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를 독재자라 불렀던 사람들

장용진 사회부 부장입력 : 2020-08-13 18:00
“대통령이라는 자가 이 나라를 공산당에게 넘겨주려 한다.”

마치 우리나라 어느 보수단체 집회에서나 들릴 법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 말은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던 조지 C 월리스의 연설내용이다. 민주당 출신이던 그는 앨라배마 주지사를 네 번이나 역임했고, 한때 미국 남부를 휩쓸었던 ‘독립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다.

‘공산당에게 나라를 넘겨주려 한다’는 비난을 들었던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존 F 케네디이다. 월리스는 케네디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기도 했고 ‘미국의 정체성을 혼란시켰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1963년 골드마켓 연설에서는 “우리에게 족쇄를 채운 독재자를 향해 외쳐야 한다. 위대한 우리 조상들의 이름으로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고 폭정(tyranny)의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는데, 역시 케네디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조지 월리스는 미국 역사장 가장 악명이 높은 인종차별주의자 중 하나로 꼽힌다. “오늘도 인종분리, 내일도 인종분리, 영원히 인종분리(I say segregation now, segregation tomorrow, segregation forever.)”라고 외쳤던 그의 연설은 아직까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전설로 돼 있다.

진보성향인 케네디 대통령과는 원래부터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지만 결정적으로 케네디와 척을 지게 된 것은 1963년 7월에 벌어진 ‘앨라배마 주립대 사건’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Stand in the Schoolhouse Door"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기도 한 바로 그 사건이다.

당시 앨라배마주는 흑인들이 다니는 학교와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분리돼 있었다. 주립대학에는 흑인이 입학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63년 美연방 대법원이 흑인들의 입학을 허용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급반전하게 된다. 더 이상 흑인들을 거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조지 월리스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학교 정문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아섰다. 연방정부에서 법무부 차관까지 보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미 연방군이 동원된 이후에야 물러섰다. 이 과정에서 캐네디 대통령은 주 방위군을 연방군에 편입시키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동원했다. 

이 사건으로 조지 월리스는 민주당 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민주당의 연방 대통령과 그처럼 극단적으로 대결(혹은 '항명')을 벌였으니 어쩜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무력을 동원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저항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민주당원은 드물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뒤,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아질수록 월리스에 대한 비난도 커져갔다.

사실, 조지 월리스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당시에도 물론이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도 도무지 수긍이 안된다. 인종차별정책을 그토록 당당하게 시행하려 했던 것은 물론이고 정당한 대통령의 지시를 힘으로 거부한 것도 그렇다.

감히 인종차별주의자 따위가 케네디 같은 인물을 독재자라고 공격한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다. 게다가 인종차별을 막는 것을 두고 ‘폭정’이니 ‘국가 정체성’ 운운했다고 하니 미국의 정체성이 인종차별-백인우월주의였다는 건지 싶은 생각도 든다. 흑인의 대학입학을 막은 월리스야 말로 폭정이고, 힘으로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 한 행위야말로 독재라고 불려야 맞는 게 아닌가 말이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의 대표라고 하는 미국에서 이런 사람이 유력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그런 억지가 통해서 표를 얻어 냈고 남부지방을 휩쓸기도 했다고 하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비방과 모함,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값싼 선동가”라거나 “이기적인 급진주의자”라고 욕했다.

이런 독설 덕택인지 그는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나중에는 민주당을 탈당해 ‘독립당’이라는 제3 정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가 됐다.

기껏해야 50여년전, 민주주의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얼마 전 김무성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한 토론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하태경 의원이. 지난해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신상진 전 의원 등이 문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집회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현직 검찰총장까지 말을 배배 꼬아가며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말로 비방대열에 동참했다.,

대한민국에는 비판의 자유가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언제나 국민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할 의무도 있다.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검찰총장의 경우도, 그 경망스러운 언행이지만 굳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얼굴에서 조지 C 월리스가 겹쳐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명심했으면 좋겠다. 보기에 따라 매우 역겨울 수도 있다.

[사진=장용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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