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코로나로 앞당겨진 디지털 대전환.. 미디어의 선택은?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입력 : 2020-05-20 10:58
 
 
 

[노창희 실장]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긴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형식 변화가 전달하는 내용 자체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1964년에 출간된 맥루언의 주저 <미디어의 이해>(김성기·이한우 옮김, 서울: 민음사)를 비롯한 맥루언의 저술들은 미디어의 변화가 인간의 지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룬다. 맥루언과 마찬가지로 매체의 형식적 변화가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고 본 닐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매우 컸던 1980년대 중반에 출간된 <죽도록 즐기기>(홍윤선 옮김, 서울: 굿인포메이션)에서 포스트먼은 구두로 시작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인쇄에서 텔레비전으로 넘어 오면서 공공담론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포스트먼은 출판물이 주도하던 시기의 커뮤니케이션이 상대적으로 공적이었다면,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시기의 커뮤니케이션은 선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우려 한다.

맥루언과 포스트먼이 지적했던 것처럼 시기별로 한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가 있다. 닐 포스트먼이 1980년대에 텔레비전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오랜 기간 동안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였다. 지금은 시대를 주도하는 동영상 매체가 텔레비전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에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전망에 시달렸던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 동안 가입자가 1577만명 증가하여 1억8200만명이 넘는 글로벌 가입자를 확보한 플랫폼이 되었다. 작년 11월에 론칭한 디즈니+는 1분기 동안 26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추가로 확보하여 5000만명이 넘는 글로벌 가입자를 확보했다. 유튜브 이용량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의 디지털 대전환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동영상 이용에 있어 스트리밍 환경이 보편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이용 양상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주도하고 있는 쇼트폼 플랫폼 시장의 규모는 향후 더욱 성장할 전망이다. 15초 내외의 동영상을 제작 및 공유하는 틱톡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쇼트폼 플랫폼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던 상황에서 론칭한 퀴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드림웍스 CEO 출신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설립하고 휴렛패커드 CEO 출신 맥 휘트먼이 CEO로 참여해 많은 투자를 이끌어낸 퀴비가 쇼트폼 플랫폼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폭발적인 가입자 증가에 비하면 퀴비의 성과는 지금까지의 실적만 놓고 보면 기대 이하다. 론칭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기간 동안 퀴비를 소비한 이용자는 130만명 수준으로 예상보다 이용 수준이 저조하다. CNN의 미디어 담당 기자 프랭크 팔로타가 ‘거친 시작(rough start)’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다. 댁 내 미디어 이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모바일 특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퀴비의 행보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동 중에 듣는 경우가 많은 음원 이용량 감소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결과일 수도 있다. 퀴비의 행보는 코로나 이후 좀 더 예의주시해 살펴봐야 한다.

이제는 특정한 형식이 전체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주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이다. 쇼트폼 콘텐츠 이용량이 급증한다고 해서 롱폼 콘텐츠가 지닌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상을 두고 기생충과 경쟁하여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아이리시 맨'의 러닝 타임은 장장 3시간 30분에 이른다. 롱폼 콘텐츠 역시 혁신을 거듭하며 동영상 플랫폼의 주요한 자원으로 기능할 것이다. 또한,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가 바뀌었다고 해서 주도권을 빼앗긴 미디어가 생태계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가 등장한 후에도 신문은 뉴스를 생산했고,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에도 라디오는 여전히 미디어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이 더욱 활성화되어도 텔레비전은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뉴스의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한 286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는 <뉴스를 묻다>(크리스토퍼 앤더슨,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 마이클 셔드슨 지음, 오현경·김유정 옮김, 파주: 한울)에서는 디지털화에 저널리즘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저널리즘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뉴스를 묻다>에서는 “텔레비전 저널리즘과 신문 저널리즘은 사라지기보다는 아마도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게 될 것”(220쪽)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매체 양식은 기존의 매체 양식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역할을 조정하게 만들 것이다.

코로나 이후 다가올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는 비대면 상황이 강조될 수밖에 없지만 오프라인이 제공하는 일상과 경험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디지털 음원으로 인해 콘텐츠당 가치가 크게 떨어진 음악 산업은 공연 산업의 활성화로 산업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디즈니는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장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종료 이후 물리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은 바뀌겠지만 오프라인이 제공하는 경험은 일과 여가에 있어 미래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디지털 대전환의 가속화는 미디어가 어떠한 형식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관해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유일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펼쳐놓고 맥락에 맞는 접근방식을 찾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 시대 미디어 형식을 둘러싼 실험은 더욱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그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건전한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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