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자의 가수 도전기] ① 인디뮤직의 성지 홍대 클럽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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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수 기자
입력 2019-12-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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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직업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마냥 즐겁게만 본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이 직업에도 사명이 있지만 마냥 무책임하게 본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무수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싱어송라이터(곡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가수) 김목인이 만들고 부른 노래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한 이진원 씨는 2010년 3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4년 발매된 그의 첫 번째 앨범에 담긴 노래 '절룩거리네'에는 이름 없는 뮤지션으로 살아가던 그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허구한 날 사랑타령 나이 값도 못하는 게
방 속에 처박혀 뚱땅따다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인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

작사, 작곡, 편곡, 노래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가입하는 한국저작권협회. 이 곳에 등록된 회원 수는 12월 3일 기준으로 3만3893명. 가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가수협회 등록 회원은 4000명. 그러나,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수많은 뮤지션들은 이 숫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노동은 '일'이 아니라 취미 정도로 취급될 뿐입니다.

그래서 홍대 클럽 무대에 서 보기로 했습니다. 홍대 클럽의 무대 위에서 노래 한 소절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노력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있을까. 그걸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짧은 의문에서 이 체험은 시작됐습니다. 


노트를 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을 써내려갔다. 홍대 클럽에 서려면 뭘 해야 하는가. 보통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경우 클럽에서 오디션을 보고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2013년, 처음으로 작사·작곡한 곡을 무대에 올렸다. [사진=강지수 기자]

대학생 때 학교에서 밴드를 했었다. 초등학생 시절 진지하게 '제2의 보아'가 꿈이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인디뮤지션이 되는 게 꿈이었으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학생회관 지하로 내려가면 악기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우리의 동아리방이 있었다. 그 곳에서 키보드도 배우고, 밤새 합주도 했다. 친구들과 머리를 싸매면서 편곡이란 것도 해 봤다. 

그리고 2013년, 내가 처음으로 작사, 작곡한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좋아하던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 중 하나의 코드를 그대로 베끼고 그 위에 가사를 얹은 노래였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던 스무 살 느낀 감정을 노래로 만들었다. 어느 날 새벽 3시에 문득 잠에서 깼을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가 세상 제일 외로운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연락하고 싶은데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는 단절감. '사람은 다 혼자야···'라고 혼자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것처럼 되뇌이던 시절 만든 노래였다.

곡을 완성한다고 한 달 동안 친구들과 몇 번이나 밤을 샜다. 밤에 가사를 쓰고, 오전에 이불 발차기를 하며 가사를 버리고, 낮에 버린 가사를 다시 가져와 고쳤다. 녹음기를 켜고 멜로디를 붙였다. 가사 한 소절에 멜로디를 붙이는 데 10번 이상의 녹음이 필요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참 어설픈 노래였는데도, 노래 한 곡을 만드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자작곡을 들려주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이 몸을 감쌌다. 처음으로 세상에 날것의 나를 보여 주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이게 노래냐고 물어보면 어쩌나. 떨면서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몇 명이 다가와 말했다. 나도 저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 나도 어두운 노래 좋아해. 이 노래는 정말 너 같아. 

잔뜩 무게를 잡고, 난 혼자다. 난 외롭다! 이런 기분조차 아무도 모른다! 땅끝까지 뚫고 내려갈 것 같은 우울함을 노래로 담았는데, 뜻밖에 그 노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굉장한 카타르시스였고 위로였다.

그 이후부터였다. 내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랬다. 잘 살고 있다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밥을 먹다가. 싱어송라이터 요정은 불쑥 찾아와 '너 대체 언제 노래 만들거야?' 부채감을 안겨주고서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집에 있는 키보드. 먼지가 쌓여 있다. [사진=강지수 기자]


하지만 현실은 악기를 손에서 놓은 지 몇 년째. 나는 이미 건반보다 노트북과 친해진 지 오래였다. 음악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기에는 매우 당황스러운 현실이었다.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 꾸준한 음악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작곡 스터디에도 들었으나, '죄송합니다. 이번 달은 참석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만 격달로 되풀이했다.
 

