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기상청'으로 돌아본 '사이버 망명'의 역사

우한재 기자입력 : 2020-08-11 14:26
제재와 검열을 피해, 혹은 더 나은 서비스를 향해

대한민국에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폭염이라더니...50일째 비만 내리네"
기상청의 예보 정확성에 대해 조금 살을 보태어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국민을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라고 하겠다. 이미 기상청이라는 키워드는 '구라청'이라는 멸칭과 더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웃음거리이자 비난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혹자는 내일 날씨를 오늘의 내 무릎과 허리에 물어본다고 할 정도다. 

기상청도 이 오명으로부터 한 치라도 멀어지고자 나름의 애를 썼다. 관측과 예보의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했다. 78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한국형예보수치모델(KIM)을 지난 4월 도입했다. 한국만의 날씨 예측 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부터 2019년까지의 긴 개발 기간을 두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올해도 그 비용은 눈먼 돈이 되어 공중으로 사라진듯 하다. 기상청은 늘 그래왔듯 '오차'와 '변수'를 거론하며 애달픈 자기 방어에 급급하다. 하지만 그 방어 논리가 사실일지언정 이를 대중들이 납득하기엔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다소 미안한 감은 있으나 이렇게 뼈 때리듯 아프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기상청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우리들 머리 위의 날씨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보다 쟤들이 더 잘 알아?"
점쟁이가 자기 집 천장에 물 새는 것도 모르는 마당에, 우습게도 그 사실을 귀띔해 준 이가 다른 동네 점쟁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일부터 어느 점집에 문전성시가 펼쳐질 것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

당초 기상청은 올 여름 역대급 폭염을 일찍부터 예보했으나 오히려 7월 내내 비가 쏟아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10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6월24일 시작된 중부지방 장마는 오는 14일까지 이어져 역대 최장 기간 장마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어 7월 중순에는 8월초부터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장마가 더 길어질 것이라며 예보를 수정했다.
 

노르웨이 기상청 홈페이지 상의 서울 날씨. [사진=노르웨이 기상청]


기상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누리꾼들은 급기야 국내 날씨 예보를 노르웨이나 핀란드, 미국, 영국 등 해외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기상 망명족'을 자처하는 것이다.

기상 망명족 사이에서 정확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해외 사이트는 노르웨이 기상청이 대표적이며, 이 외에 핀란드 기상청, 미국 '아큐웨더', 영국 'BBC웨더' 등도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기상 예보 서비스는 서서히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이버 망명 사태, 처음이 아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상 망명족'은 큰 범주에서 봤을 때 '사이버 망명'이라는 집단 행동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본래 사전적 의미의 사이버 망명은 다른 국가의 인터넷 호스팅 업체로 서비스를 이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이전하는 '배경'이다. 때문에 통상적인 의미로는 자국 내에 서버를 둔 인터넷 게시판, 이메일, 블로그, SNS 등을 이용하던 사용자들이 국가기관의 사이버 검열이나 제재를 피해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는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이버 망명을 선택한 사람들을 '사이버 난민(Cyber 難民)'이라고도 부른다.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서비스, 또는 더 나은 품질의 서비스를 향유하기 위한 사이버 난민들의 망명지는 '노르웨이 기상청'이 이전에도 있어왔다.
 
돈을 좇던 '프리챌'의 몰락, 웰컴 투 싸이월드!
다모임, 아이러브스쿨 등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일색이던 시대에 약간의 개방성과 확장성을 앞세워 시장에 진입한 프리챌은 한때 당시 포털 페이지뷰 1위를 달리던 야후!코리아를 위협할 정도로 위세가 막강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프리챌. 한때는 야후!코리아와 견줄만큼의 파급력을 자랑했다. [사진=프리챌 로고]

하지만 2002년 하반기, 급증한 가입자 수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자 이를 수습한답시고 별안간 '유료화 정책'을 내세운다. 그간 무료로 이용했던 커뮤니티에 대해 '관리비'를 받겠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가입자들을 천천히 유료 이용자로 전환시키는 것을 유도하기보다 극히 짧은 기간 안에 선택을 강제하면서 "유료화하지 않은 커뮤니티는 폐쇄시키겠다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큰 반발을 샀다.

프리챌의 유료화 사태로 클럽 등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네티즌들은 대거 싸이월드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후 싸이월드는 커뮤니티 포털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고 10년 가까이 그 아성을 이어간다.
 
