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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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0-07-0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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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발발 70년 맞아 좌우의 민간인 학살의 역사, 총체적으로 되돌아볼 필요

  • 오래된 살인본능을 되돌아보고 참회할 인간성이 공간이 필요.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죽일 놈들‘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향한 증오를 드러낼 때 내뱉는다. 소설가 김훈이 6·25를 전후해 쓴 글을 보고 이 말을 떠올렸다. 작가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전후해서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신문에 짧은 ’독후감‘을 썼다. 그 책은 연세대 교수 박명림의 책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이고, 김훈은 ‘독후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세가 역전될 때마다 여러 도시와 농어촌, 산간 마을에서는 민간인들끼리 서로를 적대 세력으로 분류해서 죽고 죽였다. 수천년을 이웃해서 평화롭게 살아온 향촌 사회의 밑바닥에 그처럼 무서운 증오와 원한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 적개심이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모습을 박 교수는 고통스러운 자료를 제시하면서 증언하고 있다. 이 모든 야만성은 외세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한민족이 스스로 자행한 죄악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모든 야만성은 외세에 의한 게 아니고, 한민족이 스스로 자행한 죄악이다.’ 한국전쟁은 공산주의 러시아라는 외세가 부추겼고, 사주를 받고 38선을 넘은 건 북한 김일성이다. 그들에 전쟁의 책임을 묻는 데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김훈은 전쟁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자고 한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에는 누군가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전쟁은 그 인화성 높은 물질에 불을 붙인 위험천만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눈알이 뒤집힌 사람들 손에는 몽둥이와 칼, 짱돌이 들려 있었다.

좌우 양 진영의 잔혹했던 학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니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다. 희미해진 기억을 살려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빨갱이들의 만행을 학교에서 가르쳤다. 반공정권은 북한공산당이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을 ‘반동’이라고 해서 죽였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했다. 이 대목을 전하는 박명림의 책 속의 문장은 가령 이런 것이다. "끔찍한 장면을 많이 남긴 유명한 함흥 학살사건은 300명의 정치범이 동굴 속에서 질식하여 학살되었고, 다른 65명의 반동들은 우물 속에 처넣어진 채 돌로 메워졌다. 반공정당에 가입하였다고 고발된 다른 482명은 구타와 돌로 맞아죽은 뒤 덕산 니켈 광산 부근의 수직갱에 버려졌다."

김일성이 ‘죽일 놈’이라는 시대가 지나니, 이승만이 ‘죽일 놈’이라는 시대가 왔다. 운동권의 친북 이념이 대학가를 휩쓸었고, 세상을 거꾸로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니 민주화시대가 왔다. 이때부터는 좌익의 만행은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익의 악행을 집중적으로 접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빨갱이’라고 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이 남한에 수없이 떠돌아다닌다는 걸 이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 전에 일어난 제주도 4·3사건, 한국전쟁 전후로 해서 벌어진 보도연맹 사건 등.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정권은 참으로 나쁜 사람이었다.

"1950년 8월 20일 제주도 모슬포에서는 예비검속으로 인해 양곡창고에 갇혀 있던 수감자 347명 중 250여명이 학살되었다. 물론 재판은 없었다. 유족은 경찰의 위협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조차 시신을 인양할 수 없었다."(박명림의 책 ‘한국 1950’)

전쟁의 원인은 어찌됐던 간에, 그리고 군인끼리 전장에서 죽이고 살리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그리 많은 민간인을 죽였나 하는, 학살을 자행한 인간 마음의 어두운 측면이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죽이고 죽이는 것일까? 전시 상황이었고, 1950년대 무지몽매한 시절이었는데 그런 얘기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라고 말을 가로막지 말라. 내가 보기에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고, 한국인의 마음은 그때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미국 오스틴-텍사스대학)는 “살인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죽이고 죽여 왔다”라며 “살인은 인간 행동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살인해서 적발되면 평생 감방에서 썩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남을 죽이는 것일까?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가 있다. 이춘재의 심리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걸 생각하면, 데이비드 버스의 말을 좀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데이비드 버스는 저서 <이웃집 살인마>라는 제목의 책에서 놀랍게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인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인자들은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나며, 바로 당신이다. 살인자는 옆방, 옆집, 혹은 그 옆집에 있을지 모른다. 인간 내면에 어두운 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이웃집 살인마>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인간은 살인 본능이라는 어두운 세계를 마음의 심연에 갖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불유쾌하고, 얼핏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팩트들이 있다. 살인 본능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다듬고 익숙해진 적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 말고도, <살인>의 저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살인 본능은 인간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 적응해야만 했던 진화 압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자는,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생식 기회를 늘리기 위해 다른 남자를 죽여 왔다.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후손이고, 그들의 말이 맞다면 우리 몸속에는 살인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버스는 “현대 인류는 살인을 했던 조상들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에 한 명만 살해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불온한 발전은 우리가 대량학살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량학살의 역사는 고대나 중세에 끝난 게 아니고, 20세기에 만연했다. 그리고 21세기 초에도 인종학살은 이어지고 있다. 나는 2007년 수단 다르푸르 인종 청소 현장을 취재한 바 있다. 다르푸르는 21세기 최초의 대량 학살 현장이라고 얘기된다. 다른 부족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게 인간이다. 진화의 오래된 뿌리를 갖고 있는 ‘살인’ 본능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은 어떤가?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자.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에 학살 책임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살을 저지른 건 누구인가? 바로 평범한 군인들이다. 그들이 총을 쏘고,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당시 전두환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벌받을까 해서 그들은 잔인무도한 행위를 벌였을까? 그건 아닐 거다. 현장에서 순식간에 점화된 오래된 본능이 그들을 학살자로 바꾸었다. 살인본능이 미친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그들은 우리 옆에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다. 발포 명령책임자에 역사의 법정이 주목하고 있는 걸 보며, 그들은 침묵하며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처벌을 피한 ‘나치의 병사들’이나 다름없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좌우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보면 남이나 북이 다 끔찍했다. 그리고 김일성과 이승만이 나빴지만, 그들만 탓해서는 안되고 그 시절 한반도에 사는 인간들이 징그럽네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과 이승만이 시켜서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학살을 자행한 인간들도 끔찍하다.

한국인은 참회해야 한다. 민간인 상대 학살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 ‘참회록’이 필요하다. 우리 내면의 살인 본능은 튀어나올 수 있음을 경계하는 거울이 있어, 매일 아침 그 거울을 닦으며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서울 용산에 가면 전쟁기념관이 있다. 나라를 지키다가 숨진 사람을 추모하는 호국추모실, 6.25전쟁실 등으로 기념관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야외에는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건 구태의연하다. 호국도 중요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위한 공간이 한국인에게는 필요하다. 전쟁기념관의 전시 구성을 바꿔 학살의 참극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이 드러낸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자. 한국형 홀로코스트 뮤지엄 같은 것이면 좋겠다.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 당시 피의 진압을 주도했던 부대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났지만 조치를 검토하면 어떨까? 얼마 전 독일 메르켈 정부는 극우파로 물든 군 특수부대를 전격적으로 해체한 바 있다. 그리고 ‘죽일 놈’이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 피의 냄새가 이 말에서는 진하게 난다. 적어도 내 언어 사전에서는 ’죽일 놈‘은 삭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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