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전쟁 진짜 타깃은 미국"… 장기화할 우려도 커져

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입력 : 2020-03-10 16:06
"러시아, 미국의 에너지 권력에 분노" 추가 10% 하락우려…셰일기업 버티기 힘들 것
글로벌 유가 전쟁의 진짜 타깃은 미국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유 증산을 결정했다. 동시에 수출가도 인하했다.

안 그래도 수요 감소로 약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그야말로 대폭락했다.

유가 전쟁의 표면은 사우디와 러시아와의 갈등이다. 사우디가 러시아에 국제유가 안정을 위한 감산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으나, 러시아가 '마음대로 생산할 권리'를 주장하며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양국의 치킨게임 속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것은 미국 셰일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10년간 국제유가 시장을 좌지우지해온 미국 셰일 기업들을 세계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이 러시아 혹은 사우디·러시아 양국이 실제로 노리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원유 믿고 제재 휘두르는 미국, 러시아엔 눈엣가시"

최근 3년간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잘 협력하던 러시아가 갑작스레 반기를 든 이유는 무엇일까? RBC의 글로벌 원자재 전략부문장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복수심도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추진 중이던 '노드 스트림-2'와 '터키 스트림' 가스관 건설 사업에 제재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했다.

결국 발트해를 거쳐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노드 스트림-2' 프로젝트는 완공을 코앞에 두고 좌절됐다. 러시아로서는 분할 수밖에 없다.

크로프트는 “러시아가 없애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의 셰일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미국이 거리낌 없이 (외교적 적국에) 제재를 휘두를 수 있게 하는 원유생산 능력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블라디미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의 수장인 이고르 세친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친은 장기간 러시아가 OPEC과 협상에 나서는 것에 대해 반대했으며, 특히 미국의 제재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크로프트는 "푸틴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인 세친은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면서 “미국의 에너지 독점을 막으려는 세친의 행동 배경에는 손익계산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러시아의 합동작전?··· 美 셰일산업은 벼랑 끝

모두의 예상을 깬 사우디의 대응을 두고도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가격 폭락까지 감수하면서 증산을 결정한 이유가 단순히 '러시아 길들이기'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최근 몇 년간 밀월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OPEC+ 회의 전에 양국이 감산에 미리 합의하면서 OPEC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프랜시스코 블랜치(Francisco Blanch) 원자재 투자 전략가는 투자 노트에서 “사우디의 결정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면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러시아와 사우디가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양국이 미국의 셰일 산업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함께 행동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블랜치는 단순히 양국 간의 갈등이라면 유가 전쟁은 훨씬 짧은 시간에 끝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 셰일 산업을 겨냥한 것일 경우, 저유가 쇼크는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르긴 IHS 마킷 부회장 역시 러시아가 표면적으로는 사우디에 반기를 든 것이지만 진짜 타깃은 미국의 셰일 기업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이후 본격화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세계 1위 원유생산국으로 도약했다. 국제 시장에서 미국의 입김은 더욱 세졌으며, OPEC과 러시아 등 기존 산유국들의 가격 통제력은 약화했기 때문이다.

셰일 산업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격 폭락이다. 이미 들어간 엄청난 투자비용으로 에너지 기업들의 현금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셰일 원유의 경우 생산 단가가 전통적 방법의 원유 시추보다 비싸다. 그 때문에 수지를 맞추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소 40달러대 초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가 전쟁이 계속될 경우 전문가들은 추가 10% 가격 하락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줄도산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당장 미국의 셰일 석유 업체인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와 파슬리 에너지는 9일 시추 활동을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가가 낮아 원유를 생산하면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 기업 아파치와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주가는 각각 54%, 52% 급락했다.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스콧 셰필드 CEO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2년간 (셰일 원유 관련) 자원개발 업체의 절반 정도가 파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날 저녁 성명을 통해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 1위 원유생산국의 위치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시장에 충격을 주고 시장을 교란하는 산유국들의 행동은 믿을 만한 에너지 공급책으로서 미국이 지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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