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LG화학-SK이노 배터리 소송, 법원이 결정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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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산업부 부장
입력 2019-09-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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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아주경제 산업부국장]

특허가 세계 최초로 성문법화된 나라는 영국이다. 공업기술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낙후됐던 영국은 자국의 공업 발전을 위해 기술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전매조례(Statute of Monopolies)를 만들었다.

조례가 제정되자 자신이 가진 기술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 유럽의 기술자들은 영국으로 모였고, 이는 곧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본인 소유 기술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는 특허 개념이 일반화됐다. 권리 또한 대폭 강화됐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특허 침해 소송으로 업계가 시끄럽다. LG화학은 지난 4월 핵심인력 빼가기와 기술유출로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30일 LG화학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LG화학과 LG화학의 미국 현지 법인을 ITC에 맞제소 했다.

해외 기술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특허분쟁에 나섰을까. 특허가 속지주의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와 특허의 가치가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특허를 받은 기업이어야 해당 분야의 시장을 선도할 수 있고, 글로벌 리더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다툼도 미국 내 전기자동차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이를 선점하기 위해 두 회사가 정당한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

일각에서는 양사의 분쟁으로 배터리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기우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을 보자. 7년간 이어진 두 회사의 법적공방으로 과연 한곳이 문을 닫았는지, 또 기술력이 후퇴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다. 

사실 기업간 소송은 대리인이 하는 것이지 연구원들이 직접 싸우는 게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 분쟁은 생사를 건 전면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업들도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손 놓고 무대응으로 나선다면 어떨까. 오히려 무능한 기업으로 비춰질 것이고, 시장으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특허 분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생사를 건 전면전이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히려 이번 소송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당당하게 인정받겠다는 의지다.

LG화학은 지난 2017년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의 ATL(암페렉스테크놀로지)을 상대로 '안전성 강화 분리막 기술'(SRS)에 대한 특허 소송을 ITC에 제기해 올해 초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LG화학은 ATL이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SRS 매출의 3%를 기술 로열티로 받게 돼 연간 수천억원의 이익도 보장받게 됐다. 기술을 선점한 기업들이 소송을 하는 이유다.


결국 기업 간 특허분쟁은 자존심 싸움이자 생존의 문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분쟁은 더 큰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 마땅하다.

최근 한국 정부의 중재론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미국은 특허를 국가 성장기반으로 삼으면서 유명한 발명가들을 배출했고, 지금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미국 정부가 나서서 중재를 하고, 특허 침해를 당연시 했다면 토마스 에디슨이나 라이트 형제의 이름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기술력으로 세계를 재패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정부를 비롯한 모든 주변인들은 이번 사태에 참견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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