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엿보기]동인천 탐험단: 신흥동 일곱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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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서 기자
입력 2020-07-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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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일곱 주택’은 인천 원도심을 탐험하며 도시의 숨겨진 가치와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동인천 탐험단의 2019년 활동을 담은 도시연구 자료집이다.

재생건축가인 이의중과 사진작가 오석근, 노기훈, 시각예술가 김수환, 카마다 유스케, 큐레이터 고경표가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율목도서관, 인천부윤관사골목과 긴담모퉁이길이 아름다운 인천 원도심의 ‘신흥동’에서 현재 재건축 지역이 된 구역을 대상으로 했다.

일본에서 재생건축을 공부한 건축재생공방 대표 이의중이 신흥동 재건축 지역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적산 가옥 중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생활문화상을 보여줄 수 있는 7개의 집을 선정하였고 각 주택에 대한 해설과 도면을 그렸고, 참여 작가들은 문헌자료 탐색, 사진, 영상, 드로잉 등으로 각 주택을 기록했다.

이는 인천 지역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도시의 가치를 다채로운 형태로 실험하고 실행하여 엮어낸 것으로,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기 전 도시와 삶의 모습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의미한 도시 자료를 민간 차원에서 진행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진행된 ‘동인천탐험단-신흥동’편에서는 근대건축연구자이자 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인 도미이 마사노리가 일제강점기 지도를 통해 읽는 신흥동과 재개발 지역 적산 가옥들에 대한 해설을 했고,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인 배성수는 신흥동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역사, 도시 구조, 특징 등을 현장 답사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 내용들 역시 ‘신흥동-일곱 주택’에 실려 있어 현장감을 더해준다.

‘동인천 탐험단: 신흥동 일곱 주택’은 인천의 원도심은 물론, 대한민국의 오래된 도시들과 지역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과 그것을 활용하는 예술적 방법론들, 그리고 공공성, 공공재, 공유자산 등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고 그 활용 방안에 대해서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이 쏟아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든지 답을 구하기에 앞서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결과물들이 바로 그렇게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도시에서 새롭게 들여다보는 시간과 방법을 만들어 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한편 ‘동인천 탐험단: 신흥동 일곱주택’ 발간 출판기념회는 오는23일 오후7시부터 인천 중구 개항로 121길 12 '부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 지은이
△고경표(Ko kyungpyo) 큐레이터
도시, 사회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에 내재된 다양한 이야기와 자료 등을 수집하여 변주하여 전시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국가의 환영>, <비욘드 레코드>, <소리로 기억하는 도시 부평 신촌> 등을 기획하였다.

△김수환(Kim Soohwan) 시각예술가
2007년부터 노동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욕망을 회화, 애니메이션, 설치작업 등의 방식으로 이야기 해오고 있다. <즐거운 나의 집>, <가족>, <성기소년의 탄생> 등을 작업했고 그래픽디자이너를 겸하고 있다.

△노기훈(Noh Gihun) 사진작가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때로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요코하마 사쿠라키초 역에서 도쿄 신바시역까지 걷고 왔다.

△오석근(Oh Suk Kuhn) 사진작가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천을 중심으로 나와 우리를 성찰·해체하고 대안적인 삶을 살기 위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품으로 <교과서 철수와 영희>,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축인천仁川> 등이 있으며 개인과 국가트라우마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고 국가폭력 등 개인의 잊을수 없는 공통의 기억을 모아 대항기억을 만들거나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된 한국교육을 비판하는 등 한국인의 신체곳곳에 박혀있는 강박, 욕망, 콤플렉스 그리고 이를 유발시킨 한국사회의 권력구조 및 굴절된 근대성을 탐구한다.

△카마다 유스케(Yusuke Kamata) 시각예술가
2013년 도쿄예술대학대학원 미술연구과 첨단예술표현전공 수료. 일본 국외에 건설된 일본 가옥을 근대 역사의 매듭을 풀어 현재에 묻기 위한 플랫폼 구축을 위해 조사하고 영상과 설치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최근 주요 전시회로는 "새로운 오늘의 작가전 대화의 앞뒤"(2019, 요코하마시민갤러리), "How Little You Know About Me" (201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Urban Ritornello》 The Archives on Community" (2017, 일민미술관, 서울, 한국)가 있다.

◆ 본문 소개
▶ 신흥동(新興洞), 새롭게 부흥하는 도시
신흥동은 본래 임야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던 땅이다. 이 일대는 친일파인 이하영의 소유였고 이후 청나라 출신의 외교관이자 자본가인 우리탕(오례당, 吾禮堂)에게로 갔다가 일본에서 온 정미업자인 리키다케(力武平八)에게로 넘어갔다.

