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China+1’과 韓·中·日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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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입력 2020-06-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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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경제 수세 → 중국 기업 해외시장 진출 증가 → 신흥국 시장 경쟁 격화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중국은 14개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다. 그렇다 보니 이들 국가와의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은 ‘원교근공(遠交近攻)’, 즉 먼 나라와는 친교를 하며 가까운 나라는 쳐서 배속시키는 것이 외교의 근간이다. 19세기 중반 1~2차에 걸친 서구와의 아편전쟁, 20세기 들어 2차대전 직전 중일(中日)전쟁에서 백기를 들면서 150여년 동안 대국의 자존심이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중국이 1970년대 말 개혁·개방에 시동을 건 지 40년 만에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고까지 나온다. 그러나 중국의 해석은 다르다. 아시아의 시대가 아닌, 다시 중국의 시대로 회귀(回歸)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우선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화이질서(華夷秩序)’의 기치를 꺼내들었다. 주변국들에 대해 전통적인 우월의식에 기초하는 ‘중화(中華)’로 무장하여 중국 중심의 신(新)질서 구축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3종 세트가 바로 ‘중국제조 2025’, ‘일대일로(一帶一路),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이다. 그러나 이 세트가 미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과의 크고 작은 마찰로 삐걱거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중국을 초조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중국이 칼집에서 빼내든 칼을 집어넣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에는 결사항전(決死抗戰)으로, 주변국에는 당근과 채찍으로 시간벌기와 지구전(持久戰)을 동시에 구사한다.

중국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복잡하다. 정부·기업·개인의 채무가 국가 GDP의 무려 6배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전 세계 공장의 5분의1이 중국에 있다고 할 정도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게 또 하나의 고민은 산업 전반에 걸친 공급 과잉이다. 과잉 설비를 처리하려면 내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는 방법밖에 없다. 최근 중국 기업이 계속 밖으로 치고 나오는 것도 이것이 결정적 이유다. 또 하나는 부동산 버블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다.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수출·투자에서 내수·소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수출과 해외시장은 중국 기업에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상수(常數)다.

지난 15일 중국과 인도 국경 분쟁으로 인도 전역에서 반(反)중국 시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이콧 차이나’라는 중국 상품 불매 운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양국 간의 잠재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저가 중국 상품이 인도의 안방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국 상품의 인도 시장점유율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는 반면, 한국 상품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점유율도 중국 샤오미가 32%로 삼성의 배나 되며, 중국 브랜드 전체로는 무려 75%에 육박한다. 스마트TV 시장에서도 샤오미의 점유율은 27%로 LG나 삼성을 합친 것(24%)보다 더 높다. 이들 기업에 인도 시장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의 포화 상태를 해소해 주는 최고 효자시장인 셈이다.

'중국의 각종 악재 역이용 전략 필요', '신(新)남방 시장 개척' 구호로만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아 동남아 시장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수출 혹은 투자 진출이 가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선발주자인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지역에 대한 무역 혹은 투자 진출 통계를 보더라도 중국의 가시적인 오름세가 뚜렷하다. 중국 산업의 마지막 보루이던 자동차마저 과잉 공급의 늪에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 아직 치고 들어가기 어려우므로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을 우선 타깃으로 한다. 그린 뉴딜로 신재생 에너지 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도 좋은 먹거리다. 이미 중국 내에서의 수요 부족으로 호시탐탐 해외를 노리고 있는 태양광 모듈 업체들에 이만큼 반가운 뉴스는 없다.

‘China+1’이 대세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중국 기업의 공세가 더 거세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들의 주력 타깃이 공교롭게 우리나 일본이 공을 들이고 있는 아세안이나 인도다.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간주하고 있던 일본도 이들 시장에서의 아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수세에 몰릴수록, 경제 연착륙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질수록 외부 시장에 더욱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에 속도가 붙을수록 이에 소외되지 않으려는 중국 기업의 움직임이 같이 빨라질 수 있다. 결국 ‘China+1’ 시장에서도 한·중·일 삼국지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를 두고 ‘코로노믹스’라는 조어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생겨날 새로운 경제 질서는 서구보다는 아시아가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중국이 이에 편승하려는 저의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패권 야심을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결기는 의외로 단호하다. 자연스럽게 동남아나 인도로 시야가 모인다. 일대일로는 물론이고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와 잦은 국경 분쟁으로 주변국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나 혐오감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이를 역이용하여 본거지를 확실히 손에 넣기 위한 전략을 찾는 데 전전긍긍한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이익을 지켜내는 묘책이 있나? 신(新)남방 정책은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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