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퍼스트 코리아!] 글로벌 생산체인 '효율보다는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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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입력 2020-04-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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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전쟁 속 균열된 GCV 코로나19로 거대 변화 계속될 듯

  • 플랜 B 없이 운영했던 기업들 효율보다는 안정성 우선할 것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은 기업들의 생산 방식을 영원히 바꿀 것이다." 

비타 자보치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특히 세계화의 기반이 됐던 글로벌 밸류체인(GVC)은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앞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GVC는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전염병이 처음 창궐했던 중국 후베이성이 글로벌 생산체인의 허브 중 하나였다는 점은 전 세계 제조업에 충격을 더욱 키웠다. 국내총생산의 무려 4.5%를 차지하고 있는 후베이성에는 글로벌 상위 500개 기업 중 무려 300개 기업이 관련 시설을 두었다. 

자보치키 교수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기업들은 '플랜 B'가 없는 상황에서 사업을 지속해왔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회사들은 자신들에게 부품을 제공하는 2~3차 벤더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효율성에 기대 '비상사태'에 대비하지 못했던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저임금·저비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안정성'을 기반으로 생산체인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특정기업 혹은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지정학적 리스크, 무역정책의 변화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 생산 거점 다양화에 나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충격을 이겨내는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체인의 강도(supply chain fragility)'는 새로운 생산기지의 조건으로 부상할 수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윤보다는 안정성"··· 무역전쟁에서 시작된 차이나 디커플링 가속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GVC 시스템은 2009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호황을 맞았다.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 단계가 분화하고, 각 단계의 생산은 비용 우위에 있는 국가가 맡아 가치를 생산하는 GVC는 글로벌 기업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상호 무역의 규모를 키우면서 세계화 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서서히 세계화의 역풍이 불고,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GVC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19년부터 중국으로부터 제조품 수입이 크게 줄었다. 컨설팅 기업 커니(Kearney)는 올해 4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미국의 대중 제조품 수입은 2018년에 비해 17%나 줄었으나, 미국 제조업 총생산 규모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면서 "중국을  대체하는 베트남 등 저임금 국가 및 근접 국가인 멕시코의 부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몰아닥친 코로나19는 차이나 디커플링과 GVC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증유의 재난 속에서 지나친 중국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는 기업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GVC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숨어 있던 중국 내 2~3차 벤더 기업들은 연쇄 휴업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현재 전 세계 중간재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5%에서 2018년 13%로 급증했다.

남부캘리포니아주립대학(USC)의 빅 비야스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는) 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대혼란"이라면서 "많은 기업들이 수요 지역에 근접해 생산시설을 세우는 이른바 온쇼어(on-shore)와 니어쇼어(nearshore)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비정당 싱크탱크인 대외관계협의회 연구원인 섀넌 K 오닐은 "팬데믹 사태를 경험한 기업들은 효율성보다는 생산라인을 여러 곳에 놓는 것을 택할 것이다. 정부 역시 전략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의 생산 기지를 국내에 유치하고 물자 비축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익성은 양보하고 안정성에 무게를 싣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강화 시작··· 의약·첨단기술 등 자국 생산 움직임 강화 

글로벌 제조업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보치키 교수는 "기술 발달에 따른 자동화는 리쇼어링을 가능케 하는 중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예전에는 기업들의 투자 리스크에 없었던 국가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전쟁 당시부터 제조업의 부활을 외쳤던 미국은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연방 정부가 미국에 20여개 혁신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생산 시설 자국 이전에 드는 총비용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원한다. 여기에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하면서 기업들의 유턴을 독려했다. 미국산 제품 구매 우대를 비롯해 미국인을 고용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강화해왔다. 

최근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국내 복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출구 전략을 짜면서 중국은 외국 제조업체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필 호건 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EU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역시 자국 기업이 중국에서 나와 자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22억 달러 규모의 기금 운용 계획을 공개했다.

독일 뮌헨대학교의 국제경제학 과장인 달리아 마린 교수는 최근 경제 분야 유명인사들의 기고 전문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로봇공학의 발달, 생산시스템의 자동화, 3D 프린팅의 진보 등 여러 변화의 영향으로 GVC가 위축됐다"면서 "향후 GVC의 변화는 로봇 산업의 발달과 함께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이 심각한 부족 현상을 겪는 의료 장비와 의약품의 경우 탈중국 흐름이 가장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일본 역시 의료·의약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재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중요성이 부각된 인공호흡기 등 핵심 의료장비 제조사 및 제약사의 외국 인수 규제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5월부터 외환법 개정에서 백신과 치료의약품을 비롯해 인공호흡기 등 첨단의료기기 제조기업들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업체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등이 의료 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 신생기업에 백신 독점 공급을 요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독일 디벨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독일 회사 큐어백을 인수하기 위해 거액의 연구 자금을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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