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리스크 급등했다…검은월요일에 무너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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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20-03-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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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가 30% 폭락...신흥국·에너지기업 연쇄 붕괴 우려

  • "유가폭락에 코로나19 맞선 부양정책 복잡해져"

검은 월요일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덮쳤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둔화 공포가 큰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발 원유 가격전쟁이라는 돌발 악재에 국제유가가 30%나 폭락하면서 신용리스크 우려가 증폭됐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은 폭락세로 위기감을 드러냈다. 미국 주식선물 시장은 한때 급락으로 시장이 멈춰서기도 했다.

◆신흥국·에너지 기업 연쇄 붕괴 우려 

코로나19 대유행 공포와 함께 원유 가격전쟁은 국제유가를 나락으로 밀어내며 세계 경제에 암운을 더했다. 9일 아시아 시장에서 장중 한때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이 일제히 30% 넘게 추락했다

지난주 OPEC+ 정례회의에서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감산 합의가 무산되자,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4월분 원유 수출가격을 끌어내리고 생산량을 늘리는 '가격전쟁'에 돌입했다. 유가 폭락에 따른 단기적인 충격을 감수하고라도, 감산을 반대했던 러시아를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 미국 셰일유 산업 등 경쟁자를 고사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라피단에너지그룹의 밥 맥낼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원유시장에서 수요 침체와 공급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유가에 최악의 조합"이라며 "가격 붕괴는 이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유가 폭락에 시장이 불안에 떠는 건 그 파급효과 때문이다. 심각한 저유가는 원유 수출로 연명하는 베네수엘라나 이란 등 주요 산유국들의 재정을 위협할 뿐 아니라, 미국 셰일업계의 연쇄 도산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셰일업체들이 쓰러지면 신용시장 불안을 높이고 대규모 해고를 야기해 미국 경제 전체에 충격파를 던질 공산이 크다. 셰일업체들은 미국 정크본드 시장에서 11%를 차지하는 '빅 플레이어'다.

게다가 에너지 기업들의 재무 상황은 장기간의 무역전쟁과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치며 급격히 악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저유가 쇼크의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대형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을 중심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대출을 묶어 증권화한 대출채권담보증권(CLO)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에너지 기업들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할 경우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레이트힐캐피털의 토머스 헤이스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날의 공포는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것"이라면서 "유가가 더 낮아지면 막대한 빚에 짓눌려 디폴트를 선언하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 맞선 부양정책 힘 빠지나 

아울러 정치적·지정학적으로 복잡한 셈법이 들어간 유가전쟁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려는 중앙은행과 재정당국의 계획을 꼬이게 만들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전 세계 인적·물적 이동이 제한돼 원유 수요를 짓누르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가격전쟁마저 겹치자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전망치를 대폭 끌어내리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8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침체에 공급 증가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국제유가가 몇 주 안에 배럴당 20달러를 테스트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올해 2분기와 3분기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30달러까지 내려잡았다.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가파른 확산세를 보이는 것 역시 계속 시장의 투자심리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확산세가 둔화하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을 돌파했고, 미국에서도 확진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보고돼 현재로선 확산세가 언제 정점을 찍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가 단기에 잡힐 조짐이 보이지 않자 경제 비관론도 짙어지고 있다. 이날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코로나19가 중국 외 다양한 주요국에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며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2.1%로 낮춰 잡았다.

무디스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기본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1.4%로 하향 조정하고, 최악의 경우 0.8%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5%로, 중국 전망치를 5.2%에서 4.8%로 각각 내렸다.

반대로 선진국 국채나 엔화 같은 안전자산은 급등했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수익률)가 역대 처음으로 0.3469%까지 밀려났고, 30년물 금리도 1% 밑으로 떨어졌다. 국채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호주와 뉴질랜드 10년물 국채 금리도 일제히 역대 최저점을 찍었다.

엔화는 달러를 상대로 2016년 이후 최고로 뛰어올랐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극단적인 변동성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BIS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사라 헌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상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 가격을 예측하는 게 극도로 어렵다"면서 "시장의 동요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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