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3무 디지털 성범죄] ②관행이라고 눈감는 검찰…언론서 안터졌으니 됐다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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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류선우·류혜경 기자
입력 2019-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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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사과정서 추가 불법촬영 추정 영상 나와도 "관행적으로 별건 수사 안해"

  • 검·경 수사기관의 소극적 수사 태도 아쉬워…"피해자 불신 계속되는 원인"

  • "피해자 권리 보호도 제대로 안돼…디지털성범죄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

 

"안 하는 게 관행이다."

지난 10월 준강간 혐의로 법정에 선 30대 회사원 A씨의 휴대전화에서는 불법촬영물로 추정되는 영상 등이 여러 개 발견됐다. 그중 일부 촬영물은 재판을 받던 사건과 관련이 있었지만, 기소된 건과는 별개로 불법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 등이 나온 것이다. 또 다른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촬영물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다른 영상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 여부를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현직 부장검사(사법연수원 28기)는 "이런 범죄자의 경우, 압수된 휴대전화에서 비슷한 영상 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렇지만 대개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넘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추가 발견된 촬영물의 경우)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의자가 누군지 말을 해주지 않으면 피해자를 알 방법이 없다"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범죄의 가능성을 인지했으면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안 하는 게 관행이다. 그냥 그런 영상들을 피고인의 상습적인 습관으로 참고해 양형 사유로 삼을 뿐이다. 별도로 기소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또 다른 범죄의 가능성을 바로 앞에 놓고 눈을 감는다는 말이다. 2017년 9월 26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불법촬영물 유통차단 및 유포자 강력 처벌을 약속했지만, 현장의 수사기관들은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서울경찰청 ]


◇"오래된 관행과 한계"···"범죄예방 차원에서 선제적 조사 필요"

수사 과정에서 별도의 범죄 가능성이 발견돼도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이유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법무법인 윈앤윈의 장윤미 변호사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사법 체계상 오래된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정말 강력한 강제수사 방식이라 영장에 그 범죄 소명에 필요한 게 분명히 특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 소명에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은 압수물 증거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 특정이 잘 안 되는 데다가 특정해도 피해자가 조사하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실무상 별건으로 인지해도 적극적 수사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수사당국의 의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1호 여성 검사장’으로 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을 지내고 지난해 변호사로 새롭게 법조 인생을 시작한 조희진 변호사(법무법인 담박)는 검찰이 추가로 알게 된 범죄 가능성에 대해 수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런 성범죄자들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영상물들은 다운로드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일반 여성과 관련된 불법촬영물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받아서 임의제출 동의를 받으면 된다"면서 "검사가 수사 의지만 있으면 별도 수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법적으로 못 할 것은 없다. 관행적으로 안 한다는 건 의지가 부족한 거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성관계 영상을 자꾸 촬영하는 성범죄자의 경우에는 재범의 위험도 높을 뿐만 아니라 이후 강력범죄 위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범죄예방 차원에서 조사하는 게 바르다고 본다"고 밝혔다.

준강간범 수사 과정에서 다른 여성들의 영상이 발견됐다면, 적어도 해당 영상이 동의 하에 촬영된 것인지 정도는 묻고 조사해야 했었다는 것이다. 디지털성범죄가 친고죄도 아닌 만큼 별도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증거물을 취득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강조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피해지원국장은 "수사를 열심히 했는데 역량이 부족하거나 어딘가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수사 자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수사기관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특히 촬영물을 통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를 본 순간을 인지하기 매우 힘든 사안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찍히거나 피해를 본 영상물이 유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이 고려된다면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먼저 수사를 요구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피해자를 통해 고소가 이뤄진 뒤에도 검찰은 여전히 '가해자의 입장'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김 지원국장은 지적했다. 그는 "검찰은 카메라 촬영을 통한 피해의 경우 피해자는 동의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는 데도 '몇 년간 교제를 한 사이였다', '촬영하는 동안에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촬영된 이후에도 헤어지지 않았다' 등과 같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불기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위에서 만든 '훌륭한 조사 매뉴얼' 현장 효과는?···"언론에서 안 터졌으니 별일 없는 거 아닌가"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선 경찰서에서도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이 취재한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은 '지인 능욕' 피해를 본 뒤 경찰서에 접수했지만,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나머지 "경찰을 믿지 못한다"면서 본인이 직접 가해자 잡기에 나섰다.

2017년 발표된 디지털 성폭력 종합대책에서는 "경찰 내에 디지털 성범죄 전담 수사팀을 지정 운영함으로써 신고·수사체계를 일원화하여 전문성 보강 및 신속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신고 대응 및 수사방법 등에 관한 매뉴얼을 제작, 일선 기관에 배포하여 활용토록 하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진술상담은 여성수사관이 담당하고 피해 영상의 채증 및 삭제 조치를 먼저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관련 대책은 2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피해 학생이 직접 수사에 나서게 했던 경기도의 한 경찰서 웹페이지에도 불법촬영물 수사관련 매뉴얼이 웹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와 있다.

김여진 한사성 피해지원국장은 경찰 조직의 경우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혹은 지휘체계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디지털 성범죄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의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 지원국장은 "경찰청 관계자분들과 만나 소통을 하면 여러 가지 차원에서 (디지털 성범죄 수사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는 일선 경찰서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들이)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진술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거나, 국선 변호사 선임 같은 권리에 대한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도 범죄 발생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태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사성에 피해 상담을 해온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하는 과정에서 "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냈냐", "왜 사이버상에서 모르는 상대를 믿었냐"와 같은 질문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질문을 여전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지원국장은 "다른 성폭력 수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피해자가 얼마나 조심하지 않았는가를 토대로 수사를 하는 이른바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이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런 문제 제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미투'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2차 가해가 논란이 되면서 경찰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 2018년 10월 '성폭력피해자 표준조사모델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경찰은 "미투 운동, 불법 촬영물유포 등으로 여성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성폭력피해자가 경찰수사단계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이를 방지하고자 개발하게 되었다"면서 "본 모델은 국내·외 연구자료 및 전문가·현장조사관·여성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한 결과의 산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하는 사이버 수사관들도 이와 관련해 안내를 받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시험 시행부터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성과나 개선점에 대한 조사·평가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모델을 만들고 대언론 홍보만 한 뒤 실제 성과나 현장 보고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모델의 효과에 대한 보고서가 있느냐는 질문에 경찰청 여성 대상 범죄 수사계 이기범 계장은 "(표준 모델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데이터를 만들지는 않았다"면서 "다만 지난해에는 이와 관련한 논란이 몇 번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언론 모니터링 결과 크게 터진 점이 없었던 점을 보아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현장의 적용 효과를 적극적으로 직접 조사하기보다는 언론에 문제가 보도되지 않았으니 된 것 아니냐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이버 성범죄는 실제 다리가 부러지고 피가 튀기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범죄가 아니라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이버 수사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의지가 없거나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우선순위에 밀린 것이기 때문에 이런 수사 관행을 바꾸려면 먼저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온라인 성폭력 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 방안'에 따르면 디지털 촬영 성폭력으로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27.3%)라는 응답에 이어 경찰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39명(23.6%)으로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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