시험 때문에, 일 때문에, 아니면 그냥 주말에는 좀 쉬고 싶어서. 음악은 늘 뒷순위로 미뤄졌다. [사진=강지수 기자]


당장은 클럽 무대에 오르기 힘들 것이 매우 분명했다. 알아보니 오픈마이크 무대가 홍대 라이브클럽 전단계 뮤지션들이 많이 서는 무대라고 했다. 녹색창에 '오픈마이크'를 쳐 봤다.

오픈마이크란 공연을 하는 카페 등에서 정식 뮤지션이 아닌 일반인들도 공연할 수 있도록 열어 주는 무대를 말한다. 물론,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뮤지션들이 오르는 무대라는 것 뿐이지 여기도 숨은 실력자들이 많다. 찾아보니 홍대 앞 연남동에 있는 한 카페가 12월 오픈마이크 무대에 오를 사람을 찾고 있었다.

신청을 위해서는 구글 폼을 작성해야 했다. 구글 폼을 열자 제일 먼저 공지사항이 떴다. '팀당 세팅시간+멘트 포함 15분 분량의 공연시간을 꼭 지켜주세요.' '본인의 자작곡이 없는 경우에는 참여 불가합니다.'
 

오픈마이크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자작곡이 필수였다. [사진=언플러그드 카페]


순간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애써 다잡고 페이지를 넘겼다. '팀명, 팀의 구성, 팀의 작업 혹은 활동에 관한 설명을 해 주세요.' 나의 음악을 설명하라는 말이었다. 보여줄 것이 없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듯 겨우 이 란을 채웠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선 죄라도 지은 것처럼 서둘러 '뒤로 가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음원 혹은 앨범, 공연 영상 링크를 첨부해주세요.'

휴대폰을 켜 음성 녹음 파일들을 뒤졌다. 아주 오래전이었지만,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1절 정도까지 만들어 둔 먼지 쌓인 노래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 들려 주기엔 너무 부끄러운, 이를테면 다음날 아침 '이불 발차기' 하기에 딱 적합한 새벽 3시의 기록들이었다.

신청 마감 날짜까지는 겨우 하루가 남아있었다. 새로운 곡을 만들 수는 없었다. 있는 곡으로 신청만이라도 해 보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그나마 녹음 상태가 양호한 곡을 올렸다. 그래도 들어줄 만한 것은 못 됐다. 소속사 없는 독립음악가들은 이것들을 계속 혼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사, 작곡, 연주부터 앨범 커버 디자인, 녹음, 프로듀싱까지.

마감 날, '기대하지 말자' '한 번 해 보는 거다' 주문을 외며 겨우 '제출' 버튼을 눌렀다. '뽑힌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릴 예정입니다.'

유튜브 조회수는 0에서 1로 늘어났지만, 역시 예상대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으면 두세 번은 더 봤을 법 한데. 그러나 조회수는 냉정하게 '1'이었다.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인근에 있는 라이브클럽 빵. 1994년 이대 후문 부근에서 태동한 클럽 빵은 2004년 이곳으로 옮겨 와 15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강지수 기자]


자극이 필요했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홍대의 '클럽 빵'을 찾았다. 이전에 자주 공연을 보러 찾았던 곳이기도 했고, 무대에 서게 된다면 가장 오르고 싶던 곳이기도 했다. 수요일 입장료는 1만2000원. 무료로 제공되는 맥주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클럽 빵은 약 30석의 좌석이 있는 작은 공연장이다. 입소문난 인디뮤지션들 중 이 라이브클럽 무대를 거치지 않은 뮤지션들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이곳은 인디 음악의 역사이고, 산실이다. 화려한 조명 하나 없는 공연장은 아주 단출해 보였지만, 동시에 묵직한 연식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클럽 빵에는 10명이 될까말까하는 관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관객마저도 그날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들로 보였다. 대부분이 기타를 옆에 두고 앉아 있었다. 대기실이 없는 클럽 빵. 그것이 무대와 관객의 구분이 없는 '빵'만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진짜 관객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날의 빵은 좀 쓸쓸하게 느껴졌다.
 

홍대 클럽 빵에서 몽골의 전통 악기 '마두금'을 연주하는 뮤지션. [사진=강지수 기자]


그날 무대를 시작한 뮤지션은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을 가지고 '흐미'라는 몽골 창법을 써서 노래를 불렀다.

