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의 길을 묻다] 조영삼 서울기록원 원장 "기록의 중요성, 정쟁에 가려지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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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기자
입력 2019-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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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별관 필요성 대통령기록관 설립부터 논의됐던 사안

  • 참여정부부터 급성장했던 기록관리 지난 10년간 퇴보

  • 기념관이 아니라 기록관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 대통령 기록의 보존과 발전은 공공기관 기록발전 바탕

'대통령의 기록'이 다시 정치판 위에 섰다. 지난 10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는 2022년 개관을 목표로 개별 대통령기록관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세종시에 위치한 통합대통령기록관 서고가 80% 이상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개별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172억 원 규모라는 개별대통령 기록관 설립은 곧바로 정치적 공방에 둘러싸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 타운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 세금을 들여서 기록관을 짓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단 1원도 허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11일 당혹스럽다는 태도를 밝히면서, 개별 기록관 추진 사업에 대해 지시한 바 없을 뿐만 아니라 개별기록관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국가기록원은 같은 날 보도자료를 배포해 해당 사업추진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설명이다.

개별기록관 건립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던 기록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허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지난 10일 "대통령 기록관 설립 단계부터 개별대통령기록관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면서 "언론 보도들은 대통령 기록관리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록전문가협회는 "개별대통령기록관 추진은 그간 후퇴한 대통령기록관리를 정상화하기 위한 핵심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별관 건립 추진은 건물을 세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를 남긴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연 개별대통령기록관은 단순한 예산 낭비이자, 야당에서 비판하듯이 대통령 개인을 위한 치적사업인 것일까?

이를 짚어보기 위해 아주경제는 2회에 거친 '대통령 기록의 길을 묻다'는 기획 기사를 2회에 거쳐 마련했다. 10여 년 만에 다시 정치판의 중심에 올랐던 대통령 기록의 의미와 향후 방향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서다.

지난 16일 서울시 은평구 혁신센터에 위치한 서울기록원을 찾아 조영삼 원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가지고 문재인 대통령 개별기록관 논란과 향후 대통령 기록을 비롯한 공공기록이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대통령기록관]


대통령 개별기록관이 최근에 큰 논란이 됐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일단 이번 개별대통령기록관 발표는 정치적으로 시기가 좀 안 좋았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지만, 2007년에 대통령 기록법을 제정할 당시에도 개별대통령 기록관 논의는 있었다.

당시 대부분 전문가의 결론은 개별대통령 기록관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였다. 제대로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단은 대통령의 기록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시간이 적게 걸리는 통합기록관이 선택된 것이다.

2007년 당시 대통령기록 보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했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

- 그 이전에는 사실 대통령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제대로 기록하고 관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대통령 기록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남길 것인가가 당시로는 가장 큰 숙제였다.

공공기록은 이전에는 그냥 문서를 관리하는 개념이었다. 이전에는 체계적인 관리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뒤인 1999년에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부터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시작됐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에는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비교적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청와대는 다른 기관과는 달리 누가 외부에서 통제하기 힘들다. 법률을 만들어서 기록 보존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으면, 기록이 사라지기 쉽다. 그 때문에 노 전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기록을 남기는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하려고 했었다.

통합기록관과 개별기록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대통령마다 특성에 맞는 관리와 기록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전시관에는 모든 대통령 전시관이 일률적이다. 어느 대통령을 특별히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이 제일 풍부한 상황이지만, 남겨진 기록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개별기록관이 생기면 남겨진 기록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훨씬 많아진다. 각 대통령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기록을 분류하고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기록 사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것도 개별대통령 기록관을 만들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라고 본다. 본인이 만든 기록이 통합기록관으로 갔기 때문에 열람권을 위해 사본을 만든 것이다. 만약 개별대통령 기록관이 있었다면 사본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172억 원이라는 예산이 특히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 들었을 때 예산이 너무 적어서 깜짝 놀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172억 예산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상정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본다. 서울시기록원은 지방기록원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에만 500억이 들었다. 박물관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172억으로 지을 수 있나?

미국은 대통령기록관은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물론 이것은 세금이 아니라 대통령 지지자들이 내는 기금 모집의 일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단을 만들어서 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 된 뒤 바로 기록 관리에 들어간다. 기록을 정리하는 기간을 두고 취임 뒤 10년 뒤에 문을 여는 식이다.

