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환경부 노력에도 진한 아쉬움 남는 ‘친환경 보일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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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입력 2019-12-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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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 한국미래환경협회 본부장.


정부가 대기질 개선을 위한 칼을 빼 들었다. 미세먼지 저감 등 대기질 개선을 목표로 ‘대기관리 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대한 특별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입법예고하며, 내년 4월 시행을 위한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기존에 수도권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대기관리 권역을 확대해 거의 전국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대기오염물질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마련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겨울철 난방을 책임지는 보일러에 대한 정책이다. 그간 대기관리정책의 단골 손님이었던 자동차, 산업 등과 달리 보일러는, 가정 내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환경 정책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아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질소산화물 배출과 온실가스 감축 등을 위해 난방 분야로까지 정책의 시야를 넓힌 이번 조치는 정책의 빈틈을 메워가는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봐도, 정책의 주관부서인 환경부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친환경 콘덴싱보일러가 에너지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응축수가 배출되는 탓에 배수구가 없는 일부 장소에는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발 빠르게 일반 보일러 중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인 차선책도 검토하고 있어서다. 아직 정확한 설치 범위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대안을 통해 대기질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정책을 검토하는 관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에 머물러 있어서다. 시점을 바꾸면 응당 보일 문제들이, 여전히 정책의 그늘 속에 숨어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자칫하면 정책의 방향을 흔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 있기에 남은 시간 동안 반드시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정책이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저소득층이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를 구입할 경우 지원금을 현재 20만원에서 50만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는 분명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좋은 지원책이다. 하지만, 자가 점유율이 50% 남짓인 국내 주거 환경에서 자기 집을 소유하지 못한 저소득층의 수가 월등히 많은 것이 현실이기에, 실제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콘덴싱보일러 설치가 어려울 경우 저녹스 일반 보일러를 설치하도록 허용하면서, 일정액의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보일러의 구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집 주인은 혜택도 누리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보다는 값이 저렴한 저녹스 일반 보일러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추운 겨울을 눈 앞에 둔 지금 저소득층에 필요한 것은 실제 사용하는 난방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콘덴싱보일러가 가진 일반 보일러 대비 연간 13만원 이상의 난방비 절감 효과는 이번 겨울을 보내는 집 안 온도를 바꿀 수 있을만큼 적지 않은 비용이다. 친환경 콘덴싱보일러 설치가 어려운 주택에 배수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정책 대상이 되는 난방 소외 계층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설치 비용을 지원해서라도 콘덴싱보일러를 설치해 난방비 절감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는 환경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미세먼지 저감과 온실가스 감축 등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목표도 달성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실제로 에너지 효율 혁신 전략의 일환으로 올해 8월부터 시행된 ‘으뜸효율 제품 환급 지원’ 정책은, 저소득층 지원이 구입이 아닌 사용비용으로 향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전 복지할인 가구를 대상으로 으뜸효율 제품 구매가의 10%를 20만원 한도에서 지원하겠다던 이 정책은, 결국 11월부터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제품 구입에 돈을 사용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의 현실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커다란 둑을 무너뜨리는 것은 거센 바람이나 물살이 아니라, 틈새에 난 작은 균열이다. 정책의 빈틈을 메우려는 환경부의 노력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관점을 바꿔 미쳐 돌아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고려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답은 결국 현장에, 그리고 사람에게 있다. 환경부가 더 나은 정책을 위해, 정책의 대상이 되는 수신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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