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외교, 화해 시늉만으론 못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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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19-11-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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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지난 4일 오전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를 취재하던 일본인 지인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환담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내줬다. 2018년 9월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이뤄진 짧은 만남 이후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만나지 못했던 두 정상 간 회담의 필요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했던 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매우 우호적이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환담이 진행됐다는 청와대 설명과는 대조적으로 일본 외무성의 보도자료는 아주 사무적이며 무미건조했다. 문 대통령 모친상과 이낙연 총리의 일왕 즉위식 파견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말을 제외하면 양국 현안에 대한 ‘일본의 원칙적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게 전부였다.

10월 24일의 이낙연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 때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한·일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나라이며, 북한 문제를 비롯해 일·한, 일·한·미의 연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일·한관계는 매우 엄중한 상황에 있지만 중요한 일·한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아베 총리의 언급이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일본 언론은 “한국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계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아베 총리의 지적에 더해 “한국 대법원 판결이 1965년 국교수립 이후 양국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관련 브리핑에 더 무게를 두고 보도를 했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기보다 외면하려는 한·일 양국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지난 8월 23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 결정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 측의 지속적인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10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 정부의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은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분쟁을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면 양국과 제3국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된 중재위원회에서 해결하고, 이에 관해 합의하지 못하면 제3국으로만 구성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노 실장은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에 관해 양국 정부 간에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인정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1년 9월과 11월 일본이 우리의 양자 협의 요청을 거부했던 전례를 들면서 중재 요청에 응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0일 일본이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이 이해해줄 것이며, 이대로 종료되어도 한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의용 실장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여론조사가 국책연구기관에서 발표되었다. 통일연구원이 9월 17일부터 10월 8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1%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지지하며,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취소한다면 지소미아 종료를 철회하는 것에 55.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1월 6일 통일연구원 주최 제11차 평화포럼 발표, '동북아 정세와 한국인의 인식'). 국민여론을 국정에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대일여론은 국익보다 감성에 좌우되기 쉽다.

2020년 일본의 방위예산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우주나 사이버 공간 등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5조3000억엔을 넘어 사상 최고다. 내년 한국 국방비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남북평화경제 구축을 통한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면서 올해보다 7.4% 증가한 50조1527억원으로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었다.

무늬만 평화일 뿐 실제로는 군비경쟁이다. 아베 총리의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적극적 평화주의’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데 왜 이런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지 양국 국민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은 미국보다 한국과 일본에 더 위협적이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가 실현돼야 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양국은 막대한 국방(방위) 예산을 절약할 수 있어 사회복지에 충당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일본의 평화는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간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지난 9~10일 일본의 TBS 계열 뉴스네트워크인 J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한국은 지소미아의 종료에 더해 사법부의 판결 존중을 이유로 ‘창의적인 해법’을 고민하다가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의 현금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본도 수출관리운용과 지소미아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한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책임 있는 국가라 할 수 없다.

우물쭈물하다가 한·일관계가 사고사(事故死)하지 않도록 국가전략과 미래비전에 관한 고위급 대화를 시작하는 양국 정상의 용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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