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부자들] IMF·금융위기로 두 번 고비…리모델링이 되살린 '이원재 회장'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재환 기자
입력 2020-08-03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파산한 건설사 사장에서 건축가, 투자강사로 인생 3막

  • "진심으로 도와주면 돌아오더라"…파란만장한 삶 교훈

<편집자주> 우리는 한 해에 부동산 자산이 수억원씩 불어나는 시대에 살아왔습니다. 혹자는 이 기회의 땅에서 큰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적은 이윤에 만족하거나 손해를 보면서 부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30대 이상 성인남녀가 두 명 이상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누가 어디에 뭘 샀는데 몇억원을 벌었대"와 같은 주제가 으레 오갑니다. 삽시간에 궁금증의 초점은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에 맞춰지죠.

이에 본지는 소위 '아파트부자'로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와 재테크 노하우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공담과 실패 경험뿐 아니라 기회와 위기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과 전략, 그 결과까지 전하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30부작으로 연재합니다. 이 기록으로써 우리 모두 나름의 교훈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그래픽 = 김효곤 기자]

다시 일어 선 원동력 '인적자원'
"IMF로 망하고, 다시 일어설 때쯤 금융위기가 와서 또 망하고. 인생극장 같은 삶이 보는 사람한테야 재밌겠지만, 내는 죽도록 힘들었다 아입니꺼."

아파트부자들 스물일곱 번째 주인공은 토지·상가·주택 리모델링 전문가 이원재 '해봄 부동산아카데미' 회장이다.

내세울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듭 고사했던 그는 종합건설사 사장에서 소규모 건축가, 부동산 투자 강사까지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한 번도 힘든 파산을 두 번이나 겪고 재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는 인간관계를 꼽았다. "진심으로 도와주면 돌아오더라." 간단하고도 어려운 명제의 산증인인 셈이다.

실제로 IMF 이후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던 것도, 빈털터리로 돌아온 그에게 수억원의 투자금을 빌려준 것도 모두 그간 쌓아온 인적자원과 포기하지 않는 뚝심 덕분이었다.

재기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 그는 10필지가량의 땅을 개발하고 8채가량의 낡은 상가·주택을 사들여 새롭게 단장해 임대하거나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다소 생소한 땅 리모델링은 대지를 깎거나 높이고 필지를 합치거나 나누는 방식(성토·절토·합필·분할·맹지해결)으로 전보다 가치를 더 높이는 개념이다.

이로써 풍족하지 않지만 "세 끼 잘 챙겨 먹고 아침, 저녁으로 얼굴만 봐도 고맙다"는 아내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는 안정적인 삶을 얻을 수 있었다.
두 번 망하고 얻은 교훈 "부동산 안목 있어야"
이 회장이 매물 매입부터 기획·설계·관리까지 아우르는 '디벨로퍼'로 거듭난 계기는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다.

건물을 새로 짓는 일만큼, 좋은 물건을 찾아 최적의 가격에 매수한 후 가치를 높여서 매각하는 부동산 안목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IMF 때 종합건설사를 하다 부도가 나서 완전 거지가 됐어요. 학교도 건축을 나왔는데, 먹고 살 일거리가 없으니까 일주일 동안 물만 먹고 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건설회사 하다 말아먹은 사장 중에서 한 푼도 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서 조금 손 보고, 세입자 맞춰서 팔고 그런 사람이 있길래 리모델링해서 되파는 방법을 생각했죠."

"이때 부동산이 돈이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경매나 채권, 펀드와 같이 자본을 굴리는 방법을 배우면서 조금씩 종잣돈을 쌓았지요."

외환위기 이후 압류품으로 쏟아지던 부동산과 채권·펀드 등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사들여 웃돈을 얹어 파는 식으로 종잣돈을 마련한 것이다.

2002년경에는 다시 사업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부동산 투자를 하던 건설사 출신 지인과 함께 경북 구미에 있는 한 산을 들어내고 공장용지를 만들기로 했다.

"나이가 저보다 20살 이상 많았는데, 이 사업을 계기로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방법부터 경영, 인허가 등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워나갔습니다."

"머슴을 부리려면 내가 상머슴이 돼야 한다거나 사업 파트너와 인간관계를 어떻게 잘 쌓아가야 하는지 등등이요. 말단 사원, 대리도 나중에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아침 5시30분이면 현장에 가서 새까맣게 될 정도로 일하고, 시간이 너무 늦으면 차 안에서 자고 그렇게 현장을 다 만들었더니 금융위기가 온 거예요."

금융위기 사태에 공장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경매로 물건이 넘어갔는데도 감정가의 절반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유찰이 반복됐다.

"감정가 50%에 팔려도 10억원이 넘는 빚을 갚을 길이 없었지요. 동네 이장이 보증 서준 것도 있는데, 난리가 났어요. 인생 참 비참하대요."

그는 평소 친분을 쌓았던 농협 조합장과 전무에게 찾아가 경매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떻게든 시세 비슷하게라도 팔아서 줄도산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조합장한테 경매 좀 풀어주이소. 하니까 팔 수 있나. 묻더라고요. 한번 해볼게요. 했죠. 막막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다행히 형동생하던 아우가 어떻게든 매수자를 구해줬습니다."

"삼성전자에 휴대폰을 납품하는 회사더라고요. 통장에 계약금을 넣어준다는데 계약금으로도 부채 탕감이 안 되니까 '2억만 더 도' 했는데 믿어줬어요. 참 어렵게 팔아 치웠습니다."
남은 돈 2000만원…포기 않고 리모델링으로 재기
IMF 이후 10여년간 갖은 고생 끝에 그에게 남은 돈은 2000만원 남짓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 실패를 계기로 "잘 사서 잘 파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다시 일어설 기회는 부동산 학원에서 찾아왔다. 동대구역 역세권 개발호재가 뜬소문처럼 돌 때 강의장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에게 추천한 매물이 괜찮은 수익률을 안겨주면서 신뢰를 쌓았다.

"계속 실패해서 그런가, 일단 아는 건 많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동네 돌아다니면서 공부한 걸 토대로 회원들한테 이건 사면 안 된다. 저건 될 거 같다 하면서 돈을 꽤 벌어줬어요."

"이때 인간관계가 생겨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돈을 모아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 썩어가는 여관을 철거해서 일반근린시설로 만들고 단장했어요."

첫 리모델링은 동대구역 인근 3층 상가였다. 회원에게 받은 10억원과 대출 8억원에 리모델링으로 부대비용 포함 1억9000만원이 들었다.

이로써 전체 임대료가 360만원에 불과했던 매물은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 1200만원으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현재 매매가격 시세는 34억원이다.

자본이 생기자 대구 외곽 슬럼가에 있는 소형 주택으로 돈을 불리기 시작했다. 6000만원 매물을 대출 4000만원을 끼고 매입해 2000만원 정도 들여 수리한 후 되파는 식이다.

"매입해서 매각까지 대략 6개월이 걸리는데, 기존 가격 대비 두 배 이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세금 떼고 한 채당 2000만~3000만원 정도가 남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자본을 쌓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수십억원대 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죠. 현재 진행형이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앞으로 그는 다사다난한 시절을 뒤로한 채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커피를 배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지식을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강의를 시작했고, 회원들한테 커피 타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얻고 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주는 게 남는 거라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살고 싶네요. 그동안 부모와 형제, 처자식, 주변 친인척을 너무 많이 괴롭게 한 것 같아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