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소비세율 인상의 저주...경기침체 감수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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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9-09-26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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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1일부터 소비세 기존 8%에서 10%로 인상

  • 소비세 도입 30년 만에 세 번째 소비세율 인상

  • 세수분 이용한 재정건전화 목적...소비 위축 우려

  • 일본 경제지표 먹구름...미중 무역전쟁 등도 변수

일본에서 때아닌 고가 제품 소비 붐이 불고 있다. 일본 전기공업회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내 백색가전 출하액은 2178억 엔(약 2조43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했다. 제품별로는 세탁기 판매 증가세가 돋보였다. 전년 대비 25.3% 증가한 328억엔 상당의 제품이 팔렸다. 에어컨도 16.8% 더 많이 팔렸다.

주말과 공휴일인 '추분의 날(23일)'까지 3일간의 연휴 동안에도 가전이나 보석 등 고가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NHK 등 현지 언론은 전했다.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가 매달 최소 한두 개의 공휴일을 정해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가 제품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소비세율 인상 전 마지막 연휴였던 만큼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깜짝 쇼핑'에 돌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증세 탓에 같은 제품 사도 비싼 값에...소비 위축 우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10월 1일부터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0%로 상향 조정한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를 높이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맨 처음 소비세가 도입된 것은 경제 호황이 한창이던 1989년이다. 당시 세율은 3%였다. 1997년 5%, 2014년에는 8%로 올랐다. 일본 정부가 5년 만에 다시 한번 증세에 나선 것이다.

소비세가 오른다는 건 결제금액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물건을 구입할 경우 현재는 소비세 8%를 더한 108원을 낸다. 하지만 10월부터는 10%의 소비세를 더해 110원을 결제해야 한다. 같은 제품을 사는데도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셈이다. 세금이 오르기 전에 필요한 물건을 사두려는 '선행 소비'가 일어난 뒤 증세 이후에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경기침체 우려는 과거 경험에서 학습된 것이다. 처음 소비세가 도입됐을 때만 해도 경기가 좋은 상황이어서 소비심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소비가 줄어들자 '소비 증세=경기침체'라는 공포 이미지가 생겨났다. 

통상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은 돈을 쓰기보다는 절약하는 데 집중한다. 돈이 돌지 않으니 경기가 얼어붙는다. 실제로 지금까지 소비세를 올릴 때마다 소비 위축이 일어났다. 아베 총리가 당초 2015년 10월에 단행하려 했던 4차 소비세율 인상을 2017년 4월, 올해 10월로 재차 미룬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증세를 단행하면 내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우려가 커지자 이번에는 유인책도 다수 내놨다. 포인트 환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2%포인트의 소비세 인상분을 포인트나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을 뼈대로 한다. 탈세 예방은 물론 증세에 따른 반감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감세율 제도도 운영할 예정이다. 술과 외식 상품을 제외한 식료품과 신문(정기구독)에 대해서는 소비세를 8%만 받는 것이다. 

조건부 감세 제도도 마련했다. NHK에 따르면 앞으로는 대출을 통해 주택이나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주택융자감세'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증세 이후 신차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매년 부과되는 자동차세를 배기량에 따라 영구 인하하는 조치 등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도 소비자 부담이 늘 것이라는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일부 제품은 벌써부터 가격이 올랐다. 고속도로 이용료와 택시 기본요금 등이 소비세 인상분을 먼저 반영해 상향 조정됐다. 담뱃값도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경기 둔화 등에 따라 일본 경제지표들이 수년 만에 가장 취약한 상태"라며 "증세를 철회하고 경제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의 두 번째 도박...'아베노믹스' 돌파구 될까 

소비세 증세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총리에게 돌아온다. 실제로 그간 일본에서 소비세를 올린 총리는 모두 실각했다. 처음 소비세를 도입했던 1989년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소비세 증세 이후 석달 만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총리 책임론이 불거지자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가 물러났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도 1997년 소비세를 인상한 뒤 소비둔화 등의 이유로 실각했다. 집권 자민당은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패배의 역사를 썼다. 

아베 총리가 실각 위험 부담을 안고 두 번째 증세에 나선 이유는 재정건전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번 증세를 통한 추가 세수분은 초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될 전망이다. 고령화 등에 따른 사회복지 재원을 확보하려면 세수를 늘려 부채를 줄여야 한다.

아베 총리는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유아교육·보육 무상화 전면 실시 △고령자 고용 촉진 △노동 개혁 등을 공약했다. 이미 3선에 성공, 최장기 총리 타이틀을 거머쥔 아베 총리로서는 무리해서라도 세수를 마련해 공약을 실천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참에 '현금 없는 사회'까지 선도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일본은 현금 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일본의 비현금 결제 비율은 18.4%로, 한국(89.1%)·중국(60%)·캐나다(55.4%) 등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나 전자화폐 등을 사용해 결제하는 경우 구입 금액의 2%를 포인트로 되돌려 주는 제도를 착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실각 위기를 여러 차례 극복했다. 2015년 예정돼 있던 소비세 증세를 보류하기로 한 뒤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일궈냈다. 증세에 앞서 지난 7월에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다만 이번만큼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경제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서다.

◆한국 불매운동에 관광 산업 반토막...경제 '먹구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재정지출 확대 △양적완화 △성장전략 등 이른바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여기에 '관광산업'을 더했다. 관광을 경제 성장전략의 하나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방일 외국인 규모를 연간 4000만명까지 늘리고, 2030년까지는 6000만명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의 불매운동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일본정부관광국이 공개한 외국인 여행자 통계(추계치)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 수는 30만8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영향으로 전체 외국인 일본 방문자 수는 11개월 만에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일본의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9로 나타났다. 2016년 6월 이후 최저치다. 통상 PMI는 50을 기준으로 경기확장과 위축을 가른다. 

경기 위축 배경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홍콩 시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한·일 갈등 등이 꼽힌다. 아베 정부의 강력한 부양책으로 회복세를 띠던 일본 경제는 2014년 소비세 증세 이후 침체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내수뿐 아니라 중국의 경기둔화 등 해외 변수들이 불확실성을 더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 정부의 이번 증세는 소비세 도입 30년 만에 세 번째 증세이자 지난 5월 1일부터 시작된 '레이와(令和)' 시대의 첫 번째 증세다. 지난 11일 개각을 통해 국정 드라이브를 쇄신하려는 아베 총리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구치 하루미 IHS마킷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 긴장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중국 등 글로벌 수요가 줄면서 일본의 수출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10월 소비세 증세에 따른 소비자 지출 약세에 수출 부진까지 겹치면 일본의 무역 적자가 단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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