무대의 마지막 순서는 키보드를 치며 노래하는 여자 싱어송라이터 '리온'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소개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몰입이 그녀의 공연 내내 이어졌다. 그녀는 오래된 피아노에 관한 노래와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 연예인에 관한 노래들을 불렀다.

무대가 끝나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용기를 내 '클럽 빵' 지망생이라고 소개하고 싶었는데 "기자인데, 잠깐 이야기 좀···"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아, 저희는 관심을 가져 주면 감사한 사람들이니까요" 하고 반겼다.

엉거주춤 리온 씨와 함께 홍대입구역까지 걸어가게 됐다. 쌀쌀한 날씨에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녀는 빵에서 공연한 지 2년이 됐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지는 3년이 됐다.

"오늘은 그래도 관객이 많은 편이에요." 의아했다. 분명 10명이 넘을까말까 했는데. "평소에는 저랑 제 남자친구, 공연하는 사람들밖에 없어요."

끝끝내 '클럽 빵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2년 동안 이 무대를 지켜 온 뮤지션에게 '나도 한번···'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대신 다음 번에 그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
 

[사진=싱어송라이터 리온 제공]

이튿날 일을 마치고 온 리온 씨와 다시 만났다. 사자를 좋아해서 '리온(l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그녀는 3장의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레슨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 했다. 피아노 개인레슨을 하고 있는 리온 씨는 지인을 통해서 주부, 초등학교 4학년, 직장인 등에게 취미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진=싱어송라이터 리온 제공]


그녀는 레슨과 교회 반주, 공연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의 패턴을 정해 음악을 하기 위한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오후 6시 전으로 배치하고 오후 6시 이후의 시간은 음악을 위한 시간으로 비워 두는 것이다.

수입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별도로 작업실도 구해 입주를 앞두고 있다. 리온 씨는 "집 방음이 좋지 않다"면서 "마음은 끓어넘치는데, 노래를 부를 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아 자꾸 틀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리온 씨가 최근 입주한 작업실. [사진=싱어송라이터 리온 제공]


그녀는 작업실을 구한 것이 투자라고 말했다. 그녀는 "투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성숙해지기 위한 투자다"라며 "작업실을 갖고 있어야 음악이 다양해지고 퀄리티가 높아져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별도로 작업실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리온 씨는 스스로 일정한 생활 패턴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늘 음악을 위해 '틀을 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4살 때부터 쳐 왔던 피아노를 기반으로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 왔지만 최근 그것이 표현을 제약하는 것 같다고 느껴 기타도 배우고 미디도 다뤄 보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생활 패턴도 바꿔 봤다고 했다. 그녀는 "보통 새벽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는 아침 일찍 작업도 하고 있다"면서 "오전에는 새로운 진행라인도 나오고, 일하러 가기 전에 빨리 끝내자는 생각에 속도도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활 패턴을 바꾼 데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새벽은 그녀가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이 되면 불안한 감정이 찾아온다"며, "계속 음악만 해 와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고, 고심해서 쓴 가사를 들려주고 싶은데 방구석 음악가로 살다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까지 온전히 음악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평소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최근에는 우울한 정서에 스스로를 놓아두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그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감정을 자꾸 숨기게 되면 가사가 잘 써지지 않는다며, 감정을 마주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같은 음악하는 친구들끼리 이런 감정을 공유하냐고 묻자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잘 모르겠다"며 "밴드들은 다를 것 같은데, 솔로 뮤지션들은 공연 끝나면 다들 휙 사라지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대신 그녀의 주변에는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늘 "내가 잘 돼서 회사 차리고 너네들 먹여살릴게"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그녀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꿈을 꿀 여유가 없었던 친구들도 있어 섣불리 고민을 털어놓기가 힘들다"고 고백했다. 매일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생활 패턴을 유지해 나가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베짱이'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게 정확히 뭔지 알고, 그것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부심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녀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다룬 곡이면, 마냥 우울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봐야 할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게 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게 하고. 꽤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 그녀에게 빵 무대에는 어떻게 오를 수 있냐고 슬쩍 물었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오디션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첫 단추를 발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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