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혁명가들] 경부고속도로 50년....세계 9위 고속도로 강국으로 도약

김재환 기자입력 : 2020-07-10 06:00
맨손으로 시작해 해외 187조원대 해외시장 개척 빗자루서 시작한 유지관리업무 이젠 자동·현대화 270개에 달하던 종이통행권 '하이패스'로 일원화
맨손으로 시작해 해외 건설시장 개척
"세계 9위 고속도로 강국."

한강의 기적을 이끈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428㎞)가 완공된 지 50년 만에 우리나라가 얻은 칭호다. 물자와 사람을 각지로 보내는 대동맥인 고속도로 길이는 벌써 4767㎞에 육박했다. 하루 1만대에 불과했던 통행량은 올해 455만대로 껑충 뛰었다.

기계장비 없이 삽과 곡괭이, 눈대중으로 시작했던 도로건설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수출 선도국 지위에 올랐다. 해외건설 도로 누적 수주액은 총 187조7223억원(882건)으로, 전체 해외 토목공사 1015조6344억원(2302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1965년1월~2020년7월) 해외 건축(주택·공장·사무실·호텔·병원 등) 분야 전체 수주액 195조5940억원과 맞먹는 수준에 달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워낙 도로건설 기술이 상향 평균화돼서 우리나라 건설사 어디서 시공하든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경부고속도로 당재터널 굴착 작업(왼쪽)과 현대의 터널 굴진기(TBM).[사진 = 도로공사]


불과 50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고속도로라는 개념이 뭔지도 몰랐고, 포장도로 배합기술도 뒤떨어져 온갖 사건 사고가 뒤따랐다고 한다.

당시 고속도로 통행금지 표지판에는 우마차와 손수레, 자전거, 이륜 오토바이에다 심지어 보행자까지 포함돼 있을 정도로 현재와는 다른 상식의 시대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29살의 나이에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대전공사사무소 시험계장으로 일했던 박경부 7·7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기도 했다.

"50년 전에요? 고속도로라는 개념이 뭔지도 몰랐어요. 포장재료가 일반도로랑 어떻게 다른지, IC가 대체 뭔지. 무슨 중장비가 필요한지. 중앙분리대는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삽과 곡괭이, 맨손으로 시작했어요. 장비는 구식이었고, 터널은 작은 갱도를 파서 넓혔어요. 지금이야 터널 굴진기로 밀면 되잖아요. 당시에는 하루에 1m 가려고 3교대로 밤낮을 샜지."
 

중장비가 없어 경운기를 이용해 고속도로 롤러를 돌리는 모습.[사진 = 도로공사]


기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증언도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후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러 간 1971년 어느 날 도로포장이 깨진 원인을 보니 애초에 배합이 잘못된 재료를 썼던 것이다.

"포장도로에 물이 적절하게 통하도록 재료 배합을 해야 하는데, 시방서를 잘못 해석해서 황토를 넣어놓은 거예요. 물이 고이니까 포장이 깨졌던 거죠."

지난 1965년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로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 도로공사를 수주한 현대건설의 사사를 보면 "좌충우돌을 겪으며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기술돼 있기도 하다.

사사는 "당시 도로포장은 사람이 직접 포장재를 입히는 원시적 공법을 사용했다. 미군을 통해 신공법이 도입된 후에야 비로소 초보적인 기계화 시공이 가능해졌는데, 대부분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속도로에 투입할 만한 공사장비를 갖추고 있을 리 만무했고, 기술용역을 맡은 미국 설계업체의 시방서도 낯설기 짝이 없었다. 결국, 당시 기준으로 적지 않은 2억8800만원의 적자를 안기며 1968년 3월 가까스로 마무리됐다"고 회고했다.

현대건설은 이때 얻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카타르와 쿠웨이트 등 해외에서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태국 파타니와 나라티왓 두 도시를 잇는 98㎞ 남짓에 불과한 2차선 고속도로에서 감내했던 아픈 경험이 수천㎞에 달하는 열매가 돼 돌아온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준공된 서해대교 공사현장 모습.[사진 = 도로공사]

 
도로관리 능력도 일취월장…빗자루서 현대화 장비로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만 해도 유지관리 경험이 없었던 도로공사는 노면 청소나 제설작업에 빗자루나 삽을 사용했다. 시설물 점검도 육안에 의존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레이더 탑재 차량이 도로 위를 지나가면서 자동으로 노면 파손·변형 여부나 미끄럼저항계수 등을 측정하고 상태별로 전문 장비를 동원해 보수하는 중이다.

올해 기준 한 해에 쓰이는 도로 유지보수비가 약 3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로관리 능력 효율화 및 현대화는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숙제였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초기 유지보수현장 전경.

이에 따라 1980년 정식 유지관리제도가 수립됐고 현대화·기계화 작업은 10년 뒤에 이뤄졌다. 경제학적으로 시설물별 생애주기비용을 계산하는 ’기반시설관리법‘은 올해 1월 시행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도로 유지관리 현황 및 과제‘에 따르면 기반시설관리법에 따른 도로유지비 절감 효과는 약 30~40% 수준으로 예상된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고속도로 개통 초기 주간에는 유지보수 담당자가 순찰업무를 병행했다”며 “순찰업무와 유지보수 업무는 1970년에야 분리됐다”고 말했다.
 
종이 통행권 가고 '하이패스' 등장

1980년대 요금수납원(왼쪽)과 현재 서울 톨게이트 전경.[사진 = 도로공사]



고속도로 수납의 역사는 1968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오산 구간과 경인고속도로 서울-인천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하루 평균 교통량이 9000대에 불과하던 시절 요금 수납은 고속도로 입구에서 종이 통행권을 사 출구에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1985년 기준 전국 고속도로 영업소 59곳에다 차종이 4종(소형·보통·승합·버스)이었기 때문에 영업소 한 곳에서 판매하는 통행권 종류가 230여가지나 됐다.

종이통행권은 1994년 8월 통행료 수납 기계화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야 사라졌다. 입구 유인 발매는 자동 발권기로 변경됐고, 통행료 지불 방식도 카드 등으로 다양해졌다.

하이패스는 2000년 6월 판교와 청계, 성남 3곳에서 시범 운영을 거쳐 2007년 12월 전국 고속도로에 구축됐다. 2018년에는 2~3개 차로를 하나로 묶어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다차로 하이패스'가 도입됐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원동력"이라며 "서울에서 부산 간 이동시간이 10시간 가까이 단축돼 국가 수송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9번째,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화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한 공공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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