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⑪] “1% 미술 시장?…일반인도 즐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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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05-1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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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 인터뷰

미술 시장은 상류층이 주도하는 고급문화다. 단순 전시회 감상이 아닌 원화를 직접 구매해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극소수만 가진다. 매년 수천 명의 미대생이 졸업하지만,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 또한 극소수다. 1%만 즐기고, 1%만 인정받는 기존의 미술시장은 개성 강한 2030세대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일반인이 원화 작품을 집에서 감상하고, 미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시장의 판을 바꾸고 싶었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렌탈’이었다. 고급 문화라는 편견을 깨고, 3세대 렌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박 대표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원화를 렌탈해주는 스타트업 오픈갤러리. 미술 작품은 상류층만 즐길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일반인도 집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렌탈 서비스를 제공한다.]



-원화를 집에서 ‘빌려 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기존의 미술 시장은 1%만의 시장이다. 소수의 유명 작가와 고가의 작품에 수천 만원씩 사용하는, 돈 많은 사람만 즐겼다. 다수 작가는 소외됐다. 그림의 본질은 감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림에 10억원씩 쓰는 사람은 투자로 접근한다. 목적과 본질이 왜곡 됐다고 봤다. 다수의 유망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일반인이 감상하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미술은 상류층만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편견이다. 편견이 만연하게 퍼져 관습이 만들어졌다. 그림을 상류층만 소유하고 향유할 이유는 없다.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을 뿐이다. 시장은 니즈(수요)와 프라이스(가격)의 곱셈이다. 사업을 고민하던 2013년, 갤러리나 아트페어(Art Fair)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는데, 미술 시장은 오히려 감소 중이었다. 여성을 중심으로 예쁜 것과 감상 욕구가 커졌고,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도 소화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술 생태계는 무엇인가

“저는 미술이나 문화예술 분야의 경력이 없다. 밖에서 지켜봤을 때, 미술계는 공부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려도 졸업생 중 화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10%가 안 됐다. 작품을 만들어도 거래가 안됐고, 갤러리에서는 비싼 작품만 거래됐다. 큐레이터도 갈 곳이 없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작가는 작품 활동에 몰입하고, 대중은 작가를 좋아하게 만들어서 소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지원금도 좋지만, 가치가 창출되고,\ 고용이 생겨 지속가능해야 했다. 고객과 작가, 우리 같은 운영업체가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려고 했다.”


- 성과가 나타나고 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각종 차트는 수직 상승 중이다. 현재 미술계에서 성장하는 회사는 (오픈갤러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원화를 렌탈하다가 직접 구매하는 비율도 3% 정도 된다. 월간 몇십 점씩 판매 중이다. 렌탈 가격은 작품 크기에 따라 고정돼 있지만, 원화 판매 가격은 작가가 정한다. 경력이나 인기에 따라 다르다.

작가들도 처음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림 렌탈을 시도한 회사가 많았는데 다 실패했다.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한 달에도 수십 명씩 지원한다.“


-3세대 렌탈 업체로 소개되고 있다

“1세대는 가성비 좋은 정수기 같은 제품, 2세대는 안마의자 등 헬스케어 제품이었다면 3세대는 라이프 스타일을 맞춘 취향 제품으로 분류한다. 과거 렌탈 업계는 홈쇼핑에서 키웠다는 평가가 많은데, 우리에겐 메이저 홈쇼핑에서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나

“직원들만 해도 80년대와 90년대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자신의 색깔이 강하고, 좋아하는 그림 취향이 뚜렷하다. 빨리 변하고, 소비하는 습관도 다르다. 가성비나 저축에 집중했던 부모세대와도 다르다. 그림 렌탈 시장을 포함해 이 시장은 무조건 (기회가 찾아) 온다고 본다.”


- 창업 과정도 궁금하다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2013년 11월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펀딩 받아서 시작했다. 그 당시가 첫 아기 돌이 막 지날 때였다. 주변에서는 다 안 된다고 했다. 아버님도 미쳤다고 했다. 회사에서 승진도 빨랐고, 유학을 보내준다고 해서 MBA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다 의미가 없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들어 일을 해보고 싶었다.”
 

[오픈갤러리 원화 작품.]


- 많은 사업 아이템 중 왜 미술이었나

“사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 미술관을 10번도 안 가봤다. 인상주의도 몰랐다. 친구 중에 화가가 있었는데, 그림을 보니까 좋더라. 경제적 여유가 없고, 미술에 관심도 없었는데 좋았다. 이 정도 작품이면 팔릴 것 같은데 안 팔려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실 미술계가 불합리한 일들이 많다. 갤러리 관장의 친분과 부모 경제력 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나름의 분석을 통해 이 사업을 선택했다”


-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조심스럽다. 밖에서는 화려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가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 과거에 했던 말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

한 번은 회사 주주들과 지인들이 각출해 1000만원을 모아서 미대생에게 장학금을 준 적이 있다. 너무 뿌듯했다. 문화예술 쪽은 공대 인문계와 달리 장학금이 많지 않다. 관련 회사가 적어서다.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도 소수다. 같은 학교나 집단의 선배가 잘 되는 걸 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우리 회사가 잘 돼서 (미술 업계 창업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사무실을 성수동에 자리잡은 이유가 있나

“숲이 좋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동네 분위기가 좋다. 동네 영향도 있지만, 사실 헤이그라운드를 보고 이 쪽으로 왔다. 헤이그라운드에서는 기본적으로 같이 간다는 느낌이 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 이런 상황이면 합리적으로 처리하겠지 하는 느낌이다. 여기도 입주사가 잘돼야 하지 않겠냐. 그 역할을 오픈갤러리가 할지는 모르겠지만, 헤이그라운드가 잘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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