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국제백신연구소, 서울에 있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3-19 15:2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백신(Vaccine)은 인간과 동물이 걸리는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대해 후천적인 면역 기능을 주는 의약품이다. 쉽게 말해 예방주사인데, 요즘엔 경구용 백신 즉 먹는 약도 있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새삼 우리나라에 공공 백신과 관련한 유일한 국제기구 본부가 있는 걸 알게 됐다. 바로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이하 IVI)다. 세계 공중보건을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에 전념하는 곳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설립한 비영리 국제기구로, 한국·미국·인도·프랑스 등 15개국 143명이 일한다.
 

[사진=IVI 제공]

1997년 설립 이래 23년 동안 콜레라·장티푸스 등 전염병 백신을 개발하고 개발도상국에 저렴하게 공급해 저개발국 유아사망률을 낮추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IVI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를 포괄하는 유니버설 백신(범용 백신) 개발 필요성을 강조한다. 유전자 변이가 이미 발생한 바이러스와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변종 바이러스 모두에 항체를 만들 수 있는 만능 백신 말이다.

◆손 씻기가 생명을 살린다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낙성대 인근 서울대학교 교수아파트, 교수회관과 가까이 자리한 IVI 본부를 찾았다. 겉보기에 평범한 대학 건물로 보였지만 1층 로비 남성 화장실에서 '역시', 큰 차이를 발견했다. 남성용 소변기 위, 세면대 거울과 그 옆 등 곳곳에 손 씻기를 강조한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깨끗한 손이 안전한 손", "깨끗한 손으로 건강 유지", "깨끗한 손이 생명을 살린다"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관계자에게 언제 부착했는지 물어보니 "꽤 오래전부터 붙어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터지기 한참 전에 붙인 듯했다.
 

[IVI 화장실 곳곳에 부착된 손 씻기 캠페인 홍보물]

  IVI 최고 책임자 제롬 김 사무총장과 악수를 나누자마자 집무실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손 세정제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 백신은 언제…빨라야 12~18개월
4차산업혁명 시대,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정보를 조작하고 나노 바이오 로봇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을 거라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면서도 왜 고작 독감 예방주사, 치료제는 못 만드냐. 이런 불만 가득한 질문이 많다.

새로운 전염병과의 싸움은 '시간'이 문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지난 16일 중국 군사과학원 소속 군사의학연구원의 천웨이(陳薇) 연구팀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백신이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천웨이 원사는 CCTV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품질도 뛰어나며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도 신종 코로나 백신 후보 약품을 첫 시험 참가자에게 투여했다.

이런 뉴스에 '이제 곧 코로나19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제롬 김 IVI 사무총장은 그때를 아무리 빨라야 12~18개월 이후로 예측했다.
 

[백신 개발 과정 그래픽. IVI 홈페이지]
 

위 그래프에서 보듯 백신 개발에는 최소 8년이 걸린다. 김 총장은 "일반적으로 대형 제약회사들이 백신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5~10년 정도를 잡는다. 하지만 현재는 긴급 상황이기 때문에 더 빨리 백신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의 첫 백신 임상시험을 언급하며 "이는 굉장히 빠른 속도"라고 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백신의 효과가 입증되기까지는 12~18개월 정도, 그리고 백신이 전 세계에 상용화될 때까지는 그 후 6~9개월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총장도 파우치 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형 백신개발업체들은 이를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데, 백신 안전성과 효과를 각국 보건 당국이 얼마나 빨리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제롬 김 IVI 사무총장 사진=유대길 기자 ]


◆코로나19 백신의 미래…유니버설 백신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바이러스는 끝없이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마치 코로나19를 예견한 듯 올해 초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팬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에는 우리 인류가 준비할 '무기'로 유니버설 백신을 꺼내 든다.

