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정·민생·탕평’…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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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정치부장
입력 2019-11-0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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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예측 가능한 앱니더.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입니더.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착해서 ‘저래 가지고 세상 살겠나’ 싶었습니더.”

문재인 대통령은 인생의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고(故) 강한옥 여사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흥남철수 때 거제로 피란해 모진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을 희생으로 키운 강인한 어머니였다. 문 대통령은 "가난하지만 기본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이 제게는 나침반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 강 여사도 생전에 아들을 '참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문 대통령과 서울구치소 옆방 동문이었던 한승헌 전 감사원장도 자신의 저서에서 “그의 말에 믿음을 주는 진정성과 역동성 그리고 사심 없는 순결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그의 성취가 우리 모두의 성취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겸손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책임감이 강한 지도자다. 하지만 국민과 역사로부터 평가받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에는 지금,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고 견고하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0%대에 머물러 있다. 정의당을 포함한 범여권 득표율(47.3%)은 이미 깨졌다. 촛불의 힘으로 국민 81%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시작했지만, 2년 반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도 있겠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이미 바닥을 찍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낙관론을 펴고 있지만, 저성장·저물가·고환율 등이 우려되면서 각종 경제지표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만약 성장률까지 1%대로 추락하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게 된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전격적으로 추진했지만 내수 경기 부진으로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자영업은 폐업이 속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은 또다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비정규직은 더 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 역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바퀴는 멈춰섰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색된 한·일관계는 좀처럼 풀릴 줄 모르고, 동맹이라는 미국은 어마어마한 금액의 방위 청구서를 들이대고 있다.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최대 가치였던 ‘공정’은 흔들렸고, 실망한 청년층과 중도층이 고개를 돌렸다. 보수·진보 간 진영 갈등으로 나라는 둘로 쪼개졌으며,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검찰개혁은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총선 전에 레임덕이 시작되는 30%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1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서 문 대통령 모친 고 강한옥 여사 장례미사를 마친 뒤 장지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높고 견고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으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최대 과제로 삼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복지와 분배라는 이분법적 근본주의에서 탈피해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시그널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국정쇄신과 관련해서는 과감한 인적쇄신을 단행하고 코드인사에서 벗어나 예상 밖의 인사를 기용하는 탕평책을 써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초 경북 울진 출신의 김중권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중앙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좋은 인재, 탕평 인사를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야권 대선주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내정하는 탕평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고,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회 입법이 시급한 민생과 경제 법안 처리에 야권의 협조가 절실하다. 야당들과의 소통에 숨통이 트이는 계기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정치 갈등의 책임을 야당으로 돌렸지만, 국민의 눈에는 여야 모두 다 똑같다. 중도층을 다시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서 포용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직도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다. 갈 길이 멀다.



 

[주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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