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소통의 시작은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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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범 기자
입력 2019-12-0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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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희 관악구청장

박준희 관악구청장. [사진=관악구청]

토론과 여론을 중요시하는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시대를 초월해 주목받고 있다. 세종은 중대한 안건을 결정할 때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중론을 모으며 이른바 '소통(疏通)의 정치'를 펼쳤다. 조세 제도인 공법(貢法)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계각층 17만명에게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무려 14년 동안 시범운영하며 모든 민의를 수렴했다. 백성의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들으며 많은 이가 공감하는 조세 공법을 만들었다.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소통'이 키워드인 시대다. 가정, 학교, 직장, 어디서든지 소통이 없으면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반대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하면 혼자일 때보다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다. 나아가 구성원들이 진실한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 배려함으로써 따뜻한 공동체도 형성된다.

특히 중앙 정치에 배속되지 않고 그 지역만의 행정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주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민과의 스킨십을 통해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반영할 때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기성복이 아니라 개개인의 몸에 꼭 맞는 '맞춤형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치생활 내내 소통을 늘 강조하며 주민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왔다. 16년 구의원·시의원에 이어 구청장 2년 차인 지금까지도 잘 닦인 구두 대신 낡고 투박한 운동화를 신고 관악구 골목골목을 누비는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구의원 시절, 두 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민원불편해소 상담소를 차리고 모든 민원을 직접 받았던 일은 30여년 정치 인생에서 보석같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민선7기 관악구청장이 되어서도 주민과의 '소통 공간' 마련을 가장 먼저 꿈꿨다. 선거운동 시절부터 '구청장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주민들의 말에 구청장실을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500년 전 시민이 모여 정치·경제적 문제에 대해 토론·숙의하며 직접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제1호 공약사업으로 구 청사 1층에 카페 형태의 열린 구청장실인 '관악청(聽)'을 조성했고, 화·목요일이면 이곳에서 직접 민원을 받았다.

1년간 관악청에서 접수한 민원은 무려 300건이 넘는다. 갑작스러운 위기가정의 경제적 어려움부터 주택·교통·환경 등 생활 속 불편사항, 구정운영에 대한 정책 제안까지 다양한 건의와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중 90% 이상을 이해·설득시키거나 해결했을 만큼 주민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악청에서 더 나아가 올 3월에는 관악구 전 동을 순회하는 '이동 관악청'을 운영, 2200여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또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구정 제안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관악청'을 올 7월 오픈했고, 벌써 2만여명이 방문했다. 얼마 전에는 113개 관악구 모든 경로당을 돌며 4400여 어르신을 찾아뵙는 대장정도 마치며 소통의 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소통은 주민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 행정'의 시작이다.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직접 느끼고 깨달아야만 참된 정책으로 주민에게 만족과 진실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또 여러 의견을 듣다 보면 혼자는 생각 못 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좋은 주민제안은 구정에 반영해 현실화시키는 행운까지도 얻게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을 현 시대에 맞게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면 믿기 힘든 기적도 이뤄진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 주민이 바로 지역의 주인공이며,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 완성될 때, 관악구는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고 한층 높이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600년 전 세종대왕이 보여줬던 소통의 리더십을 가슴 깊이 새기고, 50만 관악구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 주민과 동고동락하는 능동적 감동 행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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