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막아야 선진국 간다]후진국 현상 건설현장 붕괴사고 잇따라…적정공사비 보장 입찰제 전면 개편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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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관 기자
입력 2019-09-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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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재 사망자 절반은 '건설업'...올들어 벌써 302명…전 산업선 줄어드는데 건설업만 늘어

  • 안전사고 근절 방안 핵심은 '비용'...공사비 저가낙찰ㆍ덤핑수주가 성실시공 걸림돌

  • 2016년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에도 건설공사 낙찰률은 여전히 70%대로 종전 최저가낙찰제 때와 큰 차이 없어

  • 美ㆍ日 등 선진국 90% 이상…佛선 예정가격 85% 이하인 경우 저가 입찰로 판단

  • 낙찰자 공사비 제값 받도록 제도개선 시급…LH 공공택지 설계공모 방식 공급 검토 "긍정 평가"

[사진=연합뉴스]

 


후진국의 대표 현상 중 하나로 불리는 건설현장 붕괴사고가 최근 잇따르면서 부실시공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건설공사 입찰제도의 전면적인 개편 목소리가 높다.

발주사가 시공사 입찰단계에서 경영·경험·기술 등 시공능력 중심으로 평가해 적격의 시공사가 제값을 받고 공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 건설공사에서 가장 낮은 공사비를 써낸 시공사를 낙찰자로 선정해 시공을 맡기는 최저가낙찰제의 개선 방안으로, 2016년 유사공사 경험과 기술 등 능력을 심사에 반영하는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했다.

최저가낙찰제가 시공사의 저가낙찰과 이에 따른 잦은 계약변경, 부실시공, 저가하도급, 산업재해 증가 등의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심사낙찰제도 역시 별 효과 없이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균 입찰참가업체 수만 소폭 줄었을 뿐, 저가투찰을 유도하는 심사 기준에 따라 낮은 가격의 낙찰이 여전해 원도급사는 물론 하도급업체들까지 동반 부실화의 우려를 낳고 있다.

업계에서는 부실시공과 하자분쟁,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적정공사비를 지급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긴급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건설업 사고 사망자 수는 302명(잠정)으로 같은 기간 산업 전반에 걸쳐 발생한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608명의 절반에 이른다. 또 이 같은 전 산업 사고 사망자 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3%(34명) 줄어든 반면, 건설업 사고 사망자 수는 거꾸로 3.1%(9명) 늘었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근로자 수는 190명으로 작년(170명)보다 20명이나 증가했다.

정부는 최근 서울 잠원동·상도동 등에서 건물붕괴 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자 올해 연말까지 사고 우려가 높은 공사현장과 최근 사망사고가 발생한 시공사, 공정률 등을 고려해 집중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업계에선 그러나 정부의 점검과 단속만으로는 사망사고 줄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의 핵심은 결국 비용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최저가만 중시하는 공사 낙찰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정부는 2015년 12월 '300억원 이상의 국가 및 공공기관 발주공사'에 대해 최저가낙찰제 대신 2016년부터 종합심사낙찰제를 전면 실시하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내놓았다. 최저가낙찰제가 덤핑 낙찰을 야기하고 이로 인해 부실시공과 저가하도급은 물론 산업재해마저도 일으키기 때문이란 게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다.

종합심사낙찰제가 도입됐지만 저가낙찰은 여전하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하는 종합심사낙찰제 낙찰률이 77.7%에 불과하다.

낙찰률은 발주사가 공사 세부 내역 시세 등을 반영해 적정 공사비로 추정 산출, 입찰 전에 마련해놓은 예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이다. 낙찰률이 100% 아래이면 낙찰가격이 예정가격보다 낮다는 뜻이다.

이 같은 종합심사낙찰제 낙찰률은 종심제 도입 이전에 쓰이던 최저가낙찰제 수준인 70% 중반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300억원 이하의 공사에 적용하는 적격심사제에서도 낙찰률이 80~87% 수준이다.

반면 외국은 낙찰률이 90%를 웃돈다. 2015년 기준 일본 공공공사의 평균낙찰률은 국토교통성 발주 시 91.8%, 지방자치단체 발주 시에는 92.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도 연방도로청 발주 공사의 낙찰률이 93~107.5%로 추정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저가 입찰로 판단되면 투찰 내역에 대해 서면으로 설명을 요구하고, 총액을 비롯해 내역서 단가가 불균형할 경우에 입찰을 거부한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예정가격의 85% 이하인 경우 저가 입찰로 판단한다.

현재 우리나라 건설업에 형성된 70%대 낙찰률은 업체의 기술력을 반영한 시공 가능한 수주가 아니고 수주만을 위해 응찰하는 데서 나오는 수치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신설·강화되고 있는 건설 규제의 근원적 문제는 적정공사비 미지급에서 비롯된다"면서 "개별 규제 양산에서 탈피해 적정공사비 지급과 사후적 규제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가 수주는 결국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 업계에선 아파트 하자분쟁이 지속되는 이유도 후진적인 건설업 구조에서 찾는다. 공사 감독 체계가 헐겁고, 품질보다는 최저가를 내세우는 업체에 일감을 주는 경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명 부천대 부동산유통학과 교수는 "감소하는 숙련공을 육성하고 하도급·재하도급 관행을 개선할 뿐 아니라 시공사의 입김에 제 기능을 못 하는 감리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택지공급 방식을 추첨에서 설계공모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설계공모는 공공택지의 지구단위계획 및 마스터플랜을 토대로 가장 최적화된 설계안을 가져온 설계·건설사에 토지 공급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 추첨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강조되는 셈이다.

일각에선 설계공모 방식 또한 특화설계 경험이 많은 일부 대형건설사 위주로 낙찰될 것을 우려해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LH가 발주한 주택도급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에 한해 공공택지 입찰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이다.

한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LH 도급사업을 통해 이미 시공 품질이나 현장운영 능력이 검증된 실적사들에 택지 입찰 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공공택지 사업에서 창출한 이익이 다시 LH 도급사업의 품질 향상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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