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비판은 나중에 위기 극복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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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2-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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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바꿔 놓았다. 평온한 출근길은 “조심하라”는 당부로 시작된다. 북적여야 할 한낮 강남대로는 눈에 띄게 이동인구가 줄었다. 저녁 시간 또한 다르지 않다. 서둘러 귀가하느라 종종걸음이다. 동료들과 술잔 나누자고 하면 눈치 없다. 자영업자들은 애가 탄다. 이럴 때 국가는, 개인은 어떠해야 하나.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25일 대구를 찾았다. 정 총리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당분간 현지에 머물 계획이다. 감염병은 신속한 대처와 의사결정이 관건이기에 현지에서 현장 대응은 바람직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재선 선거기간 중 허리케인 ‘샌디’를 만나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백악관으로 복귀, 국가재난구역을 선포하는 등 발 빠르게 수습했다. 2014년 메르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통제 범위 안에 두고 있다”는 말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결과는 메르스 감염자 2명으로 끝났다. 에볼라 사태 때도 첫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초강수를 두었다. 역시 성공적으로 진압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재난 상황에서 지도자 처신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또 리더가 재난 현장에 가까울수록 수습도 빠르다. 신천지교회 사태 이전까지 정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코로나19를 관리했다. 중국 내 확진 환자가 7만명일 때 한국은 30명에 그쳐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신천지교회 사태 이후 급변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야당은 정부 대응이 허술했다며 공세적이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비로소 시험대에 올랐다.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비판보다는 지혜를 모을 때다. 세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신뢰 확보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총리는 역할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내치는 총리 몫이다. 정 총리가 대구에 상주하겠다고 밝힌 만큼 맡겨야 한다. 국무총리는 내각을 지휘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총리의 동선이 중복된다면 국정운영에도 비효율적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각자 직분에 충실할 때 국민들도 안정감을 되찾는다.

둘째, 과잉 대응이 최상의 대응이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이런 각오로 임해야 한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과감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런 목소리를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게 의료계 시각이다. 전염병은 의료영역이자 과학영역이다. 쉽게 말하면 정치적인 고려는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를 의식하거나 정부를 옹호하려는 발언은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한 달 이내”, “4주 이내”라는 단정적 발언은 오해받기 십상이다.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선의로 이해한다. 하지만 ‘희망’과 ‘과학’은 구분하는 게 현명하다.

셋째,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 대책 마련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괴멸 직전에 놓였다. 한시적인 세금 감면, 양적완화 등 탄력적인 조세정책과 통화정책이 시급하다. 시한을 정해 세금을 낮추고,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소비 심리를 살려야 한다. 덧붙여 정부 정책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저비용 항공사에 대한 정책 자금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불만도 있다. 담보가 있어야 정책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가장 큰 역병은 경신대기근이다. 경신대기근은 1670년(경술년), 1671년(신해년) 두 해에 발생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보다 가혹했다”고 한다. 당시 인구 70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역병과 기아로 숨졌다. 무려 15%다. 병자호란(1636년) 직후 발생했기에 전염원을 중국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은 이때 망했어야 한다고 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에다 경신대기근을 거치면서 인구는 줄고, 국가 기능은 마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은 이후로도 230년을 더 지탱했다.

그 배경에는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이 있었다. 이원익, 김육, 정태화로 이어지는 조선 중기 재상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헌신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김육은 대동법을 확대해 전란 이후 조세 부담을 크게 낮췄다. 또 정태화는 경신대기근을 직접 지휘하며 백성을 돌봤다. 관리들 녹봉을 삭감해 고통분담에 동참했다. 또 군포 면제라는 비상한 정책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켰다. 정 총리에게도 신뢰 구축과 민생안정이라는 책무가 주어졌다. 고통분담과 탄력적인 세금감면은 그 방안이다.

국민들 또한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포는 위기감만 확대시킬 뿐이다. 감염보다 무서운 건 사회 기능 마비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큰 후유증이 우려된다. 총리가 현장에 머무르면서 사태 수습에 주력하겠다고 한 만큼 국민들도 호응할 필요가 있다. 조선 중종 19년, 평안도 용천에 역병이 발생했다. 중종은 “역병이 치열해 죽은 사람이 670명이나 된다. 감사에게 명하니 적극적인 방책으로 다시는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산 사람은 구휼하라. 용천 군수는 늑장 보고한 책임을 물어 엄히 문책하라”고 지시했다.

당시도 늑장 보고를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은 게 민생이다. 거듭 말하지만 책임 추궁은 나중에라도 늦지 않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 여야를 떠날 때다. 정부는 신뢰 구축과 민생안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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