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제 무덤 파는 트럼프? 바이든은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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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5-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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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부가 미국 델라웨어주 뉴캐슬에 있는 델라웨어 메모리얼 브리지 재향군인 기념 공원에 화환을 놓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뉴캐슬=AP연합뉴스]

 



조 바이든이 안 보인다. 그는 왜 아무것도 안하지? 코로나19 사태에 미국 대선 캠페인이 올스톱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안에 오랫동안 갇혀지내자 그의 지지자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10주 만에 외부 공개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인 질 바이든과 함께 미국 메모리얼데이(현충일)인 25일(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 인근의 참전용사 기념관을 찾아 헌화를 한 것이다. 미 언론은 행사 내내 검은색 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참석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그의 모습을 이날도 '노(No)마스크'였던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시켰다. 코로나19 사망자수가 10만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현충일 연휴인 23~24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연속 골프를 쳤다. 그의 골프장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재임시 골프를 즐겼는데 이를 언급조차 않는 언론은 "진정 미쳤다"고 트윗을 날렸다. 바이든 전 부통령도 트윗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장의 카트 위에서 트위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전 예고 없던 바이든의 외출은 5개월가량 남은 대선을 앞두고 이젠 자택 칩거를 끝내고 외부 행사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보인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지난 3월 10일 이후 산책이나 자전거 탈 때를 제외하고 집 근처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바이든은 주로 자택 지하실에서 거의 매일 컴퓨터 화면를 바라보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선거 유세장의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풍선도 안 보이고 시끌벅적 요란한 캠페인송도 안 들린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설에 환호하는 청중도 없다. 지난주엔 그가 아시안-아메리칸들과의 화상 미팅을 개최했는데 집 뒷마당 작은 연못에서 거위들이 계속 큰 소리로 짖어대는 바람에 진땀을 빼야했다. 최근 바이든 캠프가 역사상 처음으로 줌(zoom)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사회 각층과 실시간 대화 등 디지털 '가상 선거유세' (virtual rally)에 적극적으로 나왔지만, 대부분 어설프기 그지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에서 '보이지않는 캠페인' (invisible campaign)에 의존해온 바이든 전 부통령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바이든이 계속 집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흥미롭다. 트럼프가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데 굳이 바이든 후보가 서둘러 집밖으로 나와 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이든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트럼프 대통령)가 바깥에 더 많이 있을수록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 때문에 나의 여론조사 수치는 더 올라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리더십

코로나19는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을 가볍게 여기다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사태를 정치화하고 연일 파행적 발언과 행보로 혼란을 부추기자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는 자금이나 조직력에서 우위에 있다. 대규모 유세 등 공식적인 선거 운동은 중단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안팎의 일거수 일투족은 연일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선거 운동을 펼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트럼프와 달리 집안에 갇혀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엄청난 핸디캡이라 할 수 있다. 임시방편이라고는 하지만 디지털 선거유세의 성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 어어지자 바이든 캠프의 우려는 증폭되고 있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오바마 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뛰어난 언변과 소통능력으로 대중의 인기를 쉽게 이끌어내는 타입의 정치인은 아니다. 지난 2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를 지지할지, 트럼프를 지지할지 생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흑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곧바로 사과한 것처럼, 그는 이 같은 말실수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선거 자금 모집에서도 민주당은 트럼프의 공화당에 비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주 바이든 캠프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전국위원회가 모집한 자금은 1억300만 달러로 공화당이 모집한 2억5500만 달러의 40% 수준이다. 민주당 캠프도 바이든의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다음달 중 이번 대선의 새로운 승부처로 부각되고 있는 지역에 600명의 선거 조직원을 배치하고 온라인 가상 캠페인 강화를 위해 디지털 팀도 두배로 늘린다는 계획 등이 민주당 내 선거전략가 사이에서 언급되고 있다.

