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소·부·장’ 국산화, 구호가 아닌 실행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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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입력 2020-07-1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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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넛 크래커 신세 전락 우려, 지속성과 일관성이 중요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지난 1980년대로 되돌아가 본다. 당시 우리 무역의 최대 화두는 일본으로부터의 무역적자 개선이었다. 힘들게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를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바친 꼴이 되고 있었으니 당연한 처신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소(소재)·부(부품)·장(장비)의 자체 기술력 축적을 위한 국산화에 총력을 경주했다. 워낙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다 보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컸다. 일본 기업으로부터는 기술 도둑으로 몰리면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일본이 밉지만, 의존을 탈피할 방도가 없다는 점에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양국 수교 5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적자의 약 60%가 소·부·장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의 소·부·장 수출이 확대되면서 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전환된 점이다. 그 기조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으며, 소·부·장의 수출 비중이 무려 70%를 넘어서고 있다. 이 중 반도체 등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약 40%에 달하며, 수출 지역으로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비율이 30%에 근접한다.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피크인 지난 2010년 360억 달러에서 2019년에는 19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아쉬운 점은 우리 소·부·장 수출의 상당 부분이 해외 진출 우리 기업의 수요로 충당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아직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하고 냉정한 평가다.

한편 중국도 소·부·장 국산화 열정이 대단하다. 우리보다 절대 더했지 못 하지 않다. 소위 말하는 ‘홍색공급망(红色供应链, Red Supply Chain)’ 구축을 위해 안간힘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적자를 보고 있는 이상으로 한국에 대한 소·부·장 적자가 매우 심각하다. 한국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중간재를 중국 자체적으로 조달하여 완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중국판 자급자족 공급망이다. 상당한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한·중·일 3국 간의 교역 구조가 상호 보완적에서 경쟁적으로 바꾸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내친김에 중국은 ‘중국제조(中國製造, Made in Cihna) 2025’구상을 본격 궤도에 올리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중국이 제조 강국이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기술 유출 억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소·부·장에 5조 이상 투자하여 일본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발단은 1년 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로 시작되었다.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등 3개 품목이다. 이는 한동안 소홀했던 일본 의존 소·부·장 국산화에 다시 불을 댕기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액화 수소 등 일부 품목의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나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은 여전히 날카롭다. 국산화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핵심부품에 대한 전반적인 일본 의존도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의존도 극복은 쇄국(鎖國)이 아닌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자생력 확보해야

이처럼 소·부·장 국산화는 제조업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제다. 일시적인 정치 구호로 해결될 일이 아니고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 글로벌하게 전개되고 있는 통상 전쟁의 콘텐츠도 상품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이면에는 기술이 핵심 쟁점이다. 기술을 가진 자는 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빗장을 걸고, 가지지 못한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국가 간은 물론이고 기업 간에도 물밑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4차 산업혁명 경쟁의 본질이 제조업 강국 경쟁이며, 결국 소·부·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국가나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음은 이미 예견되고 있는 시나리오다.

소·부·장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일본을 따라잡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자칫 한눈을 팔거나 자충수를 두면 양국 사이에 끼어 넛 크래커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한국 제조업의 뿌리를 두고 일본이나 중국이 경시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가 않다. 우리 제조업의 허리가 취약하다는 것을 상대가 익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일본은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업의 부활을, 중국은 소·부·장 업그레이드를 통해 우선하여 한국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규제로 우리 내부를 다시 다지는 계기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한·일 양국이 정치적 이유로 서로를 경원하는 ‘경제 쇄국’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990년대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가전 부문에서 일본을 따돌리게 된 것은 양국 기업 간의 협력과 경쟁의 구도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양국 간의 교역량이 감소하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가 줄거나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본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환경하에서는 문제를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일본을 추격하고,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소·부·장 국산화의 목표와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정치적 환경과는 무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또다시 용두사미로 끝날까 벌써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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