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와 엇박자 나는 '文정부 남북 관계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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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입력 2020-01-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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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금강산 남측 시설 2월까지 모두 철거하라”

  • 美대사 “미국과 협의해야”…‘남북협력’ 또 견제

남북 관계를 지렛대로 한반도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비핵화 협상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과 엇박자가 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어게인 평창’을 염두에 둔 독자적인 남북협력 추진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접경지역 협력△스포츠 교류 등이 정부가 제시한 남북협력 5대 방안이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를 피해갈 것으로 예상되는 금강산 개별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의 카드를 먼저 꺼내 들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1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개별방문의 경우 유엔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이행할 수 있다”며 “이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 간 물밑 교섭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과거와 같지 못한 수순”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대화 창구가 막힌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에 상당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손뼉을 맞춰야 할 북한은 협력 생각이 없는 듯하다. 미국 또한 한국의 독자적 남북협력 구상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0월 2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김 위원장의 시찰 모습.[사진=연합뉴스]


◆北 “금강산 南 시설 2월까지 모두 철거하라”

북한은 그동안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을 관광사업으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후 마식령스키장,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삼지연시 재건 등 북한은 관광 자원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남한과의) 조건 없는 관광 재개를 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움직임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관광사업 구상 속에 한국은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보여 정부의 금강산 관광 재개 추진 계획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이 지난해 말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물을 오는 2월까지 모두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대남 통지문을 발송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올해 2월까지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 전부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대남 통지문을 발송했다.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에는 이산가족 상봉소도 포함돼 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에도 ‘남측 시설’ 철거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남측 시설 철거가 아닌 노후시설 보수 등을 요구하고, 북측이 원하는 서면 협의가 아닌 대면 협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통지문 발송 여부는) 남북 간 협의 중인 사안으로 확인해드리기 어렵다”며 “금강산 문제는 남북 당국 간 만남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만 했다.

지난해 10월 말 김 위원장은 금강산 내 남측 시설물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의 ‘남측과 합의’ 발언에 중단됐던 남북 회담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되기도 했지만, 북측은 대면이 아닌 ‘서면 합의’를 요구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사진=연합뉴스]


◆해리스 美대사 “미국과 협의해야”…정부 ‘남북협력’ 또 견제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남북협력’ 추진 구상은 남북 관계 공간 확대로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정부의 구상에 불편한 심기를 먼저 드러냈다.

특히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자신의 발언이 미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정부의 남북협력 구상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연이어 내놨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남북협력을 위한 어떤 계획도 미국과의 워킹그룹을 통해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남북협력 구상을 ‘대북제재’를 앞세워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셈이다.

해리스 대사는 대북 개별관광 추진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이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 대통령의 남북협력 구상을 ‘낙관주의’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그 낙관주의에 따른 행동은 미국과의 협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7일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언급된 김 위원장의 답방과 비무장지대(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에 대해서도 “모두 미국과 협의해 진행해야 한다”고 피력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뒤 “이제부터 남북 간 협력사업에 대해 한·미가 긴밀하게 협의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비건 부장관과 남북협력 구상에 대해 논의했다며 “미국이 주권국가로서 한국의 결정을 항상 존중했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한·미 간 긴밀한 조율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며 남북협력 구상 추진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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