봉사상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EBS교육방송이 이 원장을 주인공으로 한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TV 찍느라 석 달 동안 애먹었지만 전국적인 유명인이 됐다고 한다. 덕택에 의약품 선물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 박사(1911~1995)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이웃 사랑을 신념으로 살기를 권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나중에 장 박사의 외조카를 큰 사위로 맞이하게 돼 인연이 이어졌다.
프로야구 기아타이거즈 팬이어서 선수들이 홈런 1개를 칠 때마다 1만원을 주는 적금을 들고 있다. 또 오랜 기간 병상에서 지내는 차영화 전 코치를 돕기 위해 2013년부터 해마다 성금을 보내고 있다.
“최근 위내시경을 했는데 정상으로 나왔어요. 1년 이상은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 있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을 챙기지만 나이탓인지 최근 심장이 약해져 걱정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뒤를 이어 푸른뫼중앙의원을 운영할 의사를 찾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누군가 꼭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10년만 젊다면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지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나이를 아쉬워했다.
지난해 12월에야 지금 살고 있는 ‘양옥집’으로 이사했다.
부인 진종인 여사(83)는 “곰팡이가 피고 지네가 나오는 낡은 스레트집에서 살다가 지금은 궁궐에서 산다”며 활짝 웃었다.
오죽했으면 전주고 동문들이 찾아와 고생한다며 몰래 두툼한 돈봉투를 서랍에 넣어 놓고 갔을까.
평생 남을 돕는 즐거움을 누려서인지 노부부의 얼굴은 환하고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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