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답이라고? 또다른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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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19-10-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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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공수처가 제2의 조국사태로 비화할 조짐이다. 찬반으로 나뉜 대규모 집회가 지난주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렸다. 찬성 측은 조국을 옹호했던 세력이, 반대 측은 사퇴를 외쳤던 세력이 그대로 몰려 나왔다. 공수처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어서 조국 옹호자들 중에서도 반대가 있어야 하고, 거꾸로 조국은 싫어도 공수처는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그런 선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내편, 네 편으로 또 갈렸을 뿐이다. 진영(陣營)의 벽은 실로 높고 단단해서 어떤 일탈도, 교차압력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국사태 이후 공수처를 대하는 집권세력의 눈에서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조국대전에서의 ‘패배’를 어떻게든 만회해야겠다는 각오 같은 것 말이다. 민주당 검찰개혁위 공동위원장인 이종걸 의원은 지난 20일 “공수처는 황교안 대표 같은 사람을 조사하는 법”이라고 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걸로 정평이 있는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의외였지만, 한국당은 즉각 “공수처의 목적이 야당 탄압에 있음을 보여준 거”라며 반발했다. 이래서는 공수처 논의가 이성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심지어 공수처를 의원 증원과 맞바꿀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공수처 논란은 올해로 20년째다. 진보 측에선 더는 논의가 필요 없다고 한다. 어떤 추가 논의도 공수처 유보나 백지화를 위한 지연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기간 논의해 왔다는 것은 그만큼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20년을 논의했는데 1, 2년인들 더 못할까.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두 개의 안이 20년 동안의 변화까지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로 헌법학자 허영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공수처 설치는 위헌”이라고 했다. 위헌 지적은 공수처에 대한 가장 심각하고도 본질적인 문제 제기다.

찬반 논란의 쟁점들을 여기서 다 다루기는 어렵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됐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수처가 생기면 검찰의 중립성이 강화될까.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수처 검사는 검사 출신 50% 미만과 나머지 외부 인사들로 채우도록 돼 있다. 외부인사라면 이 정권 하에선 곧 ‘민변’이다. 변호사도 처장이 될 수 있어서 ‘민변 공수처’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까.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는 건 맞는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진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 정도다. 그런데 검찰은 약화시키면서, 검찰보다 더 센 공수처를 놔두는 건 괜찮고? 공수처는 검사, 판사, 경찰관(경무관급 이상) 등 수사·재판기관 종사자들의 직무유기, 직권남용, 피의사실 공표 등의 혐의에 대해서 수사·기소할 수 있다. 우리에겐 재판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그로 인한 고소·고발 건수가 매년 수천 건에 이른다. 그 때마다 검·판사가 공수처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 공수처가 사법권 위에 군림하는 명백한 삼권분립 위배다.

공수처는 다른 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을 자신들에게 넘기도록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무조건 응해야 한다. 집권세력에 부담을 주는 사건은 공수처로 넘겨서 유야무야 뭉개버릴 수도 있다. 이런 무소불위의 공수처가 생긴다면, 그 공수처를 감독할 또 다른 공수처가 생겨야 할지도 모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공수처를 통한) 검찰의 분산·약화가 청와대 권력의 강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부정적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22일)에서 “전 정권에서도 공수처 같은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했더라면 국정농단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공수처를 이용해 수사를 덮으려 들지는 않았을까. 대통령은 “공수처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대안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정치의 사법화를 지양하고, 검찰-법원-경찰 3자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검찰의 비대화를 막는 길밖에 없다. 정치권부터 문제만 생기면 검찰로 들고 가는 행태를 바꿔야 한다. 정치의 무능이 검찰의 정치 개입을 부르고 편향성 시비를 낳았음을 부끄럽게 알아야 한다. 일부 정치검사들이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어 암약한 탓도 물론 크다. 그러나 이런 후진적 관행은 공수처가 아니라 정치문화의 개선을 통해 바로잡을 문제다.

검찰 권력의 약화(합리화)도 사법통제가 답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흔히 검사의 힘은 압수수색에서 나온다고 한다. 조국사태 때도 윤석열 검찰은 무려 3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 판사는 90% 내준다. 기각률이 10%밖에 안 된다. 그러니 검사의 힘이 셀 수밖에. 판사는 영장 발부를 더 엄격히 함으로써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 그래야 불구속 수사의 원칙도 바로 선다. 미국만 해도 압수수색은 그 대상이 법정 증거로서의 개연성이 있을 때만 허용된다.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은, 수사지휘권은 검사가 갖되 경찰의 수사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게 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민사상 고소·고발 사건은 70%가 불기소되는 현실을 감안해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꼭 공수처가 아니더라도 사안별로 머리를 맞대면 풀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렇게 거둔 성과가 공수처를 통해 얻고자 하는 성과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검찰개혁이 꼭 공수처여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도 ‘검찰개혁=공수처’로 몰아간다. 진영 탓이다. 진영에 갇히면 진영의 논리에 매몰돼 사안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내친김에 한 발 더 나가보자. 공수처 논란을 보면서 떠오른 건 시민사회(civil society)다. 우리 시민사회의 성숙도는 지금 어떤 수준일까. 일찍이 정치학자 아몬드(Almond)와 버바(Verba)는 안정적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정치문화로 시민들의 능동적 정치참여가 가능한 ‘시민적 문화(civic culture)'를 꼽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된 지 오래다.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참여의 폭발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가히 극단의 참여사회다. 촛불의 힘으로, 그러나 가장 민주적으로 정권을 바꾼 오늘의 한국사회를 본다면 지하의 아몬드와 버바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 극단의 참여·민주사회에 구시대의 유물 냄새가 물씬 나고, 기껏해야 사회주의 중국 정도가 갖고 있는 공수처라는 모자를 씌우겠다는 게 과연 옳은 대처일까. 우리는 세계 10대 무역국이면서 인구는 5000만에 불과한 전형적인 강소국(强小國)이다. 기존의 사법적 통제기구도 슬림화해서 자유와 창의의 공간을 넓혀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괴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공수처 같은 초사법적 억압기구를 또 만들겠다고 한다. ‘공수처’라는 브랜드가 그리도 필요할까. 시민사회의 힘으로 탄생한 정권이 시민사회의 통제를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권력 쟁취와 유지라는 절대명제 앞에선 뭐든 하겠다는 집요함의 표출로 비치기도 한다.

시민사회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당장 몇 년 내에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정치도, 사법체계도 모조리 바꿀 것이다. 공수처라는 집을 지은들 얼마나 갈까. 공수처가 이 모든 변화들에 대한 미래지향적 대응이라면 흔쾌히 수긍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오늘의 기득권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미래의 기득권자들에게 넘겨주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수처, 그 실체를 봐야 한다. 진영을 허물면 보인다.

 

자유연대, 조국구속문재인퇴진국민행동 등 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국회 앞에서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 설치 반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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