민주당 캠프는 이번 선거를 트럼프에 대한 중간평가 프레임으로 끌고 갈 태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의 위기 대응 능력이 한계를 보이고 유례없는 경기침체로 인해 유권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발목이 잡힌 바이든 캠프도 초조하지만 트럼프는 더하다. 증시 호황과 낮은 실업률 등 자신의 필승카드로 여겨졌던 경제 성과가 코로나 사태로 일시에 물거품이 되면서 트럼프는 연일 '중국 책임론'을 앞세우며 사실상 대중 선전포고를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코로나19 부실 대응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바이든 후보 적극 지지에 나선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배경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있다며 이를 '오바마 게이트'로 명명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향수가 바이든 전 부통령 지지로 전환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속셈인 것이다. 트럼프는 신속한 경기 회복이 대선 승리의 열쇠로 보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11월 선거 이전에 미국 경제가 일정 수준으로 정상화되면 코로나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대선 프레임을 끌고 갈 태세이다. 특히 미국 경제지표가 2분기 바닥을 치고 3분기(7~9월)부터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 정상화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진영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6개월 전 트럼프의 무난한 재선을 예상했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지난 20일 발표한 미 대선 예측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전국 득표율 35%에 그쳐 “역사적 패배”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도 지난 21일 내놓은 전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8%포인트 뒤진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폭스 조사에선 각각 42% 지지율로 팽팽히 맞섰다. CNN이 지난주 발표한 여론조사의 경우 트럼프는 전국에선 46%의 지지율로 바이든(51%)에게 밀렸지만, 격전지로 분류된 15개 주에선 52%의 지지율로 바이든(45%)에 앞섰다. 긴장한 트럼프는 애리조나주 마스크 생산공장, 미시간주 포드공장 방문 등 최근 워싱턴DC를 벗어나 외부활동을 부쩍 늘리고 있다. 자신의 대선 캠프에 대규모 유세를 재개하는 방법도 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트럼프는 일부 주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11월 대선 때 우편투표를 도입하려는 것에 '투표 조작 음모론'을 거론하며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편투표시 투표율이 낮은 젊은층과 흑인 투표를 끌어낼 수 있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다. 


중도에서 좌클릭 이동중인 바이든 정책 

좌충우돌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77)은 ‘고루한 기성세대’라는 이미지 때문에 경선 레이스 초반 대세론이 흔들리기도 했다. 트럼프보다 4살 위로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역임한 풍부한 국정 경험과 '안정감'을 최대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또 미국인들의 반중(反中)정서를 이용해 바이든 전 부통령을 친(親)중국인사로 몰아세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도성향의 바이든 캠프가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정책의 좌클릭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캠프는 최근 민주당 경선을 포기한 진보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함께 정책 개발을 모색할 6개 분과의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공화당은 바이든과 샌더스가 '사회주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벌써부터 비난을 쏟고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과 대학생 부채탕감이나 무상교육 등 샌더스가 줄기차게 내세웠던 정책들이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 너무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젠 달라졌다. 미국의 의료시스템 개혁과 취약계층 지원문제에 대해 보다 종합적이며 과감한 발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의 선거 전략도 지속(steadiness)과 안정(stability)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 개혁보다는 과감한 대변화로 선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바이든은 이미 대학생 1인당 1만 달러 부채 탕감과 메디케어 수급자격 확대 등 민주당 진보성향 후보들이 주장했던 정책들을 하나하나씩 수용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러한 새로운 접근방식은 두 가지 면에서 바이든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책면에서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한편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중도하차한 진보 후보들의 지지층을 자신에게 끌어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미국에서 본격적인 선거 운동으로 대규모 유세가 언제 재개될지는 코로나에 달려있다. 아마도 대선 결과도 코로나로 인해 바뀐 세상을 '시끄러운' 트럼프가 계속 이끌고 가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트럼프가 애용중인 '졸린 조'(sleepy Joe)'라는 별명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나을지는 전적으로 미국인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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