다큐에선 초기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H5N1형'이었지만, 지난 2013년 'H7N9형'으로 완전히 변이됐음을 예로 들며 "동물성 바이러스 변이는 무궁무진하다"고 경고한다. 이 말은 특정 전염병에 대응하는 백신을 만들더라도 바이러스 변이로 완전히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할 거란 뜻이다. 코로나19 백신, 치료제를 개발하더라도 코로나25, 코로나30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신종 플루 등 바이러스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유니버설 백신 개발에 대한 질문에 김 총장은 "매우 매우 매우 훌륭한 질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재 최우선 순위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다. 하지만 과학자들 간에도 코로나가 변형돼 백신 효과가 없어질 경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유니버설 백신 개발 연구도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 개발은 안 되고 있다. 미국은 인플루엔자에 대한 유니버설 백신 연구를 위해 4억 달러(약 48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연관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김 총장은 이어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나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백신 개발에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는 제약회사들이 선뜻 백신 개발에 착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일본, 영국, 노르웨이 등의 국가가 참여한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글로벌 협력을 강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김 총장은 한국 정부의 방역 시스템과 대응,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대해 담담한 목소리로 호평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잘 대비된 상태였던 반면, 유럽과 미국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진단법, 격리 등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고 결국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 특히 코로나 이후 시민들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이루어졌다."

그는 특히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전 세계에 과시한 투명성과 개방성 외에 두 가지 칭찬을 추가했다. 바로 일관성(consistency), 결단성(decisiveness)이다. 김 총장은 "한국은 명확한 정부의 입장을 일관성 있게 전했다. (전염병과의 전쟁에서는) 메시지가 일관되어야 신뢰성이 더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결단력도 돋보였다. 미국은 조치를 중단했다 재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국은 학교 개학 연기 등에서 빠른 결정을 내렸고, 이는 매우 칭찬할 만한 행보였다"라고 평가했다.

김 총장은 IVI가 한국에 자리한 이점에 대해 "한국 바이오테크 산업은 혁신적이어서 백신뿐 아니라 많은 의약품 개발을 이뤄내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 회사들이 진단키트를 개발한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송도특구에서 세계에 공급되는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 의 50%를 생산해내고 있다. 한국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한다. 한국은 기술과 후원의 관점에서 정말 큰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롬 김 IVI 사무총장(왼쪽)과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IVI한국후원회장)]


◆돼지저금통, IVI 후원에도 이어지길
유니버설 백신 개발에서 보듯 제약업계는 특정 전염병에 대한 백신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수천억원을 들여 백신을 개발했는데 그 병이 사라지면 큰 손해를 본다. 또 콜레라나 장티푸스처럼 선진국에서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창궐하는 질병의 백신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결핵, 말라리아, A군 연쇄상구균, 비장티푸스성 살모넬라, 이질 등으로 매년 500만명이 사망하고, 세계은행은 21세기 이후 이 같은 질병으로 인해 총 1조6000억 달러(약 2057조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는데도 말이다(물론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그래서 IVI에는 기업과 일반 대중의 후원이 절실하다. 이날 IVI 취재에 동행한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IVI한국후원회장)는 "최근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수많은 남녀노소 국민들이 돼지저금통을 내놓는 등 십시일반 기부를 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IVI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IVI한국후원회는 월 1만원 기부하는 '기빙 백(GIVING VAC)'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더욱 많은 개인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IVI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기부가 가능하다.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현 IVI 한국후원회 상임고문)는 국제사회에서 IVI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조 명예교수는 "1990년대 초반 IVI 설립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본부를 대한민국에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을 볼 때 서울에 본부를 둔 첫 국제기구가 IVI여서 참으로 다행이고 선견지명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한국이 생명공학(바이오)산업 강국이 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IVI 올해 총 예산은 3980만 달러(약 480억원)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아내와 만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한국·스웨덴·인도 정부가 대부분 부담한다. 핀란드도 곧 참여할 예정이다. 미국, 일본 등 주요 7개 선진국 G7은 외면하고 있다.
 

[1937년 한국독립당 하와이 간부들 사진. 4번이 김현구 선생. 사진=제롬 김 제공]

P.S. 독립운동가의 손자, 한국인 3세 제롬 김
제롬 김 사무총장은 하와이 오하우섬 출신, 한인3세다. 예일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육군에서 약 20년간 에이즈(AIDS) 백신을 연구한 군의관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김현구 선생이다. 하와이 이민 1세대로, 하와이애국단에 가입해 고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전에 적극 나섰다. 김 총장은 "할아버지는 내가 8살 때 돌아가셔서 많은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정리=최윤재 인턴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