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명예로움 선언못해 죄송"… '여순사건' 유족에 고개숙인 검찰과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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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입력 2020-01-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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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이 지나서야 잘못되었다고 선언하게 되었는데, 더 일찍 명예로움을 선언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고하게 처형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72년 만에 사법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김정아 부장판사)는 20일 내란과 국가문란 혐의로 넘겨져 처형당한 철도기관사 고(故) 장환봉(당시 29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이날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힌다"며 "70여년이 지나서야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선언하게 되었는데, 더 일찍 명예로움을 선언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의 배경을 밝히던 김 부장판사는 한 때 울먹이며 말을 삼켰다. 그는 "고단한 절차를 더는 밟지 않도록 특별법이 제정돼 구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유족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고 이에 검찰과 법원 사무원들도 함께 일어나 고개를 숙여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재판부는 1948년 당시 군법회의에서 장씨에게 적용한 내란과 국권 문란 죄에 대해 "범죄 사실의 증명이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와 함께 재심 재판 피고인이었던 신모씨 등 2명은 재심 청구인이 사망해 사건이 종결됐다.

재판부가 장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유족과 시민단체, 시민 등 70여명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장환봉씨의 딸 장경자(75)씨는 "만시지탄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여러분의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국가가 이제야 늦게나마 사과를 했는데 여순사건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돼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길 바란다"며 "역사를 올바로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장씨는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됐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 탈환 후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 집행된 점 등을 이유로 장씨 등이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보고 지난해 3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재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의 딸 장경자(왼쪽)씨와 아내 진점순(97)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기뻐하고 있다. 재판부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장환봉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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