'미네르바 사건' = 온라인 네트워크 지각 변동의 서막
‘사이버 망명’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자리 잡은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의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한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아고라에 위기의 원인과 전망, 한국정부 대응의 문제점 등을 분석한 글을 잇달아 올린 박대성 씨를 못마땅하게 바라본 정부가 그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박씨의 글 중 ‘정부가 금융사에 환율개입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꼬투리 삼은 것이다.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2009년 4월 20일 무죄로 석방됐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온라인 게시물에 대한 정부 검열이 노골화 되면서 국내의 누리꾼들은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해외 기반의 서비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와있던 이 서비스는 장차 도래할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새로운 서비스의 이름은 '트위터'였다.
 

[사진=트위터 로고 ]

 
저 싸이 닫았는데... 혹시 페북 하세요?
매력을 잃은 브랜드가 다른 경쟁자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경우도 '사이버 망명'의 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유저의 입맛대로 꾸민 사이버 공간,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만의 작은 '사각형 집'. 이 모든 것이 유료였음에도 유저들은 도토리를 사기 위해 앞다투어 지갑을 열었다. 한국인 정서에 들어맞는 네트워킹 서비스를 골자로 내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싸이월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료화 모델'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간 쌓아온 고객 충성도에 스스로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한때는 그야말로 '국민 서비스'의 입지를 자랑했던 싸이월드. [사진=싸이월드 로고]


시대적인 흐름도 있었다. 여기에 때마침 등장했던 트위터,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생태계에 최적화된 서비스 모델을 내세우며 자연스럽게 국내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한 것이다. 보다 개방적이고 사용하기 편리한, 심지어 유료도 아닌 새 서비스는 그 자체로도 유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가 메가폰을 잡고 외치지 않아도 조용하고 일사불란한 '망명'은 또 다시 일어났다.
 

페이스북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생태계에 최적화된 서비스 모델을 내세우며 싸이월드의 아성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물론 지금은 페이스북도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사진=페이스북 로고]

 
카카오톡 검열? 텔레그램으로 들어와!
사이버 망명의 가장 대표적인 국내 사례로는 2014년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따른 '텔레그램'의 급부상을 들 수 있겠다.

2014년 경찰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채팅방의 대화 내역은 물론 그의 지인 3000명의 신상정보를 입수했다. 메신저 점유율 1위인 카카오톡에 대한 정부의 검열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고, 이것이 사이버 망명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증폭시켰다. 특히 같은 해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검찰과 경찰이 사이버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를 차단하겠다며 인터넷과 SNS 등을 수시로 감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사이버 망명'이 일어났다. 망명자들의 행선지는 바로 '텔레그램'이었다.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2014년 10월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등 시민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사찰받은 내용을 공개하며 공권력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불안감을 느낀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대거 독일에 서버를 둔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이동하자, 위기감을 느낀 카카오 측에서는 국가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대화 내용을 3~7일 단위로 모아 수사기관에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사과했다. 또한 2013년 이후 감청 요청이 147건이 있었고 압수수색 영장도 2013년 이후 4807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진=텔레그램 로고]

아울러 당시 줄곧 100위권을 맴돌던 텔레그램은 국내 애플 앱스토어 무료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에서 카톡을 제치고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있는 데다 암호화된 대화내용은 해독할 수 없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기상 정보, 이제부터라도 공학의 강국답게
대한민국 기상청은 엄연한 공공기관이다. 상술한 '서비스'들과는 설립의 배경과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기상청의 업무는 '서비스'의 형태로 국민에게 전달된다. 이는 공공기관임에도 서비스로서의 정체성을 겸유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아가 정확한 기상 예측 능력은 기관으로서의 의무이자 서비스로서의 경쟁력이 된다. 심지어 이 모든 과정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사기업들보다 더 가파른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다.

 

 

처참한 적중률로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해서 정부가 별안간 기상청을 폐지하고, 대신 노르웨이나 영국 등으로부터 기상 정보를 '수입'해 오는 촌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대중들에게 연어의 원산지 정도로나 각인됐던 노르웨이가 갑자기 '기상예보의 맛집'으로 부상하면서 대한민국 기상청이 부르짖는 공공재적 역할은 다소 객쩍은 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응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비난 속에도 기상청은 지속적으로 오차율을 줄이며 집중호우 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현재 사용 중인 슈퍼컴퓨터 4호기에 이어 보다 성능이 향상된 슈퍼컴퓨터 5호가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슈퍼컴퓨터 5호는 지구 대기를 지역별로 나눠 분석하는 수치예보모델의 해상도를 더욱 낮춰 일기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늘 그래왔듯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다. 세금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그 발전은 구체적인 성과로 돌아와야 한다. 되도록이면 적게 내는 것이 좋겠지만, 기왕 낸 돈에 대해서는 그만한 값어치를 요구할 권리가 국민에게는 분명히 있다. 국민의 세금이 보다 당당한 결실로 돌아오는 날이 속히 오길 고대한다.
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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