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정부의 ‘슬긴생’…재난지원금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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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5-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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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눠주는 걸로 끝내선 안 되는 정부·지자체 ‘슬긴생’

  • 전례 없는 정책, 전례 없는 사후 점검 필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걸 더 잘 해야 하고, 술도 마시는 것보다 해장이 중요합니다!”
전날 술 한 잔 함께 했던 지인들에게 다음 날 아침 겸사겸사 이런 ‘AS 메시지’를 보낸다. 애프터 서비스, AS는 영어에 없는 ‘콩글리시’지만 이보다 더 ‘사후 관리’를 딱 떨어지게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게다.

화장과 술뿐이랴. 맛난 요리와 설거지, 사랑과 이별도 그렇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도 AS가 매우 중요하다. 현장 확인과 효과 분석을 통해 수정·보완해야 국민과 기업을 이롭게 한다. 그래야 확대·축소할지 판단하고, 유지·폐지할지 결정할 수 있다.

14조2000억여원의 나랏돈이 투입되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정책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슬기로운 긴급재난지원금 생활’, 국민들이 지원금을 기부하든 소비하든 잘 사용해야 한다는 칼럼을 쓴 후 정부의 ‘슬긴생’을 떠올렸다. 답은 AS.

비상한 시국에 빠른 지급, ‘속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나눠주는 단계에서 정책적 판단과 다양한 디테일을 고려하기 어려웠을 터. 사용처 논란과 부정 사용 등 즉각적으로 나타난 부작용의 지속적인 수정·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나눠주고 끝이 아니라 나눠준 이후 그 정책 효과를 파악하고, 또 닥칠지 모를 재난 정책을 만들고 행하는 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게 AS가 필요하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 종합 분석 필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25일까지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은 총 12조9640억원, 수령 가구는 2056만 가구다. 총예산 14조2448억원 중 91.0%, 지급 대상 2171만 가구의 94.7%가 지원금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사상 최초로 정부가 국민에게 지원한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께 큰 위로와 응원이 되고 있어 기쁘다. 재난지원금이 모처럼 소고기 국거리를 사는 데 쓰였고, 벼르다가 아내에게 안경을 사줬다는 보도를 봤다. 경제 위축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던 국민의 마음이 와 닿아서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말마따나 재난지원금의 경기부양효과에 대해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6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 5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상승했다는 소식, ‘○○는 웃고 ○○는 운다’는 제목으로 지역별·업종별 통계도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되고 정부는 재난금 사용 만료일인 8월 31일 이후 지원금 정책에 대한 사후 종합 분석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번 지원금을 어디에 썼는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경기 진작, 소비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이는 향후 전 국민 기본소득 정책 도입에 대한 사려 깊은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픽= tvn 캡처, 김철민 기자]


◆통계 확인··· 무정보·복지사각지대 파악
이번 지원금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 전체가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 국민 행정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다양한 관련 통계를 체크해 보면 어떨까.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주민등록 인구 및 세대현황'을 보면 올 4월 기준 총 인구 수는 5184만2524명이고, 가구 수는 2266만3240가구다. 3월 29일 기준 재난금 지급 대상은 2171만 가구인데, 가구 수 차이에서 보듯 100% 완벽 지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되레 100% 이상 지급할 가능성도 있다. 못 받은 가구가 있다면 그 이유를 추적해야 한다. 더 지급됐다면 중복 지급 등 행정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거다. 잘못된 지급과 관련한 다양한 원인이 나올 텐데, 행정시스템 미비 혹은 통계 착오라면 이를 재확인해 수정·보완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경제정책이기도 하지만 복지정책이다. 정부와 지자체 정책을 전혀 모르고 있는 ‘무정보’ 시민, 그 때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는 “재난은 사람을 차별한다. 사회적 약자가 재난에 더 취약하다. 이들을 돌봐야 우리 사회가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행정안전부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들의 집을 방문해 지원금 신청을 받는 ‘찾아가는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훌륭한 행정 서비스다. 더 나아가 독거노인, 돌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숙자 등 끝까지 지원금 신청을 못 한 사회적 약자를 찾아 지원하는 AS를 해야 한다.

만약 정부의 정책을 전혀 모르고 있는 국민이-단 몇 명뿐이라도-얼마나 있는지 확인한다면 유례와 전례 없는 전 국민 소통의 기초를 닦을 수도 있지 않나.

◆공정·투명 과세··· 세금 낸 보람 찾게
국민들이 받는 지원금은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왔다. 또 사용한 지원금의 일부는 다시 세금으로 돌아간다. 이번 재난지원금 정책으로 "이제야 세금 낸 보람을 찾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금을 내고 그 혜택을 받는 선순환의 고리를 정부는 더욱 투명하고 빈틈없이 강화할 수 있을 듯하다. 국세청은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을 공정하고 투명한 과세, 정직한 납세가 늘어날 유인책으로 삼으면 어떨까.

일단 투명한 과세 근거가 늘어난 건 좋은 소식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혜택을 얻기 위해 제로페이(수수료 0% 공공 모바일 결제)에 가입한 중소사업자들이 급증했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 2월 각 8000건에 머물렀던 제로페이 가맹 신청이 3월 8만5000건, 4월 5만9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25일 현재 제로페이 가맹점은 53만여개에 달한다.

세무 당국은 재난지원금 관련 매출을 통해 성실한 납세자, 모범납세자를 더 발굴해 혜택을 주는 방안을 찾아보면 좋겠다. 반면 ‘다 내면 손해’라며 납세의 의무를 저버리고 꼼수를 부려온 이들도 드러날 텐데, 관용이든 엄벌이든 경제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지원금을 현금화하는 이른바 ‘깡’에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하다. 지원금 정책이 지하경제를 더 어둡게 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기부를 선택한 국민에게 기부의 보람과 기쁨을 확인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부한 금액을 재확인하고 그 돈이 실업급여 지급에 얼마나 쓰였는지 알렸으면 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문명을 진단하는 것만큼 기본소득제도를 포함한 ‘긴급재난지원금 이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긴급재난지원금범정부TF’가 종합보고서 발간 등 AS까지 잘 마무리하고 해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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