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꺼지지 않은 '훠궈 도시' 中 청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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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지 기자
입력 2019-10-3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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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무역전쟁 대응 내수 부양 위해 밤시간대 영업 활성화

  • 中 야간관광·심야식당·야간유람선 등 24시간 영업점 지원

  • 늦은밤에도 훠궈전문점엔 올빼미족 몰려...2~3시간 대기줄

'175'

지난 25일 기자가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대표 훠궈 전문점인 슈따샤훠궈를 방문했을 때 받은 대기번호표의 숫자다. 가을비가 내리고 시간이 늦었음에도 '올빼미족' 대기 손님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피해 중국을 방문하여 대기 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 훠궈 전문점 종업원은 "성수기, 비수기 상관없이 자정에도 2~3시간 대기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다수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훠궈, 마라탕 등 쓰촨요리가 등장해 유명해지면서 관광객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약 4시간 걸리는 청두는 중국 쓰촨성의 성도(省都·성의 수도)다. 중국 서부 지역 최대 경제권이자 성장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청두는 그동안 우리에게 '유네스코가 선정한 아시아 미식 도시', '쓰촨요리의 본고장', '판다의 도시' 등으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청두는 중국 공산당이 중서부 낙후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한 '서부대개발' 계획에 힘입어 이제 중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소비 도시'로 성장했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찬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청두의 밤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시 정부가 야간경제로 소비 진작을 하기 위해 주력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청두 시내 쇼핑중심지인 국제금융스퀘어(IFS). [사진=최예지 기자]

◆청두, 야간경제 활성화 주력

최근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중국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야간경제(심야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야간경제는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서비스 영업시간을 '밤 시간대'로 확장한 경제개념이다. 내수경기 부양을 위한 '새로운 무기'로 야간경제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처럼 청두도 지난해 '청두시의 국제소비도시 행동계획'에 따라 야간경제 활성화에 주력하고 나섰다. '미식 도시'라는 명성답게 음식점을 중심으로 야간 소비에 적합한 경영 항목을 확대하고 있고, 야간관광·소비시범구역을 지정해 24시간 영업점을 지원하면서 내수 소비를 끌어 올리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심야식당, 박물관 야간개장, 야간 유람선 등도 활성화했다. 

'청두의 가로수길'로 불리는 춘시루에서도 대형 쇼핑몰들 사이에서 영업시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영화관과 서점이 등장했고, 청소부·경비원이 늦은 시간까지 심야 시간 보행자들의 안전 및 편의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특히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국경절 황금연휴 기간 중국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소비해 중국의 '소비 파워'를 보여줬다고 중국경제망이 최근 보도했다. 중국 은행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국경절 연휴기간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시간대에 청두의 레스토랑 소비액은 전년 동기 대비 55.5% 늘었다. 이는 전체 시간대 레스토랑 소비 증가율 40.3%를 크게 웃돈다. 또 올해 상반기 청두의 야간 배달 주문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70% 늘어났다.

청두시 정부 관계자는 "야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하철과 공공교통시간을 늘려주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라면서 "야간 경제를 진작시키는 데 방해되는 각종 규제도 점차 없앨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6~2022년 중국 야간경제 발전 규모. [그래픽=아주경제]

◆불야성으로 변한 중국의 밤··· 절반 이상 대도시 주민 야간소비  

현재 중국의 야간 소비 규모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커지는 모양새다. 중국 상무부의 도시주민 소비습관 보고서에 따르면 대도시 주민 소비의 60%가 야간에 이뤄지고 있고, 대형 쇼핑몰의 오후 6~10시 매출액이 일일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 IT시장조사 전문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는 2017년 중국 야간소비 규모가 20조 위안(약 3307조원)을 돌파했고, 2018년에는 전년 동기 대비 11.5% 늘어난 22조8592억 위안에 달했다고 전했다.

아이미디어리서치는 올해 중국 야간소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한 26조4312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중국의 야간경제 규모가 2020년에는 30조9034억 위안, 2022년에는 42조4227억 위안으로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야간경제 활동을 촉구했지만, 지방정부에서 이를 본격화한 것은 2004년이다. 중국의 대표적 맥주 도시인 산둥(山東)성 칭다오(青島)시가 중국 최초로 야간경제 육성을 위한 정책을 내놨다. 이어 2006년에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가 '야간 오락활동 발전 보고'를 통해 심야에 이용할 관광시설 설립을 지원했다. 항저우만의 문화가 드러나도록 야간경제를 육성하는 게 골자였다.

2010년 허베이(河北)성이 나서서 '성·시 야간경제 발전 지도 의견'을 통해 관광특구를 조성했고, 허베이성 내 스자좡(石家莊)·바오딩(保定)시는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2014년 충칭(重慶)·닝보(寧波)시, 2017년에는 난징(南京)·우시(無錫)·시안(西安)시 등도 잇따라 관련 정책을 마련하며 야간경제 활성화에 힘썼다.

베이징(北京)시도 심야에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을 늘리고 야간에 거리 조명을 밝히는 등 야간경제 활성화를 위한 13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이미 '불야성(不夜城)'으로 유명한 상하이(上海)는 저녁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야간구장(夜間區長)', '나이트라이프(밤문화) CEO' 제도까지 만들었다. 밤문화를 잘 아는 기업인에게 나이트라이프 CEO를 맡겨 야간구장을 도와 심야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도록 한 것이다.
 

청두의 춘시루.[사진=최예지 기자]

◆중국 경제 '깜깜'··· 야간경제 활성화로 살릴 수 있나

중국의 올해 3분기 경제 성장률이 6.0%에 그치며 올해 목표치 마지노선인 '바오류(保六·6%대 성장률 유지)'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전분기의 6.2%보다 0.2% 포인트 하락했고, 시장 예상치(6.1%)에도 미치지 못했다. 6.0% 성장률은 분기별 성장률을 발표하기 시작한 1992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중국 주요 매체들은 3분기 경제 성장률이 여전히 중국 정부가 정한 올해 연간 성장률 목표 범위(6.0~6.5%) 안에 있다며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야간경제 활동 촉진으로 내수를 끌어올려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충격을 완화,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야간경제를 통해 다방면으로 투자가 늘 것이고,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추가 인력 고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민간 소비와 경제 성장을 압박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관세로 인한 압력이지, 정작 중국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또 경기 둔화로 중국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아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야간 경제 활동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소비시장을 진작시키기에는 어려움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10%대를 넘던 월별 소비지출 증가율은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지난해 8% 선으로 내려앉았다. 올해 들어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 등에 힘입어 다시 소폭 반등했지만, 하반기 들어 다시 주춤하면서 9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7.8%까지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 6%대를 확보하기 위한 소비증가율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8%를 밑도는 수준이다.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6월 이후 7%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푸샤오둥 중국 인민대학 응용경제학과 교수는 "중국 도시의 야간경제는 상품 구조가 단일하고 런던, 파리 등 야간경제를 대표하는 도시를 따라하기 급급하다"며 "중국만의 상품을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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