대신 개별대통령 기록관은 국가에 기부채납하도록 해서, 국가가 운영하도록 한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문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치기부금에 대해 엄격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결국 기록을 위해서는 국가가 지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퇴임하고 지으면 안 되냐고 하는데, 안전한 기록의 보존을 위해서는 재임 중에 준비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조영삼 서울기록원 원장 [사진=서울기록원 제공 ]



개별기록관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사례를 많이 드는데, 왜 그런가?

- 강력한 대통령제를 가진 국가 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국가가 미국과 우리나라다. 미국의 경우에는 개별대통령 기록관이 있다. 각 대통령의 특성에 맞추어 기록관을 만든다. 예를 들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에는 에어포스원 디스커버리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기록관을 차별화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추진하고, 따로 센터를 짓는 식이다.

대통령 기록관은 전임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에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준다. 정치적 활동이 아닌 환경, 인권 등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하면서 정치 문화를 더욱 풍부히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만 이용되지 기록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다. 

- 학계에서 논의가 많이 됐던 문제다. 다수의 전문가는 개별대통령 기록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공론화되면 정치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통령의 기록과 관련해 워낙 많은 일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논의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개별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공론화가 부족하고, 더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는) 공론화 없이 불쑥 튀어나온 것으로 보인다. 기록관리계의 입장에서는 준비 소홀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듣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씀하시고 국가기록원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과는 별개로 기록학계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공론화'를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대통령 기록관리가 왜 특별히 중요한 이슈가 되나

-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기록이 얼마나 잘 관리되느냐에 따라 공공기록의 수준이 결정된다. 대통령 기록이 체계적이고 잘 관리가 되면 공공기록 관리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이렇게 하는데 공공(기관들) 들은 왜 이렇게 (체계적으로 기록관리를) 못하냐는 질책이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참여정부 시기에 우리나라의 공공기록관리 수준이 급성장한 적이 있다. 왜냐면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법을 만들고 대통령이 스스로 (철저히) 기록을 하겠다고 나서고, 국가기록관리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성장한 것이다.

근데 그 이후에 기록관리의 수준은 갑자기 급락했다. 후임 대통령들이 기록관리에 관심이 없었고, 청와대에서도 기록관리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기록관리가 잘되고 뒤따라 공공기록 관리가 잘 될 경우, 성과는 오롯이 국민의 성과가 된다.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정보공개제도의 경우에는 기록이 잘 돼야 정보공개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정보공개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국민 알 권리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촘촘히 연결돼 있다. 대통령 기록관리가 잘 되는 길 중에서 개별대통령 기록관을 짓는 것이 절대적인 (최종) 이상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현 단계에서는 방향으로 옳다고 본다. 이것은 결국 공공기록관리의 질 향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개별대통령기록관이 다시 공론화가 될 수 있다고 보나?

- 공론화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생각은 든다. 다만 정치권에서 (개별기록관 설립)을 공방으로 받는 것이 옅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원래 대통령기록관을 만드는 기반이 된 것 법이 예문춘추관법이다. 그런데 이 법을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시 한나라(현 자유한국당)당 소속 정문헌 의원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에 대통령기록법을 만들 때 여야의 반대가 크지 않았다.

정치적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학계가 더 노력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돼야 한다. 이번 문제만 봐도 대통령 기록관이 아니라 기념관으로 국민들에게 이해된 것 같다. 기념관이나 개인 시설이 아니고 국가가 개별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시설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향후 우리사회에서 기록에 대한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나  

- 일단 안정적인 기록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록관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안정적인 기록생산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안될 경우 정말 중요한 기록들이 보존되기 힘들다. 이후에는 또 만들어진 것이 온전하게 이관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록은 우리나라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흔히들 박물관, 미술관 등을 문화시설이라고 보지만 기록원도 중요한 문화시설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시민들의 기록활동이 많아지고 있으며, 기록보존에 대한 요구도 많아지고 있다. 이같은 요구를 우리사회가 제대로 담아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기록은 박물관의 미술 작품처럼 직관적인 가치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장금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에서 뽑아낸 문화적 생산물이다. 실록 내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문화상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처럼 기록은 어떻게 분류하고 해석하고 뽑아내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다. 때문에 온전하고 풍부한 기록은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사진=세종특별자치시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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