현재 율목도서관이 약 3,000평 정도의 단일 부지 안에 위치해있는데 그 중 어린이 도서관 건물이 당시 리키다케 별장의 별채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별장의 본관은 율목도서관 본관 건물 자리이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1 신흥동이 제물포와 차별되는 지점은 1930년대 만들어진 새로운 마을, 즉 신도시였다는 점이다. 개항 이후 다양한 상업 시설과 주요 금융, 무역, 관공서가 자리잡았던 제물포 일대와 일본인 조계지였던 현 관동, 중앙동 1,2가에 거주했던 일본인의 수는 지속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일본정부는 「조선국인천구조계약서(㰪ず國㤼㼓口㰷界㏫⾺)」제1조에 의거하여 조계 확장을 시도하였고 약 3,800 평의 매립지를 확보하지만 증가하는 일본인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일본 공업 자본이 성장하자 식민지의 공업화도 함께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한반도에 일본과 조선인 지주들의 중소 자본 투자가 증가하여 조선인 노동자 수가 증가했다.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국가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한반도로부터 더 많은 식량, 인력, 군자금,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시대배경 속에서 신흥동의 형성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 2호 주택
두 개의 가옥이 하나의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2호 주택으로 이런 경우 가옥의 구조가 대칭으로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1층은 약 15평, 2층은 약 7평 정도의 작은 규모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던 노동자 사택이나 기업에서 보급했던 사택보다는 큰 편이고, 구조를 모듈(module)화하여 지은
것으로 보아 관공서의 공무원이나 기업의 관리자와 같은 중간 계층이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1층 공간은 거실과 주방, 손님들을 맞을 수 있는 차노마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생활하거나 잠을 잘 수
있게 되어있다. 1층에서는 주로 사교나 대외활동이 이뤄졌을 것이며 거주자들은 2층에서 생활했을
것이다. 현재 가옥의 1층에는 다다미방과 주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구조와 계단, 화장실 등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는 원형이 아닌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온돌 생활을하므로 이에 맞게 주택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1층의 기존 구조를 대부분 변형하였기 때문이다. 1층과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사용 빈도가 적었던 2층에는 다다미나 방의 구조가 거의 유지되어 있다.

 



▶ 도시해설 2

“여기가 구조로 보자면 개항기 당시에는 굉장히 인천 외곽에 속합니다. 그 다음에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인천 중심으로 포함이 되거든요. 이 근방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공장 근로자를
위한 숙소가 필요하죠. 그래서 집단 거주할 수 있는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게 됩니다. 특히 신흥동 일대는 언덕 위쪽으로는 고급 주택, 우리가 아까 봤던 율목도서관 아래쪽 그 동네는 고급주택들이고요. 이 쪽 외곽 쪽하고 저 아래 쪽은 서민들 주택들이 많이 있죠. 특히 지금 보시는 여기 양사이드로. 원래는 저기 나무 있잖아요. 나무부터 시작해서 이 건물 앞 쪽까지가 양 쪽으로 두 라인이 각각. 그런데 여기에 보시면 지붕이 하나예요. 지붕이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다 하납니다. 한건물이에요. 이거를 벽으로 나눠서 각 가구가 들어가서 사는 거죠. ...(중략)

지금 이 신흥동 나가야는 제가 알기론 인천에서 가장 긴 길이를 가지고 있는 주택입니다. 여기도 원래
이 끝까지 인데 이 옆에 농협에서 집을 사서 헐고 주차장을 만들었어요. 지금 보시면 여기가 이렇게
통로가 되어 있어서 집을 반 쪽으로 나눠서 저 쪽에 한 가구, 이 쪽에 한 가구 이렇게 살게끔 내부
구조가 됩니다. 이거 하나에 30가구 정도 살던 집인데. 원래는 도로 폭이 넓어요. 그런데 이 안쪽
사람들이 도로까지 자기 땅을 넓힌 거죠. 넓혀서 담을 쌓고, 마당을 만들고 그 다음에 집을 바깥으로
내서 자기가 용도로. 이 집 같은 경우는 원래 건물은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 인데 이만큼을 자기
땅으로 넓힌 거죠. 자기 임의대로. 토지등기하기 전에 자기 땅을 이만큼 내버린 거예요. 줄사택을 보면
대개 다 이런 식이예요. 이런 집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기 송현동 변전소 뒤에도 이런 집들이 두
라인으로 쭉 나가 있고요, 미쓰비시 줄사택도 그렇고 대개 이런 식으로 도로 폭을 최소화 시키면서
자기 땅을 넓히는 식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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