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추경을 당장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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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0-03-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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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교수]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이 되면서 세계 경제가 빠르게 침체되고 있다. 여행, 관광, 항공 및 요식 업계 등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소비 위축이 이미 심각한 상태다. 글로벌 공급사슬의 중심에 있는 중국기업들이 생산라인을 정상적으로 재가동하기 전까지, 전자 및 자동차 제품의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경기전망이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변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경제대국에서는 주가가 폭락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최소 0.5% 이상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있다.

불황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 금리 인하를 여러 번 촉구하였다. 1987년 10월 19일 하루에 주가가 20% 하락한 블랙먼데이 당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금리를 재빨리 낮춰 금융 불안정을 해소한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3월 3일 0.50% 포인트 인하하자마자 주가가 폭락하였다. 11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은행 최고경영자를 백악관에 초청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바로 다음 날 주식시장은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할 정도로 계속 요동쳤다. 15일 1.0% 포인트 금리 인하 직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선물지수와 S&P500 선물지수가 일일 가격변동 제한폭인 5%까지 하락해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된 것을 보면, 금융시장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가 폭락의 원인이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소비의 위축과 공급사슬의 교란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되어온 저금리 정책으로 유동성은 이미 풍부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분간 통화정책의 약효가 회복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일찌감치 도입한 일본과 일부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도 금리가 역사적으로 아주 낮은 수준이어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재정 부양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로 피해를 받은 산업, 지역 및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데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정적자의 급증을 우려했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원국들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4일 25억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의회는 정부의 요청보다 3배 이상 많은 83억 달러 규모의 재정지원 법안을 3월 5일 신속히 통과시켰다. 감염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의회는 경제적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을 구제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재정지원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재정 부양책 결정과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외적이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 탄핵 표결과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합의하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발표한 연두교서 원고를 면전에서 찢어버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백악관과의 정책 조율에 직접 참여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평가된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77%에 달하는 재정적자 때문에 재정 부양책을 반대해 왔던 공화당이 민주당의 증액 제안을 흔쾌히 수용한 것도 최근 보기 드문 초당적 협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다음으로 대규모 확산에 손해를 입은 우리나라에서는 재정부양책이 아직까지 실행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3월 5일 국회에 제출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은 본회의는커녕 아직 예산결산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정책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추경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졸속으로 편성된 추경이 무분별한 퍼주기로 전락할 경우, 경기부양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기가 너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정확한 피해 내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총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가급적 여당에 유리한 예산을 편성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재정정책이 적시에 집행되지 않았을 경우에 입을 수 있는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유일한 대응책이다.

미국에서처럼 재정 부양책이 초당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는, 아직 위기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의 추경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재정 부양책은 위기의 발전 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검역·진단·치료 등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소비 위축과 공급사슬 교란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과 소득감소에 노출된 취약계층과 영세 자영업자를 구제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둘째는, 무분별한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지원 방법에도 유의해야 한다. 정부는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취약계층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데 집중적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제안은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저소득 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조례를 근거로 비정규직과 영세 상공인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전주시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다음 달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추경이 여당에만 유리하다는 의구심이 제기된다면, 야당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야당도 추경이 지연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경제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야당은 다수당으로서 더 큰 책임과 부담을 짊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여야가 빨리 추경에 합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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