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청년 백인보]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시는데, 불법이라뇨"…29살 타투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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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0-01-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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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투이스트 최원석 "인식 달라져도 여전히 제도권 밖...안타까워"

  • "타투이스트도 프리랜서라 노후 대책 고민 중"

  • "새해 목표는 내 이름 건 세계 타투 투어"

‘선타투 후뚜맞(먼저 타투하고 나중에 부모님께 두들겨 맞고 혼나면 된다는 신조어)’

타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길거리를 다니면 쉽게 타투를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한국타투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동안 문신 시술 건수는 650만건, 시장 규모는 2조원에 가까울 정도로 만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흔해도 아직 한국에서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은 불법 행위다. 이 불법이라는 굴레는 20대가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망설이게 만드는 부분이다.

“내가 타투를 배우기 시작한 2010년도부터 내년에 합법화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라 진짜 기대했는데 안 되더라. 올해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일반 타투숍이 더 괜찮은데 굳이 왜 의사한테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손님들도 있고 의사의 작업물에는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만족 못 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개인 타투숍에서 만난 타투이스트 최원석씨(29)는 타투 시술 합법화에 대해 체념한 듯 말했다. 그는 2015년에 직접 타투숍을 차렸다. 당시 자본금은 5년간 다른 숍에서 일해 모은 돈 1000만원이 전부였다. 제도권 밖의 사업이라 창업 지원은 없었다. 그는 나만의 작업실이나 공방을 원했고, 지원은 기대도 하지않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현재는 대로변에 숍이 위치하지만, 첫 시작은 외진 골목길 옥탑방이었다. 다만 간판이 없는 것은 똑같다.
 

최원석씨가 타투를 시술 중이다. [사진=최원석 씨 제공]


“처음에는 재료값만 절반이 나갔다. (타투가) 불법이다 보니 해외에서는 저렴해도 한국에 들어오면 최소 1.5배에서 2배 이상 가격에 팔린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바늘이나 물감을 정식으로 사들이니 통관에 뺏겼고, 가진 돈이 하나도 없게 되니 무조건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밥 먹고 SNS 홍보하고 그림만 그렸다.”

타투 시술이 불법인 점을 악용하는 사람도 많다. 3년 전 최씨는 평범한 손님에게 10만원짜리 타투를 시술했는데 알고 보니 미성년자였다. 손님은 미성년자인 점과 타투 시술이 불법인 점을 이용해 신고한다고 협박하며 합의금 200만원을 요구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을 물려주고, 타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

이외에도 같은 타투이스트끼리 경쟁의식에 신고하는 경우, 방금 뜯은 바늘을 또 새로 뜯어달라는 손님, 막무가내로 타투 시술을 해달라는 10대 등 제도권 밖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프리랜서 ‘타투이스트’…노후 대책 불확실해

최원석씨 지인들은 그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원래 미술에 흥미가 있던 그는 대학교 합격 발표 전부터 타투를 배우러 다녔다. 미술을 하기 위해 시각디자인학과로 진학했지만 어려운 취업난에 전공보다는 타투를 선택했다. 부모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적극 찬성하며 덩달아 좋아하셨다. 친구들에게는 연습 겸 무료로 시술해준 적도 많아 일석이조로 좋아했다고 한다.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프리랜서라 자기 생활관리가 중요하다. 최씨는 숙식을 작업실 뒤에 방에서 해결한다. 손님은 간판이 아닌 SNS를 보고 디자인을 먼저 의뢰하고 시간을 예약해 숍을 방문하니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다.

그는 “보통 아침 10시~오후 10시 사이에 손님을 받고 작업할 때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 운동도 가끔 한다”면서도 “내가 쉬고 싶을 땐 그냥 비워두는 날도 있다”고 타투이스트의 생활을 표현했다.

타투이스트는 프리랜서인지라 은퇴 개념이 없어서 구체적인 노후 대책 마련이 어렵다. 최씨는 “친구들에게 아직도 이 직업을 추천하지만, 노후까진 하기 힘든 것 같다”며 “미용실처럼 젊은 세대의 센스가 달라지니까 내가 중년층이나 노후가 되면 밀려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걱정했다.
 

최씨는 하루 평균 3~4명 정도의 손님을 받는다. [사진=정석준 기자]


그가 소개한 자신만의 노후 대책은 ‘타투 케어 크림’과 ‘부동산’이다. 그는 작업실에 비치된 자신이 개발한 타투 케어 크림을 소개했다.

그는 “내가 몸이 아파도 판매는 할 수 있으니, 타투 시장이 성장할 거라 생각해서 초반에 자리를 잡으려고 만들었다”며 “상표등록도 다 했고 외국에서 8개 정도 크림을 가져와서 직접 개발한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최근 공부하고 있는 부동산에 대해 “서울에서 집 마련하는 게 꿈이다. 그런데 현실은 부동산 양극화가 심하다. 누가 목표를 세우고 저축하면 그 목표가 모은 돈보다 또 멀어진다고 했다”며 “이러다가 집 마련하고 싶은 꿈을 잃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내 이름 걸고 투어 예정”…타투 합법화 방법은 라이선스 제도

2020년 최원석씨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타투 투어를 하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최씨에게 타투 시술을 받고 싶은 사람이 문의가 들어온다. 그의 인스타 팔로워 수는 7만명이 넘는다. 그는 “예전에 터키에서 일본으로 여행가던 중 나에게 타투를 받고 싶어서 한국에 온 사람도 있었다”며 “가끔 제주나 부산에서도 오는데 신기하면서도 (실력이 모자랄까 봐)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타투이스트 사이에서 게스트워크라고 불리는 투어를 올해 계획했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며 “뉴욕이나 호주에서 오퍼가 들어왔었는데 이제 갈 계획이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해뒀다”고 포부를 밝혔다.

타투계 세대교체에 대한 소망도 드러냈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20대까지 타투하는 사람이 많아져도 음지에서 찾아서 연락하는데 제도가 먼저 있어야 생각이 바뀔 것”이라며 “해외의 경우 위생교육 이수 후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방법을 이용하는데 라이선스 제도 정도가 타협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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